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비밀은 숨기라고 비밀인가?)

by 주오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를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이게 어떤 설화다, 뭐 권력 다툼을 의미한다라는 다양한 이야기가 많은데

여기서는 그것보다 이발사가 대나무숲에 소리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우리 마음속에는 다양한 비밀을 숨기며 살아간다.

비밀 이외에도 우리는 매일 짜증 나는 일, 서운한 일들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이런 스트레스와 같은 일들을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또 각자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이를 다른 사람과 논의하며 해결해 나가고, 누군가는 가슴 깊숙이 숨긴 채 살아간다.

어느 쪽이든 자신이 선택하는 쪽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를 고치고 싶은 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잘 선택하였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저 이런 부분을 생각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쓰게 되었다.


청소년기 시절, 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이발사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한테는 비밀이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일이 생기면 가장 친한 친구부터 시작해서, 별로 안 친한 친구도 모두 나한테는 심리상담가였다.

너무 어려서였을까, 당시에 내 삶의 중대한 부분이 바로 친구이기 때문일까 그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비밀을 얘기함으로써 친구의 기억 속에 내가 자신의 비밀을 기꺼이 말하는 좋은 친구로서 남고 싶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이런 습관은 20대 초반까지도 이어졌었다.


비밀과 힘든 경험을 공유하는 건 일시적으로는 좋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건 나의 일인데, 나에게 맞는 판단을 내리는 주체는 나인데, 얘기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의견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말이 많아질수록, 내 안에는 다른 사람들로 채워지며 나 자체는 소멸돼 가고 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후로 말을 아꼈다.

입이 간지럽다는 것이 뭔지 실감이 될 정도로, 생각보다 말을 줄이는 것은 어려웠다.

친구들은 내 성격이 변했다고 얘기했고, 나는 점차 말 많은 사람에서 과묵하고 진지해 보이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

'자극적인 나'를 찾는 사람들은 서서히 멀어졌지만, 그런 후에는 오히려 나 자체를 좋아해주는 사람만이 남았다.


또한, 남들과 내 비밀얘기를 하는 습관을 줄이고 난 뒤에는 나만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많이 얘기하는 것을 많이 읽고 생각하는 습관으로 바꿨다.

이걸 발판 삼아, 나만의 매뉴얼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나의 기준을 세우기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은 언제나 생각의 전환의 시기가 찾아온다. 나에게는 참 귀중하면서도 천운과 같은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 것에 너무 감사하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도 내 비밀을 얘기하지 않는가? 그건 절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속에 응어리가 싸여 터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누구에게 이 얘기를 해야 할지, 누구한테는 하지 않아야 하는 지를 구별 가능해졌다.

사실은 비밀을 얘기하냐, 비밀을 내 안에 숨기는가는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저 이 비밀을 누구한테까지 말할 것인가가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친구와 진짜 친구(찐친)를 구별하곤 한다. 나 또한 다양한 친구들을 보며 찐친과 친구를 구별한다.

그런데 다들이 구별 기준을 어떻게 두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도 정확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조금씩 감이 오고 있고, 그건 비밀의 공유 유무인 것 같다.

물론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귀납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그렇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똑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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