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현 Jul 09. 2015

습작 #2 - 힐러?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은 없다

우리는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상처를 주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상처를 주는  잔인하다. 모든 존재는 아름답고 소중한데 거기에 잔인한 스크래 주다니. 가끔 인간은 동물과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물리적인  아니라 감정적인, 정서적인  주고 다는 점이다. 그래서 복잡하다. So complicated.


물리적인 상처는 , 연고, 반창고 등으로  가능지만 감정에 남아진 상처는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 작은 상처들을 주고 받다가 우리는 서로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돌아섰다. 언제나  사람의  걱정 나였지만 마지막 상처는 나에게도 너무 컸기에 당장 내가 괜찮아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은 없었다.


. 나에게 상처를   사람이 돌아와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면 치유  버프가 걸렸을테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기대는 점차 절망이 되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있는 것을 다했다. 지금도 하고 있다. 이렇게 글을 써서  상태을 남기는  또한 치유의 행위다. 점점 담담하게  감정을 말할  있게 되고 있다. 나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거겠지.


그럼에도 가끔  처방이 아쉬울 때가 있다.  처방전만 내게 주어진 나는  편해질  있을텐데. 하지만 스스로 알고 있다.  처방은 임시적일 뿐이라는 것을. 약효는 금세 약해질테고 나는 다시 아파질테다. 결국 자체 면역력을 기르는  밖에 없다.


면역력이 높아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사람에게 내가  상처가 미안해지는  때다. '이제   만한가 보다' 싶다. 내가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어. 하지만 그럴  없겠지. 그리고 확신할 수도 없다. 


그 마음이 그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결국 상처를 치유해줄 사람은 . 



작가의 이전글 가잖아, 우리는 얼마나 왔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