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건넨 위로 – 삶이 다시 피어날 때

- 바람이 남긴 시작의 기록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이 귓가를 간질이며 옷자락을 스치며 지나갈 때마다 세상의 숨결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오래전 여행길에서 느꼈던 그 공기와 닮았다. 언제나처럼 바람은 조용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말이 숨어 있다.

“괜찮다.”“이만하면 잘 살아왔다.”“이제는 조금 쉬어도 된다.”

그 목소리가 바람에 섞여 내게 건네진다.




삶은 자주 우리를 시험한다.

기억 속의 상처가 불쑥 되살아나기도 하고, 이유 없이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는가?” 정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질문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내가 여전히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증거다.




세상을 여행하며 수많은 바람을 만났다.

어떤 바람은 따뜻했고, 어떤 바람은 차가웠다. 하지만 바람은 언제나 ‘지나갔다.’ 머무르지 않았지만, 그 지나감이 내게 많은 걸 남겼다. 삶도 그렇다. 아픈 시간은 결국 지나가고, 기쁨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남는 건 단 한 가지, 그 모든 순간을 견뎌낸 나의 흔적뿐이다.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삶은 어느새 다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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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안다.

위로란 거창한 말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바람처럼 다가와 스치고 지나가는 것임을. 누군가의 말 한마디, 하늘빛 한 조각, 그리고 내 어깨를 스쳐간 바람 한 줄기.

그 사소한 순간들이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킨다. 삶은 그토록 단순하다. 어둠이 지나면, 바람은 다시 불고 꽃은 다시 핀다.



나는 오늘도 그 바람을 기다린다.

그 바람이 내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하루를 열어주기를. 삶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나답게 걸어가는 나의 속도를 찾아간다.




그리고 문득, 그 바람이 머문 자리에 작은 빛 하나가 뚜렷하게 다시 피어난다. 그 빛은 어둠을 이겨낸 내 안의 용기, 삶이 나에게 건넨 마지막 위로다.





2025년 11월 12일

-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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