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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미안해요 '소희'씨...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 2023)

by 그냥

이런 세상밖에 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해서, 영화 <다음 소희> 리뷰를 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독자님들이 이 영화를 꼭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몇 자 적습니다. 참혹해도, 괴로워도, 미안해도,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될 테니까요.

<다음 소희>는 2017년 LG 유플러스 콜 센터로 현장 실습을 나갔다 끝내 자살하고만, 전북 직업계 고등학교 홍수연을 모티브로 합니다. 당시 수연은 고작 18세였습니다. 그의 전공은 애완동물과지만, 아무 상관 없는 콜 센터로 실습 배정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노동 강도나 업무스트레스가 가장 커 욕받이 부서로 불리는 ‘해지방어부서’에 배치되었습니다.

매일 갖은 압박과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죠. 죽기 며칠 전 친구와 과음하고 손목을 긋는 것으로 이미 ‘죽을 것 같아요. 제발 살려 주세요’라는 사인을 보냈지만, 모두 수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는 급성 우울증이었을 거예요.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영화는 수연의 죽음을 사후 부검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그의 죽음을 따라가게 만듭니다. 우리에게도 책임을 묻고 있는 셈이죠. 왜 수연을 살리지 못했을까요. 후회는 항상 늦습니다. 아이를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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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가 직업계 고등하교 현장 실습을 멈추게 하는 기폭제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실습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쪽이었지만, 생각을 바꿨습니다.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능력이 사회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소희의 죽음을 파헤치는 경찰과 동행하다 보면 깨닫게 됩니다. 아무도 불법과 잘못된 관행을 고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명백한 불법이 자행되었지만, 모두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소희의 죽음의 책임에서 빗겨나고 있었어요. 소희가 실습 나간 LG유플러스의 책임자는 물론이고, 노동청도, 그의 담임도, 학교 당국도, 교육청도 모두 책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을 살리려면 실습을 없애는 방법 말고 다른 길이 있을까요.

딸애의 절친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취업한 곳이 콜 센터였습니다. 그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이곳저곳 이력서를 냈지만, 고등학교 졸업장으로는 취업할 곳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애가 취업한 때는 이미 소희의 사건이 있은 뒤였고, 콜 센터의 업무 과중과 불법 착취 구조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어 있었어요.

그 애의 엄마를 만나게 된 날 넌지시 콜 센터 문제에 대해 아는지 물었습니다. 그가 너무 담담하게도, “그럼요. 그래도 다 저하기 나름 아니겠어요”하는 바람에 더 이상 얘기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안다고 했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심한 그는 실은, 수연의 사건이나 콜 센터 문제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을 겁니다. 알았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이런 말 콜 센터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너무 죄송하지만, 나는 그 애가 그곳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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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구조의 문제를 모두 개인의 능력에 떠넘기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이 말은 대부분 전혀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기 나름일 수가 없습니다. 그저 수연처럼 자신도 모른 채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울 뿐입니다. 구조적 착취를 어떻게 개인 나름으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회사의 불법과 과도한 착취에는 개인이 아니라 노동조합으로 맞서야 합니다. 유베이스 수원 콜센터 상담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대항했어요. 물론 저항에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외친 한 노동자의 절규처럼, 죽으려고 일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음 소희를 연이어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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