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동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글로 Sep 02. 2015

잘 되는 '복면가왕'에 딴죽걸기

나름의 애정표현이라니까요. 믿어주세요.

어느덧 가을이다. 각종 시상식으로 수놓아질 연말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올해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거론될 신예 거성(巨星)이라면 <복면가왕>을 빼놓을 수 없겠다. 2015년 설 연휴 특집으로 내보냈다가 반응이 좋아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그야말로 벼락스타다. 


본래 시청률이라는 것에 딱히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지만, 14.3%(닐슨코리아 기준)면 큰소리 칠 만한 성과임에 분명하다. 여기에 인터넷 방송이나 다시보기로 재생되는 횟수까지 계산하면 더욱 탄탄한 성적표가 된다. 종합편성채널(종편)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시시각각 치고 들어오는 환경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하다.


노래, 그 중에서도 특히 국내 가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에 관련된 프로그램은 언제나 반갑다. 같은 일밤 출신이었던 <나는 가수다>도 그랬고, JTBC의 <히든싱어>와 <끝까지 간다>, tvN의 <퍼펙트싱어>, 각종 오디션 형태의 프로그램들까지. TV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뭔가 시간이 붕 뜬다 싶을 때마다 챙겨보는 것들이다. 요즘 구석에 처박아뒀던 IPTV 리모컨을 종종 집어드는 이유다.



편견을 깨고 오직 가창력으로만 승부하는 진짜 대결. 복면가왕이 내세운 슬로건은 간소한 멋이 있었고, 강렬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반가운 얼굴들, 그룹 활동에 가려져 노래 실력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아이돌 보컬, 가수는 아니지만 수준급의 가창력을 가진 다른 분야 인사들까지. 많은 '목소리'가 무대에 올라 존재감을 뽐냈다.


<복면가왕>은 수많은 목소리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줌과 동시에, '노래한다'는 행위의 영역을 가일층 확장시켰다. 고작 가면 하나(물론 만드는데 들어가는 창의력과 정성은 인정해야할 것이다) 씌움으로써 얻은 효과로 이만하면 대성공이 아닐까.


정규 편성 후 상승기류를 타던 몇 개월 전. 그제서야 설 특집 방송분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EXID 솔지의 '가수가 된 이유'(원곡 신용재)를 들었다. 묘하게 마음이 먹먹해져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은 기억이 난다. 정규 방송 1,2대 가왕이었던 f(x) 루나의 노래 중 '엄마'(원곡 라디)를 듣고나서는 슬쩍 휴대폰을 들어 어머니께 전화를 걸기도 했었다. 꽤 오래 전부터 노래방 애창곡이었던 '나는 나비'(원곡 윤도현밴드) 때는 한껏 들떠서 따라부르기도 했다.


이때 가면은 참 소박하고 단촐했는데 말이지...


3연속 가왕에 올랐던 김연우(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와 그를 끌어내렸던 이정(노래왕 퉁키)까지만 해도 최대한 본방송을 챙겨보려 노력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영 시들해졌다. 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가수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는 있다. 국내 가요를 좋아한다지만, 애초에 취향이 그리 폭넓은 편은 아니니까. 


시들해진 이 기분의 주된 이유는 분명 따로 있다. <복면가왕>의 주력 시스템은 목소리나 노래 스타일 등을 듣고 누군지를 맞추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몇 달째 반복되다보니 이제는 다소 힘겹게 느껴질 때도 있다. 노래만 들은 뒤 누군지 추리하는 대목에서는 딴짓을 일삼는 스스로를 발견한 후 내린 결론이다. 과연 이것이 그저 나 혼자만의 문제일까? 한때는 좋아했지만 이젠 좀 덜해져버리면서 따라온 변덕이요 권태일 뿐일까?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출발했던 전적이 있기에 솔직히 좀 불안하다. 가면이라는 요소 하나를 중심축으로 내세워 음악 프로그램을 재해석한 시도는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수였다. 반면에, 보여줄 수 있는 한계는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어느새 가까이 와있다는 느낌이다. 


지금처럼 새로운 가면을 쓴 누군가가 등장해 노래를 부르고, 투표를 받으며 대결해나가는 심플한 구도가 언제까지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을까? 이미 복면가수들이 노래하는 부분의 영상만 인터넷으로 시청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방송은 제쳐두고 말이다. 앞으로 무대에 오를 사람들 역시 온 힘을 다해 음악을 끌어안아온 사람들일진대, 프로그램의 인기 척도가 변함으로 인해 그들이 무고한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시작부터 끝까지, 시청자들과 호흡을 함께 하는 예능이 되고자 한다면 '포맷의 진화'를 논해야할 시점이 아닐까.


시청률은 분명 <복면가왕>이 '한창 잘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시청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 나가는 프로그램에 괜스레 딴죽을 건다고 손가락질한다 해도 사실 할 말은 없다. 물론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님을 손가락 걸고 장담할 수 있다. (별 쓸모는 없겠지만.) 그저 바라건대, 간만에 만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좀 더 길게 장수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무한도전>이라는 거물 예능을 빚어낸 이력도 있는데, 이미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쨌든,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쇼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xbrVHVMrwI

'쇼' 하니 문득 추억의 그 노래가 떠올라 링크 투척.


매거진의 이전글 가시 돋친 선인장들의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