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싱어>의 취향저격 테크트리, 다음 스킬은 뭘 찍을까요?
첫 방송이 언제였더라. 2012년 12월. 이야...... 벌써 꽤 오래 됐다. <히든싱어>를 본방송으로 처음 봤던 건 시즌1 두 번째 회차였던 김경호 편. 이건 정말이지 '취향저격'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방송시간 맞춰 TV 앞에 앉는 일이 대체 몇 년만이던가.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집중했던 프로그램이 대체 얼마만이던가.
2일(금) 밤, 이번 추석특집 <히든싱어>의 번외 격으로 선보였던 <도플싱어 가요제>가 스페셜로 편성돼 다시 한 번 전파를 탔다. 혼성 그룹의 조상님쯤 되는 쿨(Cool)이 완전체로 출연했고,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던 윤민수, 임창정, 휘성, 환희 등이 여럿 무대에 올랐다.
가수 본인과 매회 우승자 단 한 명. 목소리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도플갱어'와 같은 두 사람을 가려내는 일은 훨씬 힘있게 나를 잡아끌었다. 매 시즌 진짜 가수가 몇 번 방에 있는지를 찍으며 프로그램을 즐겼던 나로서는, 기존의 본편이나 왕중왕전보다 더욱 흡입력 있는 포맷이 아니었나 싶다. (청중평가단 나가면 사고칠 유형 1순위)
다른 음악 소재 프로그램보다 <히든싱어>가 좀 더 끌렸던 이유를 꼽자면, 그들이 내세운 프로그램의 메인 아이템이 '모창'이었던 까닭이다. 아, 모창 하니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모창에 얽힌 개인적인 인연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한다.
어디 보자...... 중학생 때 즈음이었으니, 벌써 15년 가까이 된 이야기다.
노래 듣고 부르는 게 마냥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를 졸라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를 샀고, 친구들과 노래방도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노래방은 PC방, 오락실 등과 함께 학생 출입금지 장소로 지정돼 있었다. 하지만 질풍노가다(?)의 시기. 그저 즐거우면 장땡이었던 패기 넘치는 소년들이 그런 고리타분한 규칙 나부랭이에 굴복할 리 없었다.
시험기간이든 단축수업이든 오후에 시간이 좀 난다 하면 곧장 노래방으로 직행. 일단 갔다 하면 최소 2시간은 기본이었고, 어떤 때는 밤 10시가 돼 미성년자 출입제한으로 쫓겨날 때까지 버틴 적도 있었다. 애창곡을 부르는 도중에 학생지도 선생님들이 떴다 하면, 그냥 다음날 학생부로 출석하는 한이 있어도 마이크는 놓지 않는 깡다구도 부려봤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내 변성기를 아작냈던 주범은 아무래도 노래방이 맞는 것 같다. (내 성대야, 노래방아, 미안하다!)
그 시절, 또래 사이에서 노래 실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두 가지였다. 고음, 그리고 모창. 누가 더 높은 노래를 부르나, 누가 더 원곡과 비슷하게 부르나. 몇몇씩 짝지어 노래방을 다녀온 다음날이면 학교에는 '어제의 노래방 무용담'이 암암리에 퍼져나가곤 했다. '누가 'Tears'를 원 키로 부르더라', '누가 조성모 노래를 진짜 똑같이 부르더라' 같은.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고음과 모창에 매달렸나 싶지만, 그 당시 '노래방파'에게는 그 두 가지가 곧 자존심이었다.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던 고등학교 시절. 보통 변성기가 지나고 목소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어야 할 나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목소리는 여전히 '위쪽'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하도 고음 타령을 해대느라 목소리가 쉰 채로 굳어버린 건지, 아무튼 고음만 되고 저음은 안 되는 기이한 모양새였다. 뭐, 딱히 문제가 있다거나 생활이 불편한 건 아니라서 그냥 그런대로(?) 살았기 때문에 대체 원인이 뭐였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금 목소리는 꽤 많이 가라앉았다.)
그런 목소리를 가진 채로 KCM이라는 가수를 알게 된 건, 어찌보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자 가수한테 운명 운운하는 게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2003년 SBS 드라마였던 '때려'의 OST 타이틀곡 '알아요'. 그게 KCM이라는 가수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2연타로 터진 '흑백사진'. 정말 미쳤었지, 그땐... KCM의 노래는 내 귀에도 안성맞춤이었고, 신기하게도 따라부르기에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아, 3집 타이틀곡이었던 '태양의눈물' 후렴 파트의 돌고래 소리(?)는 빼고......
노래방을 처음 다니던 시절부터 흉내내려 했던 가수들을 꼽자면 열 손가락은 족히 채울 듯하다. 대학 시절까지 그렇게 보낸 결과, 친구들로부터 가장 호평을 받았던 건 KCM 모창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그 시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음주가무에 고음 자랑질(?)을 반복한 탓에 목에 엄청난 스크래치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론 : 지금은 못 부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platNO0sDo
뭔가 시간이 한꺼번에 확 지나버린 느낌이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사실 노래를 차근차근 익히고자 한다면 모창은 그리 추천할만한 방법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고유한 목소리가 있고, 그 특징을 살리는 것이 가장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법이다. 라고 예전에 잠시 다녔던 보컬 트레이닝 학원에서 배웠었다.
사람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신원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고유하다고들 한다. 즉, 누군가의 목소리를 '완전히 똑같이 낸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모창이란 글자 그대로 흉내내어 부른다는 의미. 듣는 사람의 귀를 속일 정도로 타인의 목소리와 창법 등을 비슷하게 흉내내는 것이기에 자연스러운 방법은 아니라는, 뭐 대충 그런 이야기다. (엄격하게 확인된 팩트는 아님을 미리 자수합니다)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히든싱어>를 첫 시즌부터 즐겨 보면서 모창에 얽혀있는 추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모창능력자'라는 타이틀로 무대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가수의 오랜 팬임과 동시에, 모두들 노래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처럼 보였다는 점. 그들이 꽤나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노래 실력도 실력이지만, 한 사람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따를 수 있다는 게 참 멋져 보였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나도 계속 했으면 어땠을까? 어차피 노래를 업으로 삼을 만큼의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즐긴다는 마음만으로 계속했더라면 지금 저 사람들 사이 어딘가 즈음에 나도 서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2012년 말에 첫 시즌을 시작했으니, 어느새 만으로 3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모창 + 일반인 초대. <히든싱어>가 채택한 아이템은 간결했지만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강력했다. 뭐, MC인 전현무 씨 특유의 깐족거림과 결정적 순간을 질질 끄는 진행이 조금 밉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는 변함이 없다.
오늘(3일) 밤 11시 <히든싱어>의 네 번째 시즌이 시작된다. 첫 게스트는 '아시아의 별' 보아. 'ID: Peace B'를 부르던 내 또래의 소녀는 어느새 글자 그대로 '별'이 됐다. 몇 가지 검색을 좀 해보니 이후로 예정된 라인업이 기대 이상이다. 그들 모두가 루머가 아닌 출연 확정이라면, 난 이번 시즌도 기꺼이 정신줄 놓고 빠져들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취향저격을 선보인 프로그램. 또 한 번의 '숨겨진 가수'를 기다리는 이 때, <히든싱어>가 선보일 'NEXT'가 무엇일지를 상상해보는 일은 더없는 두근거림이다.
그 은은한 심장박동과 한 쪽 귀에 슬쩍 걸쳐놓은 헤드셋으로 들려오는 노랫말. 어쩌다 한 가닥씩 적어가던 'Story歌' 시리즈를 또 한 편 쓰고 싶어지는 밤이다. 에휴, 이러니 내가 노래를 놓을래야 놓을 수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