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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는 한국아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 미국에서 태어난 영어 못하는 세 살 아이들 (6)

by 이현진

6. 미국 사는 한국아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우리 아이의 모국어는 대체 무엇?>


동네 차일드 케어에서 프리스쿨 적응을 마친 세 살 아이는 이제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호기심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호기심을 어떤 방식으로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 나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사실 동네 차일드 케어 방식이든 사립학교 부설 프리스쿨 방식이든 미국인 부모를 둔 일반 미국 아이들에게는 크게 상관이 없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태어난, 영어 못 하는 세 살 아이를 키우고 있던 나로서는 아이가 킨더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영어에 익숙해지기를 원했다.

다행히 아이는 언어 발달에 별문제가 없어서 만 두 살이 되면서 한국말을 비교적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게 되어 사물 묘사나 세세한 감정 표현까지도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도 집에서 한국말을 꾸준히 사용해 준다면 한국말을 잊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많은 연구에서는 모국어를 습득하는 데는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고 한다. 그 시기는 13세 전후, 이를테면 사춘기가 시작되기 이전이다. 왜냐하면, 통상적으로 13세 이후에 이루어지는 제2 언어의 습득 과정은 모국어를 사용할 때 처리하는 두뇌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시기가 지난 후에 배우는 언어는 모국어 수준에 이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최근 연구에서는 13세 이후에 제2 언어를 습득하더라도 학습 능력이나 학습 방식, 학습 양, 학습 환경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모국어처럼 활용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제2 언어 습득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그만큼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결국 이 두 견해를 통합해 보면, 완벽한 이중언어 구사를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두 언어를 꾸준히 사용하면서 가능한 많은 시간 동안 그 두 언어에 노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고 불리는 만큼, 건국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이주해 오는 해외 이민자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이중언어 혹은 다중언어 환경의 아이들에 관한 연구가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으며, 일부 주에서는 공식적으로 영어 외에 스페인어나 불어 등 이중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근래에 이루어진 일부 연구에서는 두세 개의 언어에 노출된 아이들이 더 창의적이며 문제 해결 능력도 더 좋다는 결론을 얻기도 했다. 또한,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부모가 가장 익숙해하는 모국어로 깊이 있는 대화를 자주 나누면서 그 언어에 완전히 익숙해지면, 영어나 다른 언어를 더 쉽게 습득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어려서부터 모국어에 능숙할수록 영어도 모국어만큼 유사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다문화 가족들을 대상으로 이중언어 교육을 권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 사는 한국 아이에게 모국어란 어떤 언어일까?


미국에서 모국어는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꾸준히 듣고 익숙해진 언어, 첫말을 떼기 시작한 언어를 통상적으로 모국어로 본다. 그리고 동시에 영어도 모국어가 되어야 한다. 이른바 두 언어를 모두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이중언어’ 구사자이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부모의 영향 아래 자라면서 태아 시절부터 한국말을 들었고 영유아 시절 내내 부모와 한국말을 주고받으며 30개월까지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한국말로 해 왔던 내 아이에게 모국어는 한국말이다.


그런데 ‘한국에 사는 한국 아이들이 모국어인 한국어를 습득하는 것’과 ‘미국에 사는 한국 아이들이 한국어를 습득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에 사는 한국 아이는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영어가 제2 언어겠지만, 미국에 사는 한국 아이는 한국어와 영어가 동시에 모국어가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 문화와 영어도 모국어 습득 과정처럼!>


어떤 특정 언어로 의사소통을 잘한다고 해서 그 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언어 습득이란 곧 그 언어권의 문화와 역사와 지식을 함께 습득하는 과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 소속된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습득해야 할 미국 문화를 나는 내 아이도 일찍 체험하기를 원했다. 이를테면 세 살 아이가 내게서 한국문화와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 문화와 영어도 모국어 습득 과정처럼 순조롭게 되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리 복잡한 내 마음을 짧은 영어로 아이의 선생님에게 어떻게 잘 설명할 것인가. 일단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이용해서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아이가 아직 3살이라서 우리는 아직 아카데믹한 부분에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아이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규칙을 익히고,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바랄 뿐입니다. 가족, 친구들이 모두 한국 사람들이라 내내 한국말만 하고 한국문화에만 익숙한 상태라서 아이가 자라면서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요.

이 학교는 3,4,5세 아이들을 한 교실에서 함께 교육하면서 서로 돕고 이끌면서 경쟁이 아닌 협동을 중시하는 사회성을 길러준다고 해서 관심이 갔습니다. 그러니 아카데믹한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지 마시고, 가능한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아직 책 읽지 않아도 됩니다. 수학 문제 풀지 않아도 돼요. 과학원리 아직 몰라도 됩니다. 이 아이는 무언가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색종이를 오리고 접고 하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고요. 이 학교가 아이들과 함께 정원도 가꾸고 야외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더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아이가 영어를 유창하게 못 한다고 책을 읽지 못한다고 주눅 들지 않게 해 주세요. 아직 세 살이니까요. 지금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영어를 익힐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면서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동 규칙을 왜 지켜야 하는지, 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그 후 좀 더 자라서 아이가 아카데믹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 그때 조금씩 소개해 주세요. 그게 바로 제가 원하는 겁니다.”


내가 언제 이렇게 길게 말을 할 정도로 영어를 잘했나 싶었다. 다소 장황한 내 말이 끝나자, 선생님의 표정이 한결 편안하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전과는 다른 부드러운 말투로 내게 말했다.


“이렇게 말해 주는 부모님은 데이비드 엄마가 처음이에요. 모두 학구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말해왔거든요. 책을 잘 읽게 해 주세요, 수학에 관심을 가지게끔 유도해 주세요, 영어를 잘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정말 백이면 백 이런 부탁을 해 왔답니다. 정말, 솔직하게 아이에게 공부시키지 말라고 한 부모님은 제 16년 교육경력 중에 어머님이 정말 처음이에요.”


선생님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교사의 말이 더 믿기 어려웠다. 한국도 아니고, 중국, 일본도 아닌 미국에서? 어려서는 아이들을 실컷 놀리고, 바깥 활동을 자주 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 미국에서 말이지?


“정말 내가 처음이라고요? 아시아에선 워낙 경쟁이 심해서 아이들 공부를 중시하지만, 여기 미국은 그렇지 않잖아요?”


내 물음에 선생님이 아니라는 듯 살짝 고개를 흔들더니 대답했다.


“미국에서도 사립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은 아시아의 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사실 나도 데이비드 엄마와 같은 아시아 엄마는 처음이라 조금 당황했어요. 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미국 부모들도 아시아 부모들처럼 학구열에 높답니다. 물론 저희는 아이들의 사회성을 가장 중시하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카데믹한 부분도 놓치지는 않습니다. 어머님 말씀대로 데이비드가 우선 학교에 잘 적응해서 공동 질서와 규칙을 잘 지키고, 좋은 교우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잘 지도하겠습니다. 오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동 교육자로서 진정한 프리스쿨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어요.”


<다! 전부다! 잘했으면 좋겠...>

자, 여기서 솔직하게 고백해보자. 우리는 정말 우리 아이를 위한 좋은 교육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후 얻은 결과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을까?


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 왔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때와 내 자식을 키울 때는 그 마음가짐이 다르다. 가르치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 교육에 임하지만, 정작 내 자식은 ‘다, 전부다’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은연중에 있어서 욕심이 생긴다. 말로는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정작 마음속으로는 내 아이가 사회성과 협동성 그리고 학구적인 부분까지 모두 잘하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어느새 일곱 살배기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바로 어제 일을 떠올린다. 아이가 수학 문제를 풀 때 ‘더, 조금 더’ 어려운 문제를 자꾸 소개하면서 은근슬쩍 아이를 다그쳤던 나 자신을 반성해야겠다. 다음에 또 그럴지언정 지금은 일단 초심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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