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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Oct 28. 2022

전쟁터의 여자들

2022 여성인권과 평화 온라인 영화제를 보다

불안하다. 전술 핵이 언급되고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헛소리가 난무하니 더욱 그렇다. 사는 곳에서 북쪽으로 십여 분만 차로 이동하면 통행이 금지되는 민통선 검문소가 있고, 가까운 오두산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을 쓰면 북쪽이 보이는 접경 지역에 살다 보니, 북(전쟁)이 결코 먼 곳이 아니라는 감각이 있다. 북의 핵, 미사일 위협이 나날이 최고 수위로 치닫고 있어 걱정이 커지는데, 핵 운운하며 긴장을 고조시키는 사람들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      


전쟁은 만인에게 재앙이지만 모두 공평한 불행을 겪는 것은 아니다. 아이, 여성, 노인은 전시 폭력의 주된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2022년 여성인권과 평화 온라인 영화제는 전시 성폭력, 여성의 말하기, 여성 연대라는 세 가지 열쇳말로 총 9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이 중 세 편을 소개한다. “여성을 파괴하는 건 국가 본질의 파괴하는 것이다”라는 피해자의 증언이 새겨지길 기대하며. 


<잊혀진 필리핀 위안부> (비욘 옌센 감독, 다큐멘터리)


전시 성폭력은 일본군 위안부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한국 일본군 위안부는 그 중심에 있다. 일본군 위안부 중 피해 규모가 가장 컸고 또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가장 오래 피해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인권운동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지하듯 위안부는 어디에든 있었다. 일본군이 있는 어느 곳이건 말이다. 필리핀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필리핀 마닐라 일본 대사관 앞에 모여 “정의를 실현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노인 여성들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끈을 맨 푯말을 몸에 두르거나 손 푯말을 들고 외치고 있는 이들이 바로 필리핀 일본군 위안부다.   

  


인터뷰에 나선 노인 여성들의 서사는 폭력으로 얼룩져있다. 일본군에게 끌려가 갖은 고난을 감내해야했고 가족이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일본군에 납치되었을 때 이들은 모두 초경도 시작하지 않은 10대 초반의 소녀들이었다. 겨우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거친 음식으로 연명하며 군인들의 세탁과 식사까지 도맡는 노동에 허덕였다. 전쟁이 끝나고 풀려났지만 이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혼자였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이들이 택한 것은 망각과 침묵이었다. 이들의 아픔을 조롱하는 “일본 걸레”라는 혐오는 이들의 입을 더욱더 틀어막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밀어내도 “모든 게 되살아”났고, 공포와 치욕과 절망이 얼룩진 기억은 꿈속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숨어살던 이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한 건 로사 헨슨의 최초 증언 이후였다.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 게 아니라는 공동의 감각은 이들을 결집시켰다. 롤라 센터에 일본군 위안부 모임이 결성되고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비로소 입에 잠긴 자물쇠에 열쇠를 꽃을 수 있었다. 


이들이 입을 열기까지 모든 과정이 수월할 리 없다. 어떤 이들은 전쟁의 피해자인 이들을 오히려 비난했고 혐오했다. 이들이 계속 말할 수 있었던 건 서로의 용기였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 “참 힘들구나 위안부 여성의 삶이란”은 서로를 향한 위로와 연대였다.   

 

<유령을 부르며-전쟁, 강간, 여성에 대한 이야기> (카르멘 옐린치츠 감독, 다큐멘터리)


이 영화는 ‘세르비아 인종청소’로 악명을 떨친 제노사이드를 다룬다. 이들의 재앙은 보스니아의 프리예도르 마을이 세르비아인들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시작된다.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단지 세르비아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끌려가 모진 구타와 고문, 성폭행, 학살을 당했다. 


이들을 끌고 간 군인은 어느 날 들이닥친 용병이 아니었다. 지역에서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며 지내던 이웃이나 친구였다. 한 인터뷰이가 “이 시대에 이런 일이 가능한가?”라고 자문한 것처럼, 이들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폭력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지체되는 현실 인식과 달리 이들은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졌다. 수용소에서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 신음과 비명소리를 들어야 했고, 여자들은 밤마다 끌려 나가 집단 강간을 당했다. 끌려 나간 이후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못했다. 수용소를 기자들이 급습해 폭로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하나둘 풀려나지만, 이들을 구성하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이름 없이 살아야 했다.”     


침묵하며 잊으려 해도 꿈속에서 매일 재생되는 그날의 현장들은 이들의 삶을 갉아먹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나았을 텐데”라는 자학이 이어졌다. 아트란카 치겔이 최초 증언을 할 때까지 사람들은 세르비아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남겼다. 같은 수용소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신 말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들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는 냉담한 세상과 내통하는 대신, 세르비아의 “계획된 전략”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영혼을 파괴했는지 낱낱이 밝히기 시작한다.      

수용소에서 어떤 폭력도 강간도 없었다는 거짓을 깨부수기 위해 피해자들을 수소문해 만나고 증언을 듣고 증거를 모았다. 유엔 국제인도법 위반 행위로 국제 형사 법원에 이들을 기소했다. 법정의 판사는 “강간은 인종청소 정책의 필수 수단”으로 기능했으며, “여성들이 정의를 얻을 수 없다면 정의는 없다”고 판결했다.      


<마마 콜로넬> (디외도 아마디 감독, 다큐멘터리)     


‘마마 콜로넬’은 오노린 대령을 이르는 말이다. 그는 콩고 경찰대 소속으로 아동보호 및 성폭력 방지 전담반의 책임자다. 부카부에서 활약하던 그는 갑자기 키싱가니로 전근 발령을 받는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과 여자들은 심각한 학대와 소외를 겪고 있었다.   

   

콩고 공화국의 키상가니 마을은 우간다와 르완다의 통치권 싸움으로 큰 내상을 입은 지역이다. 지금은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가며 그날의 학살은 잊혀진 전쟁이 되었지만 그 피해는 살아 꿈틀댄다. 남자는 여자를 때리고 어른은 아이를 학대한다. 특히 전쟁 중 남편을 잃고 강간을 당한 여성들은 제대로 된 삶을 꾸릴 수 없었다.



오노린 대령은 이들을 모은다. 빈곤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이들이 함께 거주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한다. 여자들이 말하는 강간의 피해를 듣다 오노린 대령은 절망하지만 도망칠 수 없다. 어떻게든 이들이 떳떳이 살아가도록 돕는다.  

    

오노린 대령은 마을을 돌며 주민들에게 호소한다. 폭력과 학대를 멈추라고, 그리고 전쟁의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같이 돕자고. 이윽고 “진짜 피해자”라는 전쟁의 피해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는 누가 봐도 명백한 피해를 입은 남자들은 “희생자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며 정부가 발급한 증명서를 쥐고 흔들며 그를 압박한다. 서류로 인정받은 자신들만이 ‘진짜 피해자’며 ‘가짜 피해자’를 도와서는 안 된다고 강변하다.    

 

마을에서 강간 피해 여자들이 왜 침묵하고 숨어살아야 했는지 증명되는 상황이었다. ‘진짜 피해자’와 ‘가짜 피해자’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 오노린 대령은 마을의 혐오와 저항에 굴하지 않는다. 계속 마을을 돌며 강간 피해 여성을 도울 것을 호소한다. 


계란에 바위 치는 호소에 지쳐가던 오노린 대령에게 어느 날 한 무리의 여자들이 찾아온다. 시장 상인이라고 신분을 밝힌 여자들은 강간 피해 여성들을 돕겠다면 어렵게 모금했을 약간의 돈을 내민다. “지금껏 혼자라 생각했”던 오노린 대령이 다시 ‘마마 콜로넬’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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