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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유치원 가기 싫어요.
무서워요.

- 미국에서 태어난 영어 못하는 세 살 아이들 (3)

by 이현진
3. 엄마, 나 유치원 가기 싫어요. 무서워요.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아이 팔에 선명한 이빨 자국이 보였다. 그 주변으로 피멍이 든 것을 보니 머리 위로 열이 확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목소리가 살짝 떨릴 것 같아서 나는 심호흡을 한 후 애써 침착한 얼굴로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아가, 팔이 왜 그래? 다쳤어?"


아이는 좀 속상하고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울먹울먹 했다. 아이가 손을 씻고 있는데 반에 어떤 아이가 달려들어 아이의 팔을 물었다는 것이다. 아이의 말에 이어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고, 바로 원장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잠시 오피스로 가자고 했다.

아이가 습관적으로 친구를 물거나 사람을 물면 꼭 상담을 받아보세요.

원장 선생님은 문서 한 장을 내밀며 읽어보고 싸인을 하라고 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이가 물리자마자 소독을 하고 약을 발랐으며, 만약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상대 아이를 프리스쿨에서 내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원장 선생님이 자초 지경을 설명하면서, 앞으로 보조 선생님을 한 명 더 채용하여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 관리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 아이가 왜 물었냐고 물으니 원장 선생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 아이가 간혹 흥분하면 다른 아이들을 물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 한 명이 따로 전담해서 관리하는데, 그 전담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런 일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원장 선생님도, 그리고 담당 선생님도 내 아이를 문 아이에 대해서는 절대로 누군지 말을 하지 않았다.

넘어져서 다친 것보다 물려서 왔을 때가 더 마음이 아파요.

물린 다음 날 아침 아이는 무서워서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엄마, 나 유치원 가기 싫어요. 무서워요. 나 그냥 집에서 엄마랑 있고 싶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아이가 팔 한 번 물린 것 때문에 잠깐 가기 싫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엄마가 선생님께 우리 데이비드 잘 지켜주라고 꼭 말할게. 선생님이 우리 데이비드 잘 지켜주실 거야. 걱정하지 마. 알았지?”


나는 일단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프리스쿨에 보냈다. 그리고 교실로 들여보낼 때 아이를 맞이하러 온 선생님에게 다시는 아이가 물리지 않게 잘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아이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안정시켜 주세요.

“아이가 아침에 무서워서 프리스쿨에 가기 싫다고 말했는데, 내가 선생님이 안전하게 잘 지켜주실 거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아이가 재미있게 생활할 수 있도록 잘 지켜봐 주세요.”


그러자 내 의도를 알아차린 선생님도 아이를 향해 선생님이 잘 지켜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 후 아이와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일을 하면서도 수시로 프리스쿨 웹캠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왜 무섭다고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지, 도대체 어떤 아이가 흥분하면 수시로 친구들을 물고 위협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결국 선생님이 말해 주지 않아도 그 아이가 누구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많은 아이가 키가 큰 어떤 아이를 계속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 아이도 키가 큰 그 아이가 옆으로 다가오면 불안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었다.


영유아 어린이집에 카메라를 달면 좋은 점이 많아요.


그날 나는 내 아이를 문 아이를 만났다. 한국 아이처럼 보였고, 키가 크고 무척 잘생긴 아이였다. 그런데 뭔가 눈빛이 조금 달라 보였다. 다른 사람과 눈을 서로 마주치지 못하고 불안한 듯, 초점을 잃은 듯 뭔가 겉도는 느낌이었다. 그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멍한 시선으로 천천히 정처 없이 교실을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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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hespecial.kr/?r=special&c=interaction/social_skills&p=3&uid=6354


혹시나 해서 내가 한국말로 “안녕, 이름이 뭐야?”하고 말을 던져 보았다. 그러자 아이가 눈을 반짝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내게 다가와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나를 끌고 갔다. 종이와 크레용이 있는 선반이었다.

“크레용, 이거 크레용. 그림”


한국말이었다. 한국 아이가 맞았다. 그런데 만 세 살이 넘은 아이치고 말이 많이 어눌했다. 영어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크레용이네. 이 크레용으로 그림 그리고 싶어?”


내가 묻자 내 손을 잡은 채로 아이가 ‘응’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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