[남편 육아일기]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결혼 13년 차 육아 1년 차


며칠 전부터 아이가 운다. 통상 키우기 어렵다는 원더 윅스(wonder weeks)가 생후 18개월까지 10번이 오는데, 그중 4번째, 6번째, 10번째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지금 아이는 6번째의 시기를 한참 지나고 있다. 게다가 치아도 빨리 나온 터라 그게 겹쳤나 보다. 저번 목요일에는 퇴근했더니 울음을 울기 시작해서 걷잡을 수 없었다. 엄마가 젖을 물려도 일주일에 두 번 오시는 장모님이 달래도 소용없었다. 목소리가 커지다 보니 아내는 귀마개를 했고, 별다른 방법이 없는 나는 아이를 앉고 집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아이는 얼마나 불안했던 것일까. 나는 아이를 재울 때 아주 가끔 부르던 노래 [바위섬]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연거 푸어 반복했다. 가사보다는 허밍으로 음만 불렀다. 아이는 계속 울었다. 아이의 울음이 귓가에 울린다. 고주파의 괴성도 나고 목놓아 울기도 한다. 그러다 몇 번을 반복하고 아이가 겨우 잠들었다. 한 시간이 훌쩍 넘었고 퇴근 후 급히 갈아입었던 반팔 라운드티의 가슴팍이 흠뻑 젖었다. 아이를 눕히고 바위섬 노래 가사를 다시 찾아봤다.

바위섬 - 김원중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 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바위섬은 나이면서 아내와 나의 관계이기도 하고 '아이'기도 했다. 파도는 때론 아이의 몸짓이기도 하고 부모의 훈육이기도 하다. 섬은 물이 없으면 주체화되지 않고, 모든 대륙은 큰 틀에서 섬이기도 하고 모든 관계는 존재 안에서 의미를 부여받기도 한다. 그것이 프로그래밍된 보편적 성장의 절차이던 부모가 전전긍긍하는 양육의 개별적 방법일 수도 있다. 아이는 순간 부모를 그득히 따르면서도 부모의 몸짓에 세상이 무너질 듯한 화를 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다 떠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관계가 바위섬처럼 든든하고 혹은 무겁게 혹은 소복하게 자리하게 된다. 아이는 지금 자기표현의 방식으로서 울음과 몸짓 밖에 없기 때문에 어떠한 시기, 강한 파도를 내기도 하며, 성장과 살아남기라는 강한 파도에 전심으로 반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살아내기와 생각하기를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여전히 밤에는 서너 번 깬다. 12시를 전후로 잠이 들어 두시 그리고 네다섯 시쯤에는 깬다. 거울 이미지와 상상계라는 동일시하는 엄마에게서 조금씩은 분리가 되어가는 중인 것 같다. 엄마 젖이 아니면 잠이 들지 못했다가 요즘 들어 한 두 번 새벽녘에 깼다가 내 품에 안겨서 다시 잠이 든다. 밤 중에 보라색이 아이가 잠든 시간이라면 그 중간에 붉은색이 아내가 모유 수유를 한 것이고 검은색으로 비어 있는 것이 잠깐 깼다가 다시 잠든 것이다. 방금도 아이가 잠 들고나서 두 시간도 안되어 벌떡 앉아버렸다. 때마침 내가 일어나서 다행히 아이를 품 안에서 재울 수 있었다. 다시금 나는 [바위섬]을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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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점점 상상계의 동일시되는 엄마와 분리하는 인간 성장의 단계라고 칭하고 있으나, 어쩌면 인간이 가진 사회 문화적 양육의 방식일 수 있으며 문화를 만들어내는 가장 근본적인 감정적 토대이기도 하다. 인간이 동물과 비견되는 가장 원초적인 특징이 바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에서는 '포유류'에서만이 감정이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감정은 감각과는 구분되는데 감각이 무의식적으로 생존을 위한 모든 생물의 반응이라면 감정은 실제 자신의 몸에서 아이를 키우고, 자신의 양분을 '젖'으로 주어서 애착이 생기는 포유류에게만 가능한 것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젖으로 원활한 단백질 공급이 되고, 아무런 무기도 없이 태어난 유아에게 오랜 양육이라는 어려움을 -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야생 인간의 두려움을 떠올려본다면 - 견디어 내면서 뇌의 발달, 감정의 공유, 상징과 언어, 문화의 발달로 이어지는 결과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는 꼭 바위섬과 파도,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처럼 가장 사랑스럽지만 가장 풀리지 않는 문제가 되기도 하는 삶의 있어서 욕망과 이루지 못함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 곧 엄마와 아이의 유대에서 감정이 생겨나고 양육 자아의 비언어적 애착에서부터 감정은 자라오는 것이다. 모든 연구를 다 신뢰할 수 없지만 그간 언어의 발달이나 문화의 발달이 전쟁과 사냥과 통치를 위한 방식이 아니라 사랑과 양육의 관계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설득력 있게 체감된다.


곧 아이가 다시 잠에서 깨 누군가를 찾는 작은 파도가 모래 같은 나를 어루만질 것 같다. 진짜 깼다. 다시 안았다가 침대에 눕히려는데 세 번째 시도까지 실패해서 결국, 아내가 등판했다. 나의 양육 기술은 여전히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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