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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한국말만 해요.
What do you want?

- 미국에서 태어난 영어 못하는 세 살 아이들 (5)

by 이현진
5. 아이가 자꾸 한국말만 하려고 해요.
So? What do you want?


내가 동네 프리스쿨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비단 내 아이가 또 팔을 물릴까봐 겁이 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후 자꾸 친구들을 무는 아이는 전담 보조 선생님이 항시 붙어다니면서 특별 케어를 시작했다. 그래서 아이는 나름 3살 반에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3살 반으로 옮긴 지 두 달이 좀 안되었을 때였다.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담당 선생님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듯 말을 시작했다.


“데이비드가 요즘 영어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아이가 우리반으로 왔는데, 그 아이가 온 후로 데이비드가 계속 그 아이와 한국말로만 대화하고 있어요. 그동안 영어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선생님이나 다른 친구들이 영어로 하는 말은 잘 듣지도 않고 오로지 그 아이와 한국말만 하려고 합니다. 이러면 영어가 늘지 않을 거예요. 집에서 어머님이 데이비드에게 잘 설득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아도 동네 프리스쿨은 거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데이케어 수준이라서 속으로 다른 프리스쿨로 옮겨야지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선생님이 아이가 계속 한국아이와 한국말만 하려고 한다고 충고를 해 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론 한국 친구와 놀면서 정서적인 안정을 찾고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 의지가 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프리스쿨에 있는 동안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앞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어느 정도는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우리처럼 집에서는 한국어 위주로 생활하는 이중언어 가정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몬테소리 스쿨에 아이를 입학시키기로 결정했다. 학비는 2017년 기준으로 10개월에 약 13,000달러, 그리고 여기에 여름방학 때 있는 여름 캠프 두 달 학비 약 2,600달러와 다른 부가 비용까지 추가하면, 1년 학비가 약 18,000달러 정도가 들었다. 동네 프리스쿨 학비가 1년에 약 12,000달러이고 여기에 점심식사, 간식비까지 모두 포함되고 오후 6시 이전에 아무 때나 데려올 수 있는 조건까지 고려한다면, 확실히 사립학교는 학교에 머무는 시간 대비 학비가 비싼 편이다. 비싼 만큼 효과가 있겠지 하는 기대로 나는 아이를 다른 프리스쿨로 보내기로 했다.


아이는 여전히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상태로 몬테소리 사립학교의 프리스쿨 과정에 입학했다. 내 몸 하나 편해 보자고 아이를 프리스쿨에 보내긴 했으나 사실 그리 편하진 않았다. 비싼 학비는 학비대로 내고, 집에서 점심 도시락과 간식을 모두 싸서 보내야 했으며, 8시 30분에 등교시키고 3시까지 데리러 가야 했다. 하루 6시간 집에서 편히 내 일에 집중해 보겠다고 선택한 사립학교였으나, 현실은 그리 자유롭지 않았다.


몬테소리 스쿨 놀이터와 잔디밭


그래도 아이는 새로운 학교를 무척 좋아했다. 잔디밭도 넓고 놀이터도 나름 좋았으며 뒤뜰엔 정원도 있고 야외교실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교실이 넓고 한 반에 선생님들도 서너 명씩 상주하고 있어서 아이들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관심을 받고 학교생활을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지금도 처음 몬테소리에 갔을 때 선생님이 던진 첫 질문을 잊을 수 없다.


“What do you want for your child here?”


뭐? 이 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게 뭐냐고? 이 질문에 나는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귀를 의심했다. 이게 미국식 화법인 건가 아니면 내가 외국인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약 3초 후 나는 조금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What do you mean? We are at school now.”

“무슨 뜻인가요? 우리 지금 학교에 있는데요.”


내 말에 선생님은 아차 싶었는지 태도를 바르게 한 후 다시 말을 시작했다.


“I mean, what kind of education do you want us to give for your child? I was asking what was your purpose in choosing our school. If there is anything you want from our school, please let me know.

“제 뜻은, 어머님께서 우리가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하길 원하시는지, 우리 학교를 선택한 목적이 무엇인지 묻는 거였어요. 우리 몬테소리 스쿨에서 원하시는 게 있다면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아이 교육을 위해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데 원하는 게 뭐냐고 학부모에게 되묻는 선생님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처음엔 나는 이렇게 선생님의 그 질문이 좀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를 공립학교로 전학시키면서 알았다. 공립학교에서는 아이의 취미, 아이가 좋아하는 과목, 아이가 사용하는 언어, 아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음식, 좋아하는 운동, 좋아하는 학교 분위기, 그리고 학교가 아이에게 제공해 주었으면 하는 것들 등 꽤 많은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작성해 달라고 온라인 문서를 학부모에게 이메일로 보낸다. 이러한 과정들이 학교마다 조금씩 다를 뿐이지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질문들이 아이를 위한 맞춤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몬테소리 스쿨의 야외교실

아무튼, 내가 되물었다.


“나는 이 학교가 아이들의 사회성과 협동심을 길러주는 게 교육 목표라고 해서 선택했는데, 이것 외에도 이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 목표가 또 있나요? 있으면 알려주세요.”


내 질문에 선생님은 입시 학원 상담자처럼 대답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아카데믹한 부분에 대해서죠. 영어를 더 잘하게 한다던가, 수학을 더 잘하게 한다던가, 과학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든가 하는 것들 말입니다.”


이 대답에 나는 더 심기가 불편해졌다. 3살 아이를 데려다 놓고 아카데믹한 스킬을 가르치기를 원하냐고 묻다니. 사립학교 부설 프리스쿨과 동네 데이케어의 분위기가 다르다고 하더니, 바로 이런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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