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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Sep 30. 2015

'특집'이라는 이름의 옥토(玉土)

시즌 특집은 방송 아이템의 등용문? 이거, 이야기 되는데요?

추석 연휴가 끝났다. 예전이었다면 더없이 소중했을 '꿀연휴'였겠지만, 이번엔 다친 허리를 부여잡은 채 절반 이상 잠으로 소일했다. 어차피 몇 개월 째 '하얀 손'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는 그저그런 빨간 날들의 집합일 뿐이었지만.


밤 11시 정도가 되면 슬그머니 포털에서 '편성표'를 검색한다. 뭐 재미있는 특집방송 같은 건 없는지를 뒤적거린다. 구미가 당기는 몇 가지를 찜해놓고 부지런히 캘린더에 방송시간 알림까지 등록해놓는다.


지난번 설 특집을 통해 <복면가왕>이 발굴된 사례를 보며, 편성표 속 '특집'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됐다. 그건 방송계에도 적지 않은 센세이션이었을 테지만, 내 스스로에게 꽤 날카로운 자극이었다. 명절 한정으로 준비했던 프로그램이 의외의 성과를 기록하면서 정규편성에 입성하는 기염을 토했으니, 본능적으로 후속타를 기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추석특집으로 선보인 SBS <심폐소생송>과 MBC <듀엣가요제 8+>는 괜찮은 시도였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더 있었지만, 허리 펴고 大자로 뻗어 있느라 모두 챙겨보지 못했다는 원죄로 말미암아...... 본방사수에 성공한 두 가지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려 한다.






<심폐소생송>, 스포트라이트 뒤에 그들이 있었음을


보통 가요 정규 앨범에 수록되는 곡 수는 적게 잡아도 10여 곡 이상. 그 중 타이틀곡과 후속곡 등으로 선정된 곡만이 해당 아티스트의 활동기간 동안 '방송에 출연하는 영광'(?)을 얻는다. 선정되지 못한 나머지 곡들도 많은 사람들의 영감과 땀이 들어갔을진대, 스포트라이트는 그 모두를 비춰줄만큼 폭이 넓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본의 아니게 '숨겨진 곡'이 되어버린, 소수만이 안다는 그런 곡들. <심폐소생송>이라는 프로그램의 핵심 아이템이다. 내가 본방송을 지켜봤던 2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곡은 김태우가 부른 '말처럼 되지가'였다. 기준 득표수를 넘어서고 원곡자인 클릭비가 등장했을 때 뭉클 솟구치던 느낌. 이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한 사람이라면, 아마 제각각의 이유로 말미암아 기억에 새겨진 곡이 하나씩 있으리라 생각한다.


높은 곳에 오르지 못했다 해서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가지 못했다 해서 패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뒤'에 선 존재들이 있었기에, 앞으로 나선 이들이 더욱 찬란해보일 수 있는 법이다. 타이틀로 선정되지 못했더라도, 방송을 통해 소개되지 못했더라도, 그런 곡들이 있었기에 앨범 전체가 더욱 향기로울 수 있었으리라.


오랜만에 보는 완전체 클릭비.


<듀엣가요제 8+>, 흥미롭긴 했지만 살짝 심심했다


<복면가왕>을 배출해 낸 MBC가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아이돌 걸그룹의 멤버와 일반인 팬의 듀엣 무대. 콘셉트만 놓고 볼 때는 (일단 성별 차원에서......) 마음에 들었다. 다만 아쉬웠던 건, 콘셉트 만큼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되지는 않았다는 느낌 때문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콘셉트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불후의 명곡>에서도 시도한 바 있는 부분이고, <복면가왕>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프레임이다. 실력 있는 일반인들을 무대로 초대한다는 콘셉트 역시 마찬가지다. <히든싱어>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에서 이미 여러 차례 선보였던 방식이다.


두 가지 콘셉트의 조합. '가수와 팬이 듀엣으로 무대를 꾸민다'는 점이 새롭게 파생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걸 핵심으로 두고 감상하기엔 조금 부족한 구성이지 않았나 조심스레 평하고 싶다.


<복면가왕>처럼 토너먼트 방식을 채택하기엔 분량이 부족했을까? <불후의명곡>이나 <나는가수다>처럼 공연 순서 뽑기를 적용했다면 너무 지루해졌을까? <히든싱어>나 <끝까지 간다>의 방식을 빌어 여러 명의 팬을 무대 위에서 함께 만나보고, 그 중에 뽑는 방식은 어땠을까? 짧은 지식으로 세워본 여러 가지 가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승의 영광은 마마무 휘인 듀엣이 가져갔다. '우승'이라 하기엔 뭔가 허전하긴 했지만......



특집으로 미리 맛 좀 보고 가실게요


이런 맛깔스러운 소재를 언론매체에서 놓칠 리 없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몇 가지 사실관계 확인 차 포털을 뒤적이다 보니 특집방송들의 정규편성 여부를 다루는 기사가 이미 여럿 보인다. 반응이 대체로 괜찮았던 건지, 아니면 정말 대중문화 전문가들이 블루칩(Bluechip)으로 낙점해서인지,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정규편성 가능성을 점치라 한다면...... '반반'일 게다. (무 많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심폐소생송>은 긍정적, <듀엣가요제 8+>는 글쎄? 라고 답하고 싶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번 특집방송에서 보여준 것만을 놓고 이야기한 것이다. 다채로운 방송 콘텐츠를 매주 꾸준히 볼 수만 있다면야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마다할 이유가 있으랴!


화제를 좀 돌려보자. 사실, 특집으로 내보냈던 각각의 프로그램이 정규편성 되고 안 되고는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닐지도 모른다. 한 발짝 물러서서,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하나의 '현상'을 짚어낼 수 있다. 특집을 통한 방송 아이템 발굴이라는 좀 더 큰 프레임.


장르와 포맷을 불문하고, 꾸준히 연속 송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말은 쉬워 보이지만, 비전문가의 시각으로 보기에도 고려해야할 것은 차고넘치게 많다. 아이템이 아무리 좋다한들 일사천리일 수는 없으며, 오히려 다른 허들에 걸려 정규편성의 문턱을 넘지 못한 아이템도 수두룩할 것이다. 이는 비단 방송 뿐만 아니라 다른 콘텐츠 영역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논리다.


특집방송의 경우, 이 제약에서 조금 더 자유롭다. 일단 기간이나 횟수가 한정돼 있다는 점. 이것만으로도 제작 과정 허들 중 상당수를 치워버릴 수 있다. 꾸준히 선보일 건덕지가 없는 아이템이 오히려 특집으로는 안성맞춤일 수도 있다. 포인트는, 이런 식으로 대중 앞에 선 아이템이 '시청자 반응'이라는 지표를 등에 업게 된다는 것이다.


한 번 시험대에 오른 아이템이라면, 여러 단계를 건너뛸 수도 있는 법



그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을 지도 모르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콘텐츠 시장에서 시청자 반응을 어느 정도 미리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대중성과 다양성을 겸비한 콘텐츠를 만드는 데 있어 무시할 수 없는 뒷배를 확보하는 셈이다. 즉, '특집' 자체가 '새 프로그램을 발굴하기 위한 등용문'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그럴싸한 흐름이 완성된다.


그래, 누군가의 말마따나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이제 없을 지도 모른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작년 10월 경 펴냈던 저서 <에디톨로지>를 통해 '창조란 곧 편집'이라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무(無)에서 태어난 뭔가가 아닌, 기존의 것들을 활용한 분해와 재조립, 그리고 재해석. 이런 과정을 통해 기발한 콘텐츠가 탄생할 때마다 '편집창조론'은 힘을 얻는다.


존재했으나 알려지지 않았던 곡들을 끄집어냈던 <심폐소생송>, 기존 콘셉트를 섞은 가운데 새로운 가치를 보여줬던 <듀엣가요제 8+>. 두 프로그램은 모두 크게 보면 '편집'의 기법을 통해 탄생했다. 그리고 '특집'이라는 문을 통해 런웨이에 올랐다.


여기까지가 이번 명절 특집을 지켜보며 완성한 하나의 가설이다. 당분간 여기저기 들쑤시며 특집 프로그램들의 정규편성 여부를 지켜볼 예정이다. <복면가왕>의 뒤를 잇는 후발주자가 탄생한다면, '아이템 발굴의 수단'으로서 시즌 특집의 위상이 보다 단단해지는 셈이다. 그 후엔? 아마...... '특집'이라는 단어를 붙인 시도가 더 다양해지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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