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ㅏ8완벽한 부모는 없지만 좋은 부모는 될 수 있다 (2) -
<SEL Parenting 이란?>
1장 너무나 어려운 양육,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2)
3. 어떻게 하면 양육이 쉬워질까?
1)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가끔 어떤 문제는 매우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양육이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양육을 쉽게 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 양육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내려놓게 된다. 수퍼맨/원더우먼이 도기보단,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자기 자신을 먼저 도로고, 양육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부모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볼 때, 더 많은 에너지가 생기게 되고, 때문에 우리 아이를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2) 아이를 통제하려고 하지 말자.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하는 사람이지 아이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말이 있다. 목수가 되기보다는 정원사가 되라고. 정원사로서, 부모는 아이의 전반적인 삶을 통제하기보다는 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도록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3) 믿을만한 정보를 찾아보자.
- 믿을 만한 정보가 무엇인 지 아는 것 만으로도 양육의 부담감이나 스트레스가 줄어들 수 있다. 부모들이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 믿을만한 기관에서 나온 정보를 찾도록 한다. 병원이나, 연구기관, 대학교, 그 외에 잘 알려진 기관에서 나온 정보를 찾는 것이 좋다.
- 편견이 있는 정보, 전문가에서 나온 정보가 아닌 경우, 상업적인 정보는 피하도록 한다.
- 최신 정보를 찾도록 한다. 많은 온라인 정보들은 오래된 경우가 많다. 최신 정보를 찾아야, 자신의 요구에 맞는 부모교육 프로그램이나, 학교 정보 같은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4) 내 아이를 이해하도록 노력해 보자.
내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제일 쉬운 일일 수도 있으나, 많은 부모들이 또한 힘들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단 우리는 모든 아이들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부모들이 내 아이도 다른 아이처럼 또는 다른 아이보다 더 빠르고 성숙하며 우수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이들의 성장발달은 때로는 미세하게 때로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각자가 지닌 독특한 성격을 발현하게 되는데, 부모는 그 순간을 잘 살펴서 아이의 특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아이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아이가 잘 때, 먹을 때, 놀 때 아이를 잘 관찰해 보는 것이다. 자주 하는 행동에 비슷한 점을 없는지, 어떤 활동을 좋아하는지, 한 활동에서 다른 활동으로 이행(transition 전이, 전환)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등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는 또한 아이와 이야기를 자주 나누면서 아이의 감정을 이해해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 친척이나 친구, 선생님, 동네 사람들, 집안 환경 등 아이의 주변 환경을 이해하는 것도 아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된다.
4. 엄마도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2020년 육아는 로봇이 할 것이라 기대했던 7080세대 엄마들
주변을 둘러보면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의 연령대를 대충 짐작해 볼 수 있다. 몇 년 전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처럼 1980년대생 부모들이 가장 많겠고, 나처럼 늦게 아이를 낳아 양육하고 있는 1970년대생들도 생각보다 많다. 조금 이른 결혼을 했다면 1990년대생들도 있을 테지만, 육아를 하는 관점에서 7080 세대 혹은 90 세대라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82년생 김지영 씨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7080 세대는 2020년을 매우 획기적인 미래일 것이라 상상하며 자란 세대이다.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 우리가 상상했던 미래를 한 번 묘사해 보자. 로봇이 아이를 키우고, 로봇이 청소를 하고, 로봇이 요리를 하며, 로봇이 정원을 가꾼다. 그리고 인간은 그 로봇의 도움을 받으며 여유롭게 출근 준비를 한 후 아이에게 굿바이 키스를 하고 유유히 자신의 일터로 출근한다. 대중교통이든 자동차든 모두 로봇 시스템에 기초한 무인 주행 차량이며, 인간이 모두 잠든 이른 새벽에 거리를 깨끗하게 치워놓은 로봇들 덕에 인간들은 깨끗한 거리를 활기차게 주행하며 화상채팅으로 가족이나 동료들과 여유로운 수다를 떨거나 로봇으로부터 오늘의 주식동향과 뉴스를 들으며 회사로 간다.
2020년이면 이렇듯 육아 고충 따위 전혀 문제 될 것 없이 로봇들의 시중을 받으며 당당하고 활기찬 커리어우먼으로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 씨의 현실은 어떠한가?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년,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p.146)
이처럼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있다. 그냥 소설일 뿐이라고 치부하지는 말자.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작가는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그에 근거하여 글을 썼다. 이것이 김지영 씨, 아니 우리 모두가 처한 현주소이다. 누구나 다 하는 아이 양육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육은 누구에게나 힘들다는 소리다.
앞서 미래를 묘사한 문장에서 우리는 ‘로봇’의 자리에 여전히 ‘인간’ 혹은 ‘여성’ 혹은 ‘엄마’가 자리하고 있음을 실제 삶의 현장에서 보게 된다. 2020년의 육아는 1970년대 육아와 사실상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고, 엄마가 청소를 하고, 엄마가 요리를 하며, 엄마가 운전을 해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온다. 실제로 엄마들은 자식을 훌륭히 키워내기 위해 이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에 사는 82년생 제시카 킴의 육아는 뭐가 다른가요?
미국에서 한국 아이를 키우는 82년생 제시카 킴은 과연 별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까? 최소한 ‘맘충’ 소리는 안 듣고 사니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겠다. 대신 한국 엄마들의 치맛바람 이상으로 강력한 미국 엄마들의 ‘헬리콥터 맘’ 되기가 무엇인지 직접 눈으로 보고 있다.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둔 제시카 킴은 아이가 3살이 되면서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아이를 프리스쿨에 보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좀 편할 줄 알았는데 킨더가든에 입학할 때까지 아니 입학하고 나서도 계속 각종 학교 행사와 축제에 불려 다니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미국 학교는 행사도 참 많다. Book Fair 행사, Fall Festival, International Children's Day, International Historic Day, Movie Night,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Thanksgiving Party, Christmas Party, Valentine's Day, St. Patrick's Day, Dr. Sue's Day, Board Game Day, Pajama Day, Yard Play Day 등 다 나열하기도 힘든 온갖 행사들이 한 달에 두 번 이상 열린다. 학기 초에 학부모-선생님 모임(PTO)에 가입한 제시카 킴은 영어를 잘 못하는 아이의 학교 적응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학교 행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면에는 혹시나 자원봉사도 잘 안 하는 한국인이라는 꼬리표가 달릴까 봐 우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의 모든 학교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쯤 되면 SF 영화에서처럼 누군가 인공지능 로봇을 학교로 보내 대신 자원봉사를 시킬 텐데 아직은 그 단계는 아닌 듯싶다. 엄마 대신 아이를 데리러 오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아빠들도 꽤 눈에 띄고, 맞벌이를 하는 부모들 대신 아이들의 조부모나 고용된 보모가 학교 행사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제시카 킴은 ‘아메리칸 드림’이란 게 결코 녹록지 않음을 느끼며 미국 엄마들의 ‘라이드 인생’과 ‘볼런티어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지 적극 체험하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NASA 우주과학기술의 메카인 미국에 와서 살고 있으니 뭐라도 더 나은 엄마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미래 공상과학 영화 속 2020년 미국과 현실의 2020년 미국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미국에서 십 년 넘게 살았어도 어린 시절 봐왔던 미국의 미래 공상과학 영화 장면은 눈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미국의 영화 산업에 우리의 어린 시절을 사기당한 기분이다.
그래도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퍼스널 컴퓨터(PC), 인터넷, 스마트 폰, 로봇청소기, 무인 주행 차량 등을 가져다주었다. 뭔가 편리해진 건 분명하다. 그런데 육아를 하는 엄마들은 왜, 어째서 아직도 힘들다고 불평불만을 털어놓고, 요즘 젊은이들은 왜 결혼은 하고 싶어 하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꺼리고 있는 걸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본다면 우선 사람이든 로봇이든 고용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이 양육과 교육은 로봇으로 채울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대결해서 바둑은 이겼을지 몰라도 엄마에게 내 아이에 가장 적합한 육아 관련 정보를 세세하게 분석해서 전달해 주지 못한다. 사실 육아는 여러 가지 일을 두루두루 수행해야 하는 범용 인공지능이 필요한데, AI는 아직 어떤 특정한 일을 해내는 특화된 인공지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일일이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을 주문해서 공부하고 말 품, 발품을 팔아 홍수처럼 쏟아지는 육아 정보 속에서 내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육아 방식을 찾아 공부해서 아이를 키운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만물 척척박사가 되어간다.
이 세상에 완벽한 모성, 완벽한 엄마는 없다
이 시점에서 최근 미국에서 개봉된 SF 영화 <아이 엠 마더>를 한 번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는 생각해 볼 것이 참 많은 미래 공상과학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양육과 보호의 역할을 맡은 로봇은 여성성이 부여되어 있다. 마더(Mother)라는 이름의 로봇은 인간 멸종 후 인간 배아를 인큐베이터에서 배양하고 키우면서 완벽한 인간으로 키워내기 위해 아이를 교육시킨다. 영화에서 그 아이는 이름이 따로 없고 딸(Daughter)로 불린다. 그 딸을 신체적 능력과 지적 능력 그리고 도덕성도 완벽하게 갖춘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 로봇은 엄마, 선생님, 의사, 약사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하여 로봇은 딸을 키우는 내내 정기적으로 다양한 테스트를 거치게 하여 인류의 어머니가 될 자격을 갖춘 완벽한 인간으로 키워낸다.
그렇다면 로봇이 판단하는 완벽한 인간이란 무엇일까. 딸과 로봇은 수업시간에 루소, 칸트 등 다양한 서양 철학자들의 다양한 인간 이론을 언급하며 열띤 토론을 한다. 겉으로 보면 로봇 마더가 딸의 다양한 사고 과정을 독려하면서 스스로 판단 내릴 수 있도록 자율성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상은 로봇이 미리 준비한 결과와 답안에 아이가 다가오게끔 유도하고 있다. 로봇의 모범답안은 뛰어난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도덕성이 결여된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이러한 불완전한 인간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모범답안으로 향하는 테스트에서 실패하면 로봇 마더의 판단 아래 아이는 바로 소각될 운명(죽음)에 처한다. 그런 이유로 소각된 아이가 이미 존재했음을 여주인공 딸이 나중에 알게 되어 충격에 빠진다.
영화의 결말에서 딸은 완벽한 인간, 즉 인류의 어머니가 될 자격 테스트에 모두 통과하고 또 다른 인간배아를 통해 인큐베이터에서 태어난 남자 아기를 키우게 된다. 그리고 로봇 마더는 자신이 판단한 완벽한 인간성과 모성이 딸에게 형성되었음을 깨닫고 딸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완벽한 모성이란 무엇일까. 완벽한 엄마가 대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우리가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면 미래사회에서는 로봇에 의해 소각당하겠지만, 현실사회에서는 그 엄마들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는 엄마다. 그리고 ‘부모’다. 육아 스트레스가 심해도 그것을 극복하고 자녀들을 잘 키워내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고 숙명이다. 어차피 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엄마도 훈련 과정이 필요하단다
로봇 마더가 아직 탄생하지 않은 인큐베이터 안의 수많은 인간 배아들을 보여주며 앞으로 우리에게 큰 가족이 생길 것이라고 말하자 아이는 어서 대가족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가슴 벅차 한다. 그러다가 문득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다 자랄 때까지 왜 다른 동생들을 함께 탄생시키지 않아요?”
딸의 물음에 로봇 마더가 친절하게 말한다.
“엄마도 훈련 과정이 필요하단다.”
그랬다. 엄마도 훈련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정보가 프로그램화된 인공지능 로봇조차도 엄마가 되기 위해 훈련이 필요한데,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도대체 뭐라고 훈련도 없이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도대체 엄마가 되는 훈련은 어디에서 미리 받아볼 수 있을까. 더욱이 한국을 떠나온 미국에 사는 한국 엄마들은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가까이 있지 않아 그 어떤 조언도 도움도 못 받으며 맨땅에 헤딩하듯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일명 최강 극기 훈련이다.
인공지능 로봇처럼 엄마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오로지 자녀양육에 올인하며 생물학적 엄마, 유모, 가정부, 선생님, 의사, 약사, 미래 설계사, 심리상담사, 진학상담사, 운전기사 등 다양한 역할놀이를 해야만 한다. 임신, 태교, 육아 서적을 펼쳐놓고 밤새 공부하며 나름 훈련을 하고 또 해도 실제 상황에서 ‘엄마 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