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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이상해요. 유치원 활동에 참여하지 않아요.

- 미국에서 태어난 영어 못하는 세 살 아이들 (2)

by 이현진
2. 아이가 이상해요. 유치원 활동에 참여하지 않아요.


당시 프리스쿨에서는 교사 1인당 12~14명의 어린이가 배정되어 있었다.

아이가 다니는 프리스쿨은 매월 1,000 달러에 어린이의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 그리고 두 번의 간식까지 모두 제공되었다. 게다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 사이에 아무 때나 아이를 맡기고 데려올 수 있으니 항상 많은 아이들로 넘쳐났다.


만 2살 무렵에 기저귀 떼는 훈련을 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평균 만 3살 무렵에 기저귀를 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가 속한 2살 반 선생님들은 아이들 기저귀까지 갈아줘야 하는 힘든 노동을 하고 있었다. 엄마로서 내 수고는 덜었으나 이런 환경이 과연 아이에게도 좋은 것인가 또다시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는 선생님을 잘 따르고, 영어가 늘어서 수다스러워졌으며,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잘 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쏘우 머취 굿 보이'라는 칭찬까지 듣게 된 아이는 사실 영어가 짧아서 때때로 한국말로 떠들어서 선생님의 귀를 기울이게 해서는 도리어 선생님에게 엄마, 아빠를 가르쳤다고 한다.


한동안 프리스쿨 생활에 적응을 잘하던 아이에게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보였다. 어느 날부터 선생님을 따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고집을 부려서 선생님을 좀 힘들게 했다는 것이다.


이 무렵 아이는 자기 이해와 자아의식이 발달하는 중이라서 집에서도 자주 그랬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크고 체력이 좋아 항상 밝고 에너지가 넘치며, 호기심이 많고 눈치가 빨라 좀 급하게 서두르는 면이 있었다. 그리고 자존심이 강해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도 강한 아이였다. 내 입장에서는 아이와 한국말로 서로 의사소통이 되니 바로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고 이것이 성장과정 중 하나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한국말을 모르고 아이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니, 선생님은 아이가 왜 그러는지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프리스쿨 원장 선생님이 연락해 왔다. 아이가 말도 안 하고 지루해하고 활동에도 별로 참여를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혹시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아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생기는 문제라고 여기는 듯 보였다. 왜냐하면, 다민족, 다인종, 다국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미국에서는 이중언어 환경에 처한 상당수의 아이가 모국어도 영어도 모두 조금씩 늦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는 한국말을 잘하고 성장발육도 또래 아이들보다 빨라 95% 정도에 속한다. 영어로 말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기본 어휘는 좀 알고 눈치껏 선생님이 무언가를 시키면 실행하는 정도는 되었다. 알파벳과 숫자도 이미 2살 무렵 ABC 키즈 채널을 보면서 스스로 익혔고 소문자와 대문자도 구분할 줄 아는 아이였다.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제일까?


하루는 아이가 프리스쿨에서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는지 웹캠으로 모니터링을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아이가 다니는 프리스쿨은 교실마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부모들이 집에서 셀폰이나 태블릿으로 자신의 아이를 살필 수가 있다.

확실히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선생님이 시키는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딸랑이를 들고 춤을 추는 또래 아이들을 쳐다보더니 몸을 돌려 책꽂이로 걸어가 거기에 꽂혀있는 책 한 권을 꺼내 펼쳐 들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는 그저 책에 있는 그림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머리, 어깨, 무릎, 발을 손으로 가리키며 춤을 추고 있었다. 두 살 반 프리스쿨 활동은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북을 치고, 딸랑이를 흔들고, 노래를 듣고 하는 것 말이다. 아이는 그런 활동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제삼자의 관찰과 판단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영유아의 경우, 자기 아이는 엄마가 가장 잘 안다고 본다. 그래서 원장 선생님에게 말했다. 아이가 영어는 잘하지 못하지만, 한국말은 잘해서 웬만한 의사소통은 원활하게 하니까 단순히 언어소통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이다. 아이는 평소에 그림을 그리고 만들고 퍼즐을 맞추고 책을 보고 오리고 붙이고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2살 반에서는 그런 활동이 전혀 없어서 지루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두 살이 아닌, 세 살 아이들이 있는 반으로 보내서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30개월 아이는 결국 3살 반으로 보내졌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얼굴에 활기가 보였다. 세 살 반으로 처음 들어간 날, 나와 원장 선생님도 함께 참관했는데, 아이는 두 눈이 반짝반짝하더니 선생님이 시키는 거의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다 참여하기 시작했다. 숫자 맞추기와 알파벳 맞추기 놀이도 재미있게 잘 해내고 있었다. 그 후 31개월이 되자 아이는 기저귀도 자연스럽게 뗐고, 프리스쿨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모습이 수시로 웹캠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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