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동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현 Aug 17. 2015

거리에서, 마주치는 그 추억들

Magazine 동글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은 기억 속에 저장된다. 어떤 기억은 금방 사라지지만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기억들이 있을까. 어린 시절 성장기를 보냈던 4층짜리 아파트와 그 옆의 놀이터, 중학교 시절 외삼촌들과 축구를 즐기던 외갓집 바로 뒤의 국민학교, 대학교 시절 힘겨웠던 고백에 행복한 마침표를 찍었던 그 호프집, 생각해보건데 기억에 남는 대부분의 일들을 떠올릴 때 그 일이 일어났던 장소를 함께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이별 뒤에 힘든 것 중에 하나는 '장소' 때문이다. 함께 데이트했던 동네, 처음으로 고백한 그 거리, 다투고 화를 삭이며 어떻게 사과하지 고민했던 그 골목,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를 보러 갔던 그 극장, 이별 후 시간이 흘렀을 때 그 장소, 그 거리를 우연히라도 가게 된다면 그 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 난다. 그때 또 한 번 가슴이 아려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ovP-VNnuP0k

왜 하필, 그곳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을까. X요일의 저녁이었다. 약속을 잡고 기다리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 날이 시작이 될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내가 잘 가지 않는 생소한 곳에서 만나자고 할 걸 그랬다. 그 때 내가 살고 있는 동네 구석 구석에는 너와 나의 흔적이 가득 남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 다녀야 하는 그 곳을 지날 때마다 그 때의 모습이 환영처럼 내 눈 앞에서 아른거리는 듯 하다.

나는 아직도 그 곳을 지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대부분 그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랑도 다툼도 힘겨운 적응도 모두 그 곳에서 이뤄졌다. 그 거리는 길고, 많은 버스들이 그 곳을 지난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그 경로를 피해 다닌다.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던 그 동네 역시 왠만하면 가지 않으려고 한다. 왠지 모를 서글픔과 아련함이 나를 감싸기 때문이다. '에이, 왜 떠오르고 그래'하며 고개를 저어도 어쩔 수가 없다.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거리를 피하고 싶다. 참 잊기 힘들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인지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이유다. 그 거리를 걸을 때면 왠지 니가 있을 것 같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비슷한 모습의 사람을 발견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당연히 그 때와 지금은 다른 모습일텐데, 내 머릿 속에 남아 있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가 계속 다른 사람 위에 내려 앉는다.

많은 이별을 해왔다. 추억의 장소를 대하는 내 마음도 점점 달라질 것이 자명하다. 잊혀져감에 따라 그 장소에 남아 있는 추억은 단순한 기억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대학로 낙산공원, 인천 주안, 강변역 등의 장소는 이제 그땐 그랬지 하며 웃으며 걸을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저 그 시간이 어서 오길 바랄 분이다.

언제쯤 그 '거리에서' 미소를 띄며 너를 추억하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도 그 거리는 아련함, 그리움, 애타는 마음으로 나를 맞이한다. 이 또한 이별의 과정일테니, 언젠가는 지나갈테다. 그리움, 아련함 또한 감정에 대한 자극일테니, 자주 느끼고 익숙해지면 무덤덤해질려나. 지금은 최대한 그 거리를 가지 않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결국은 시간이 중요하다. 그 거리의 의미가 퇴색할 시간 말이다. 한 번의 사랑이 끝나면 많은 것들과 이별해야 하는데, 심지어 거리, 장소와도 이별을 해야하나 보다. 떠나 보내야 할 것이 많다. 생각해보면, 사랑을 할 때 많은 연인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둘 만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 즉, 사랑이 끝났을 때는 부여했던 의미들을 거둬 들여야 한다는 말인데, 워낙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이것이 꽤 쉽지 않은 작업이 되는 것이다. 의미 부여는 서로 하기도 하고, 혼자서 하기도 하니, 이별 후 해야 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추억이 어린 물건이나 온라인, 모바일 기기의 흔적들은 치워 버리면 되는 법인데, 이놈의 거리라는 장소는 내 힘으로 어찌할 방법이 없다. 부동산 재벌이 되어야 할까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