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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Jun 18. 2021

언제쯤 맛없는 수박을 고를 수 있을까?





여름이면 우리 가족은 수박을 자주 먹는다.

며칠 전에도 수박을 사러 한살람에 들러서 맛있어 보이는 수박을 한통 골라서 샀다.

한살림에는 일반 마트처럼 물건이 아주 많지 않아서 수박 두세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보통이다.


집에 와서 수박을 반으로 자르는 순간, 세상에나 껍질이 아주 얇고 올해 먹어본 수박 중에 맛이 최고였다.

엄마도 감탄하며 수박이 너무 맛있다고 하셨고, 더워서 헥헥거리던 우리 멍멍이도 수박을 한 그릇 먹더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맛있는 수박을 먹어서 감사했고, 요즘 나의 에너지가 좋아져 운이 좋다며 기분이 한껏 좋았다.

그런데 잠시 후 내가 이렇게 맛있는 수박을 골라와서 다른 사람은 덜 맛있는 수박을 먹어야 한다니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이런 생각이 든 건 난생처음이다.








얼마 전 문득.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도 이기적인 동기에서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조회수가 많으려면 나를 드러낸단 생각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 담긴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실 요즘 개인적으로도 신앙이 (예전보다는) 조금 성숙하면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깊이 느끼고 있는 것과도 맞물렸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정말로 우리는, 세상은, 지구는 모두 연결되어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이 결국 나에게 잘해주는 것인데,

 내가 더 달고 맛있는 수박을 먹겠다고 열심히 수박을 고르는 것과 내가 했던 말은 너무 모순이지 않은가.


분명 동생이랑 같이 수박을 사러 갔다면 동생네 더 맛있는 수박을 사줬겠지만,

아직은 우리 가족이 맛있는 수박을 먹는 것이 더 좋기에 맛없는 수박을 고를 자신이 없다.


언제쯤 나는 뒤늦게 온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달고 맛있어 보이는 수박을 남겨둘 수 있을까.

그게 어렵다면 언제쯤이면 물건을 살 때 많이 고르지 않고 대충 골라서 사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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