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구들을 이로 물고 위협하는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선생님이 놀란 듯 다가와 내게 물었다.
“세상에, 아이가 말을 하는 건 정말 처음이에요. 나는 이 아이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어머님은 중국어도 좀 하시나요? 뭐라고 하나요?”
나는 선생님의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요, 나는 중국어를 몰라요. 그냥 한국말을 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그동안 이 아이가 말을 전혀 안 했어요?”
“네, 아이가 말을 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지금이 처음이에요. 그리고 내가 영어로 아무리 뭐라고 해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선생님의 대답에 나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만 세 살이 넘은 이 아이는 한국 아이이고, 한국말만 알아들으며, 영어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말로 표현하는 것도 어눌해서 세 살 아이답지 않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크레용이라고 했는데 한국 발음이에요. ‘이거 크레용’이라는 말은 ‘This is a crayon’이라는 뜻이에요. 같이 그림을 그리자는 것 같았어요. 이 아이 부모가 양쪽 다 한국 사람인가요? 내가 한국말로 인사하고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알아듣는 반응을 보였어요. 그러고는 내 손을 잡고 끌고 와서는 크레용, 그림이라고 말했어요.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냐 물으니 그렇다고 하네요.”
내 말에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이 아이가 한국 아이인지 몰랐어요. 나는 한국말을 모르니까요. 여긴 이중언어를 하는 가정이 많아서 세 살에도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이 꽤 있어요. 그저 부모가 아시아계라서 집에서 모국어를 사용하니까 아이가 아직 영어를 못한다고만 생각했어요. 정말 고마워요. 아이가 뭘 원하는지 알려줘서.”
나는 아이들을 다시 교실에 남겨두고 원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오늘 데이비드 팔을 물었던 아이를 만났어요. 웹캠을 보니 그 아이만 다가가면 다른 아이들이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 피해 다니더라고요. 아, 그 아이를 내보내라고 온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그 아이한테 한국말로 말을 시켰는데 반응을 보이며 내게 간단한 한국말을 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의 한국말 표현이 아직 많이 어눌해요. 영어만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 전반적으로 말이 늦은 아이로 보여요. 일반적으로 말이 느리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아이들이 간혹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물거나 때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혹시 이 아이의 부모와 상담을 해본 적이 있나요?”
내 말에 원장 선생님은 전혀 몰랐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니요. 아침에는 아이의 아버지가 오고 오후에는 아이의 엄마가 와서 아이를 데려가거든요. 오면 둘 다 바쁘게 나가서 깊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어제는 그 아이가 다른 아이의 팔을 물었으니 집에서 훈육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내보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 부모가 둘 다 아이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아서 더는 구체적으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기회가 되면 그 부모와 상담을 꼭 해보세요. 저도 한국에서 교육기관에서 일했었고 또 지금 자식을 키우고 있는 처지라 걱정이 되네요. 아무래도 그 아이는 특별한 돌보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 눈을 서로 못 마주치고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봐서는 살짝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것 같거든요. 물론 제 판단이 틀릴 수도 있지만, 만약 이중언어 스트레스로 인한 언어 지연이라고 해도 스페셜 케어는 필요하니까요.”
내 말에 원장 선생님은 알겠다면서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 후로 나는 원장 선생님으로부터 이 프리스쿨에서 일해 보겠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사실 자신이 없었다. 나는 이미 육아에 지쳐 있었고, 잠시 쉬었던 공부와 글을 쓰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기적 이게도 나는 그 아이의 상태 호전에 관한 관심보다도 내 아이가 또 그 아이에게 물릴까 봐 불안해하면서 이 프리스쿨에 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도대체 아이들은 왜 무는 행동을 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돌 전 아이들은 무엇이든지 입으로 가져가서 탐색하고, 물고 빠는 행동을 통해 정서적인 만족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유치가 나오는 시기에 잇몸이 간지럽고 불편함을 느낄 때 닥치는 대로 입에 넣고 깨무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두세 살 아이들이 사람을 자꾸 깨물 때는 부모가 아이를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1) 언어 발달이 더딘 아이들이 의사소통이 잘 안 되면 물기도 해요.
세 살이 넘어도 아이가 친구를 자꾸 깨무는 행동을 한다면 언어 발달 수준이 어떤지 확인해 봐야 한다. 아이는 언어 표현의 수준과 말의 속도, 발음 등이 어눌할 경우 스스로 의사를 표현하는 데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싶은데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때 말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서 친구를 무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2) 감정처리가 미숙하면 무는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언어나 신체 발달 측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아이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적절하게 표현하고 처리하는 방법이 미숙할 때 무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짜증이나 분노, 좌절감, 불안, 흥분의 감정이 들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거나 해소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물거나 던지거나 때리거나 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3) 방어기제 표현으로 무는 행동이 나타날 수도 있어요.
세 살이어도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감정에 대한 표현이 미숙하다. 그래서 자기의 영역을 침범당했거나 위협을 느꼈을 때 방어기제 표현으로 무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친구가 장난감을 빼앗아가려고 할 때 친구의 손이나 팔을 물어버리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4) 불안한 마음에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공격적인 행동 즉, 무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부모가 부부싸움을 심하게 해서 아이가 불안감을 느꼈을 때, 얼마 전 동생이 생겨서 사랑을 빼앗길까 봐 불안함을 느낄 때 그럴 수도 있다.
5)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 무는 행동을 할 때도 있어요.
아이는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 무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부모가 아이 외에 다른 존재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집중한다면 아이는 불안감이나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때 아이가 누군가를 물거나 때리는 행동을 보였을 때 부모와 선생님의 관심이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경험을 하면, 나중에 관심을 받고 싶을 때 계속 무는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가 무는 행동을 보일 때는 단호하게 이야기해 주고 부적절한 강화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