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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현 Aug 24. 2015

가시 돋친 선인장들의 사랑

Magazine 동글

성시경 - 선인장, 작사 윤사라, 작곡 조규만
우리에게는 가시가 있었다. 

너의 가시는 크고 길었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가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조금만 다가가도 찔려 피가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가시가 자라난 이유를 알게 됐다.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게 됐다. 살아오며 입게 된 수 많은 상처, 그 자리에 딱지 대신 가시가 돋았다.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시가 없는 사람이니까, 너의 가시에 비록 내가 찔리더라도 최소한 내가 너를 다치게 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 역시 가시가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진 가시는 피부 속에 숨어 누워 있는 그런 종류였다. 특정한 자극이나 상황에서 꼿꼿이 일어나는 가시였다. 너의 것에 비해 매우 짧고 가늘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가시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

서로 다가갈수록 깊은 상처가 남았다. 너의 가시에 찔린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가진 가시를 곧추 세웠다. 그래도 우리는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혼란스러웠고, 너는 실망했다. 처음에 알았던 그 모습과 다르게 날카로운 작은 가시들이 빼곡히 박혀 있는 나는 너에게 실망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그런 가시를 갖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뒤 내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헷갈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너는 나를 믿지 못했고, 나는 자존감을 잃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멀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WIfDO9fLgoY

기적 같은 알아봄, 극적인 이끌림, 어떤 사랑은 그 어떤 이성적인 판단도 가미되지 않은 상태에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한 번쯤 꿈꾸는 열정적인 사랑, 미칠 듯한 사랑. 하지만 아쉽게도  상처뿐인 기억만 남긴 채 이별 역시 극적이다. 격렬하게 서로를 드러내며 솔직함을 외쳤지만, 문제는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배려의 부족이었다.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알 수 없다. 그 사랑은 기쁨과 배움이었지만 동시에 고통과 후회였다. 온갖 수식어와 미담을 끌어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사랑의 시작을 포장해보지만 이미 끝나버린 사랑 앞에 강렬한 기억은 오히려 고통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이별의 미담과 운명적인 사랑의 사례들을 끌어와 허무했던 그 이별을 포장해보려 하지만 결국 그저 흔한 이별 중 하나였다.


다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가시 돋친 선인장들의 사랑을 했던 것이다. 다가갈수록 아팠고, 곁에 머무를수록 상처가 깊어졌다. 너와 나는 사람이었으니까, 너를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성인이 되고자 했지만 망상일 뿐이었고, 너는 너의 굵고 긴 그 가시를 컨트롤하지 못했다. 


우리의 사랑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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