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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Sep 30. 2022

미군 '위안부' 손해 배상 소식에 그는 울었다

 


미군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대법원 원심 확정 기사를 보다,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 소송에 참여했던 한 기지촌 여성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축하를 전하고 싶어서였다.      


기지촌 여성에게 가해진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받기 위해 8년이 걸렸다. 1심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국가가 자행한 폭력을 인정한 것이다. 대규모 기지촌이 형성되었던 파주에서도 19명의 기지촌 여성이 이 소송에 함께 했는데, 통화를 한 이모님(알고 지내기 시작하면서 이모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도 그중 한 분이다.  

    

얼마나 좋으시냐는 내 말에 이모님은 잠시 말씀을 잇지 못했다. 조금의 진정 후 그는, “어제 그 소식을 듣고 나서 가만히 있는데 눈물이 주르륵 나는 거야.” 그 한 마디에는 그간 겪었을 고독과 슬픔과 분통함이 녹아 있었다. 8년이나 걸릴 일이었을까. 이모님의 동료 중 한 분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사람들(기지촌 여성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동두천 하얀 건물(동두천 낙검자 수용소)만 말하는데, 여기(파주시) 검진소에서도 주사(페니실린) 맞고 많이 죽었어. 우리가 못 먹고 해가면서 달러를 얼마나 벌어들였는데 그 돈으로 나라가 ...” 이제야 국가폭력이 확정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분통함과 살아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듯 여겨지는 공동체 내 ‘부존재의 감각’ 등이 이모님의 분절된 말속에 떠다니고 있었다.      


이모님의 선유리 집 근처 둑길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주황색 철교가 보인다. 이 다리는 미군 기지였던 캠프 개리 오언으로 들어가던 다리다. 미군은 철수하며 미군 기지의 흔적을 지웠지만, 아직도 떡하니 버티고 있는 철교는 이곳이 미군 기지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마치 식민지에 대한 지배를 과시하려는 듯 교만히 버티고 서 있는 침략자의 동상처럼 말이다. 


어느 하루 이모님에게 캠프 개리 오언 다리를 가리켜 물은 적이 있다. “저 다리 보면 어떠세요?” 이모님은 딱 한마디만 했다. “속상하지 뭐.” 공연한 걸 물어 마음을 헤집어 놓은 듯해 종일 미안했었다.     

 

기실 뭘 어떻게 한들 이들의 침해당한 존엄이 회복되겠는가. 대법원 판결은 그저 억울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응답일 뿐, 이들 개개인이 겪은 무참한 피해에 대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그럼에도 법적 정의를 세워야 하는 까닭은, 우리 사회가 저지른 침해를 성찰하고 이들의 회복에 모두가 나서야 하는 책임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경기도는 2020년 기지촌 여성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이어 같은 해 파주시에서도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생존한 기지촌 여성들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이 목적인데, 무엇보다 질병이나 빈곤으로 생활이 어려운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돌보기 위한 조치다. 임대 보증금 지원이나 생활 안정 지원금, 의료 급여 등이 포함되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아무런 실효적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연되는 정의에 대해 이모님은 한숨 섞어 “사람들 다 죽고 난 다음에 하려나 봐”라고 했다.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국가 폭력이 마침내 대법원에서 인정됐다. 경기도와 파주시도 이 결정에 박차를 가해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지원이 하루빨리 실행되도록 조속히 나서주기를 촉구한다. 지체되는 정의로 노쇠한 기지촌 여성들이 모두 스러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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