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글을 쓰는 내 일의 특성상, 매일 직장에 나가 늦게 돌아오는 남편의 도움 없이 나는 거의 3년간 주 양육자가 되어 일명 ‘독박 육아’를 했다. 낮에는 육아와 집안일을 하느라 지치고, 저녁에 아이를 재워놓고 나서는 밤늦게까지 글을 쓰고 공부하느라 고단했다. 수면 부족과 고질적인 거북목에 척추측만증으로 건강상태는 계속 나빠졌고, 산부인과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치솟아 생체 리듬에 문제가 생겼다며 일단 좀 쉬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고단한 삶이 도통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결국 남편과 상의해서 2살 반이 된 아이를 동네 프리스쿨에 몇 달 보내보기로 했다. 영어라고는 기본적인 인사말과 자기소개 그리고 가장 필요한 단어 몇 개만 알고 있는 아이였다. 그래서 세 살이 되면 어린이집(프리스쿨)에 가야 한다며 응가 마려울 땐 ‘아이 워너 푸푸’, 쉬야가 마려울 땐 ‘아이 워너 피피’, 배고플 땐 ‘아임 헝그리’, 아플 땐 ‘아임 헐트’ 또는 ‘아임 식’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밀크 플리즈’, ‘런치 플리즈’, ‘애플 플리즈’처럼 매우 간단한 생존 영어를 알려주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사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그런 생존에 필요한 영어 몇 마디가 아니었다. 그 정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두 살 반 아이라도 눈치껏 다 하게 마련이니까. 아이는 그저 정서적 안정이 필요했을 뿐이다. 한국말을 잘하는 아이는 엄마가 아닌 다른 한국 사람들과 있을 때는 엄마가 옆에 없어도 자연스럽게 정서적인 안정을 느끼는 듯했다.
그런데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영어만 사용하는 미국인들에 둘러싸여 매일 여섯 시간씩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 하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아이는 프리스쿨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두 주 동안은 매일 아침 눈물로 내 치맛자락을 붙잡고 서럽게 통곡했다.
“엄마, 나 혼자 두고 가지 마세요. 빠방 타고 같이 집에 가요. 엄마랑 같이 집에 가고 싶어요.”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펑펑 우는 아이를 뒤로하고 돌아서는 내 맘은 정말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슬펐다. 그리고 오후 3시쯤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가 반갑게 쫓아와 내 품에 안겨서는 또 서럽게 울었다.
“엄마, 정말 보고 싶었어요. 엄마가 너무너무 그리웠어요. 사랑해요. 안아주세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한국어 존댓말을 잘 배우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는 또 마음이 아팠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혹여나 한국 어른에게 공손한 말도 잘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일찍부터 존대어를 시킨 것도 마음에 걸린 것이다. 이렇게 엄마는 사소한 것 하나에도 아이에게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30개월밖에 안 된 아이를 떼어놓았다는 죄책감에 아이를 프리스쿨에 보내 놓고도 나는 심장이 쿵덕거리고 불안해져서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아이는 원래 어딜 가든 적응을 잘하고 밝고 쾌활해서 엄마가 옆에 없어도 잘 논다. 아이가 27개월일 무렵 한국의 부모님 댁에 몇 달 다니러 갔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아이를 한국 어린이 집에 두 달 정도 보냈었다. 한국인 선생님과 아이들만 있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한국말로 의사소통이 잘 되어 그런지 매일 아침 웃으면서 굿바이 인사를 했던 아이였다. 오후에 일찍 데리러 가도 어울려 노는 것이 좋아 집에 가기 싫다고 아쉬워했었다.
아이를 토닥여달라고 부탁한 후 프리스쿨에서 보내준 사진
그런데 막상 미국으로 돌아와 미국인 선생님과 미국인 아이들만 있는 프리스쿨에 가니 아이의 두 눈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처음 며칠은 적응을 잘하나 싶었는데, 사흘째부터는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울고불고 떼를 썼다. 낯선 환경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었다.
영어 문제도 있었겠지만, 대체로 미국인 선생님들은 한국인 선생님들만큼 아이들한테 스윗하진 않다. 엄마와 처음 떨어져서 우는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기보다는, 우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고 스스로 포기하고 적응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선생님마다 다르고 프리스쿨 방침에 따라 다르다.
이 아이는 마음을 달래주어야 한다. 안아주고 잠시 토닥여주면 위안을 얻고 힘든 일도 곧잘 해내고 바로 적응하는 아이다. 그래서 프리스쿨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아이가 적응할 때까지 등을 토닥여주거나 머리라도 한 번씩 쓰다듬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곧 울음을 그치고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아이는 선생님과 친구들과 친해져서 더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 한창 프리스쿨에 잘 적응하던 아이에게 적신호가 걸렸다.
스마트폰 웹캠 앱을 통해 본 프리스쿨 다니는 아이의 모습 - 프리스쿨 곳곳에 웹캠이 설치되어 있어 학부모가 집에서 아이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해마다 1월 중순이 되면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동네 프리스쿨에는 아이들 수가 늘어난다. 그래서 새로 투입된 초보 보조교사가 서툴러 행동이 거친 아이 하나를 방치해서 아이가 이유 없이 맞고 한참을 운 사건이 발생했다.
보조교사는 다른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빠서 맞은 아이에게 울지 말라고만 말하고, 때린 아이로 하여금 사과를 시키지도 않고 그냥 넘어갔던 모양이다. 나중에 아이를 데리러 가니 아이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내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한국말로는 표현이 다 되는데, 영어로는 표현을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을까. 이렇게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는 그날 위로도, 사과도 못 받고 갈 곳을 잃은 채 헤맸던 것이다.
나는 그 보조교사와 대화하며 조심스럽게 아이가 한 말을 전달했다. 그리고 맞은 아이에게는 위로와 사과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이가 영어를 잘하진 못해도 허그, 쏘리 정도의 영어는 듣고 이해하고 말할 수 있으니,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상대 아이를 불러 화해시키고 사과의 말을 하게 해 달라고도 부탁했다. 이 일을 계기로 어쩌면 나는 유난스럽고 까탈스러운 한국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동네 소규모 프리스쿨은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선생님 한 명당 돌보아야 할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된 교육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야말로 데이케어 수준에서 만족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나름 까다로운 한국 엄마인 나, 여기에서 만족할 수는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