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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Feb 24. 2023

그냥 돈 없이 살겠다는데, 왜 심각한 말을 하지?

<0원으로 사는 삶> (박정미, 2022, 들녘) 서평


‘이런 삶도 있구나!’ 책을 읽다 보면 놀라운 삶을 만나게 되는데, <0원으로 사는 삶> 속 인생도 경이로웠다.      


이 책의 저자 박정미는 “늘 인정받고 싶고,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타인의 평가에 자신을 맡기게 되면 쫓기듯 살 수밖에 없다. 그도 그랬다. 나름 의지껏 투신했던 군 생활을 접고 영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은 그를 환대하지 않았다.      


모두 알고 있듯, 영국은 물가가 매우 비싼 나라다. 특히 집세가 그런데, 어지간한 벌이로는 한 달 수입 대부분을 임대인에게 고스란히 바쳐야 할 정도로 살기가 팍팍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해고당하자 그는 생존의 벼랑 끝에 서게 된다. 당장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고, 어떻게 갈 것인가(교통수단)’를 해결해야 했다.   

   

어떻게든 작정한 기한까지는 영국에서 버텨야 했기에 어떻게 하면 돈을 쓰지 않고 살아남을지  고심한다. 그때 ‘우핑’(유기농 농장에서 자원봉사로 숙식을 제공받는 상호교환 네트워크)을 알게 되고, 이들이 연결한 ‘올드 채플 팜’을 찾아 나선다. ‘0원살이’ 첫 발작을 내디뎠다.      


‘0원살이’, 소비를 버려야 가능하다   

 

유기농 농장이었던 ‘올드 채플 팜’에서 그는 도시에서 누리던 일상을 깡그리 버려야 했다. 기름진 음식, 부드러운 침상, 매일의 세탁이나 목욕은 허용되지 않았다. 자급자족이 원칙인 농장은 자본주의 대량생산과 연결된 모든 소비와 단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지낸 것도 아닌데 이내 생태적 삶의 불편함에 직면하자, 평생 이런 방식으로 살면서도 감사와 충만이 가득한 이들에게 경외감을 가지게 된다. 문득 풍요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인생에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는 것은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된다는 뜻이다. 도시에서 마음껏 먹고 쓰고 그저 소비하기 바빴던 삶이 부끄러웠다.      



‘올드 채플 팜’은 그에게 조건 없는 환대를 주었다. 이에 힘입어 도전을 시작한다. 돈을 쓰지 않으면서 화석연료도 배출하지 않는 이동 수단은 단연 자전거이지 않은가. 자전거를 여행의 이동 수단으로 삼기로 작정하고 여러 자전거 숍에 ‘0원살이 프로젝트’를 알리는 메일을 보내 무상으로 자전거를 기부해 줄 수 있는지 타진한다. ‘기브 앤 테이크’ 삶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런 도전은 어이없을 정도로 무모해 보이지만, 놀랍게도 두드린 문이 열렸다. 무상으로 자전거를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0원살이’를 지지하며 ‘선행 베풀기’를 한 자전거 기부자는, 선행을 기부 한 사람에게 갚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행운이 밀어주는 바람을 등에 맞으며 그의 ‘0원살이’여정은 다시 시작된다. 그가 이번에 찾은 곳은 자급자족 공동체 ‘팅커스 버블’이었다.  

    

이곳 역시 도시에서 누린 안락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땅에서 나오는 것으로만 생계를 유지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음식은 지극히 소박했고, 목욕은 일주일에 한번 그것도 스케줄을 조정해 정해진 날에만 겨우 가능했으며, 화석연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아 노트북조차 쓰기 힘들었다. 모든 것이 불편했지만, 놀랍게도 불편을 겪고 있는 건 오직 그뿐이었다.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긋하고 태연하게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그간 아무렇지 않게 먹었던 음식에 대해 깊이 고찰한다. 농약과 화학비료에 찌든 관행농 방식으로는 자연과 공생할 수 없다는 것, 다국적 기업의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이 심대한 생태계 파괴를 저지고 있다는 것, 가축에게 먹이기 위해 세계 식량의 삼분의 일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 투기꾼과 결탁한 대규모 식료품 회사의 매점으로 부조리한 식량 분배가 자행된다는 것 등, 결국 이로 인해 식량이 남아도는데도 세계 인구 10%가 기아에 허덕이다 죽어간다는 불편한 진실은 ‘너 자신이 먹는 것을 알라’고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의 ‘0원살이’는 생태적으로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내모는 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     


생태 공동체에서 큰 환대를 받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도시에서 ‘0원살이’를 이어간다. 그는 더 용감해지고 있었다. 돈 안 쓰는 주거를 알아보다 ‘급진주거네트워크’를 알게 된다. 이들은 런던의 가공할 임대료에 저항하기 위해, 보트피플, 카라반 등의 모바일 리빙 (영화 <노매드 랜드>의 사람들처럼), 버려진 창고나 공장을 고쳐 사는 웨어하우스 리빙, 오랫동안 비어있는 집을 점거해 살아가는 스퀏팅 등 다양한 대안 주거를 고민하고 실행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 ‘프리건’(자유로운 무소비주의자는 뜻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기대 생산되는 물품의 소비를 거부한다)으로 인간에게도 자연에게도 해가 되지 않게 살아가는 평화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무지의 노동자’로 살아갈 때 시스템은 우리에게 권력을 휘두른다. ... 진짜 혁명은 화염병을 던지며 시위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지 않는 생활습관에서 시작된다”는 신념을 실행하고 있다.     


저자는 한 달간 ‘보트피플’로 살아길 수 있었는데, 비어있는 보트를 흔쾌히 내준 호스트의 초대로 가능했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은 덤이었다. 호스트가 기부한 음식이 비어가자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돈을 쓰지 않고 어떻게 음식을 조달하지 고민하다 ‘스킵다이빙’을 알게 된다. 유저들은 ‘스킵다이빙’을 누군가의 “버려진 음식을 구조하는 자랑스럽고 신나는 생계 활동”으로 정의하고, “음식을 공유함으로써 생명 대 생명으로 관계를 맺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한 끗 차이로 어긋나버리면 구걸과 다르지 않기에 저자는 몹시 주저하지만, 여러 차례의 문전 박대를 딛고 기꺼이 남은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기부자를 만나게 된다. 음식점 등에서 폐기될 음식이라면 어차피 쓰레기가 되고 말 터, ‘스킵 다이빙’은 막대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묘안이지 않은가. 그의 “런던에서의 ‘0원살이’는 쓰레기 덕에 가능했다.”     


욕망을 버리니 가벼워졌다     


점차 저자의 ‘0원살이’는 지금까지의 소비적 삶을 전복시키는 ‘작은 혁명’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다시 ‘올드 채플 팜’으로 발길을 돌리고 이곳에서 그의 ‘0원살이’는 분수령을 맞는다. 지금껏 꾸려온 번잡스럽던 삶의 행태가 실은 생태를 해치는 죄악에 공모해온 것이었으며, 미친듯이 소비하며 살아온 삶에 큰 결여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농장 인근 계곡에서 홀로 캠핑을 하며 두려움을 직면한다. 하지만 실상 이곳에 두려워할 것이 무어란 말인가. 고요한 숲에 자신을 해칠 것이 무어란 말인가. 오히려 지금껏 자신을 해쳐온 것은 무지막지한 소비였고, 사랑받기 위해 안달 내며 소모한 무모한 감정이지 않은가.   

   


그는 난생처음으로 명상을 통해 “나의 숨과 에너지와 피가 이 자연에서 왔다”는 연결감을 느낀다. 그는 “이토록 안전한 세상을 찾은 덕에,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참된 인간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변화, ‘진화’를 시작했다.” 이쯤 되면 그는 내 관점에선 득도한 사람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책 1부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2부는 그가 더 담대히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는 행보다. 마침내 런던을 떠나 독일, 폴란드를 거쳐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그리스에 이른다. 무일푼으로 말이다. 자연에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탯줄’을 붙잡고 일어날 일을 하늘에 맡겼다. 무모해 보이는 그의 여정은 타인의 조건 없는 환대와 호혜로 완성되었다.   

   

2부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나같이 세속적인 사람이 이해하고 옮기기엔 역부족이다. 그의 ‘0원살이’ 작은 혁명이 영성으로 나아가는 정진은 독자들이 직접 확인해 보길 권한다. 책을 읽고 나면, 지금은 지리산 한 자락에 낡은 집을 고쳐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이 혁명가를 찾아가고 싶어진다. 물론 마음만이다. 나의 호기심이 그의 고요를 망쳐서는 안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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