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이기는 빛으로 살아가기, 네 번째 이야기
시간이 멈춘 듯한 날이 있다. 아침의 소리도, 사람들의 발걸음도 들리지 않는 날.
그날 나는 오랜만에 걸음을 멈췄다. 길을 걷는 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속도’가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되살아났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마치 시간을 잠시 내려놓은 사람처럼.
언제부턴가 나는 늘 달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잃지 않기 위해, 또는 누군가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런데 멈춰 서니, 내 안의 소리가 너무 낯설게 들렸다. 오랜만에 들은 심장의 박동, 작은 숨소리 하나까지도 생경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을까.”그 질문이 내 안을 오래 맴돌았다.
삶의 속도는 빠르다. 그러나 마음의 속도는 그보다 훨씬 느리다. 우리는 종종 그 치명적인 차이를 잊고 살아간다. 빨리 걸을수록 세상은 희미해지고, 천천히 걸을수록 세상이 선명해진다.
한복 자락이 바람에 닿을 때마다, 나는 비로소 ‘지금’을 느꼈다. 그 감각 하나가 내게 말했다. “너는 여전히 살아 있다.” 세상은 나에게 끊임없이 달리라고 하지만, 삶의 진짜 목적지는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시간이 멈춘 그 자리에서 다시 배웠다.
멈춤은 끝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다시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 멈추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것들, 들리지 않았을 마음의 소리를 그곳에서 들었다. 그때 알았다. 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서두르지 않는다. 하루의 속도보다, 마음의 속도를 먼저 듣는다.
빛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건 멈춰 선 자리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025년 11월 11일
-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