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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May 05. 2023

'난 그 여자 불편해'라는 당신 속마음의 정체는?

<난 그 여자 불편해> (최영미, 2023, 이미출판사)


방정환을 더 이상 인권운동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     


‘어린이날’하면 방정환이 떠오른다. 그만큼 프로파간다가 명백한 결과일 터다. 하지만 김명순을 알고부터 나는 더 이상 방정환을 어린이날과 병치시키지 않는다. 이제 내게 그는 한 재능 있는 여자를 ‘꽃뱀’으로 몰고 가 매장시킨 몹쓸 남자 문인 중 하나다.      


그렇다고 ‘어린이날’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천도교소년회(방정환은 이 집단의 일원이었다)가 1922년 어린이날을 제정했을 당시엔 어린이란 존재하지도 않았을 개념이었고, 아이들이 신분과 가난으로 학대당하는 사례가 즐비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천도교소년회라는 명칭이 이미 암시하듯, 그들이 말하는 어린이에 소녀가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프랑스 혁명이 내건 시민혁명이라는 기치에 여성의 자리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김명순을 잘 모르는 독자는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할 텐데, 김명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본 브런치 https://brunch.co.kr/@@8DRM/150를 참고하기 바란다. 사실 하려던 이야기는 최영미 시인의 책 <난 그 여자 불편해>를 읽은 짧은 감상인데, 불현듯 의식의 흐름이 최영미에서 김명순으로 뻗어나가더니, 이게 하필 오늘이 ‘어린이날’이다 보니 방정환이 끄들겨 나와 버렸다.      


김명순은 재능 많은 문인이었지만, 조선 남자 문인들이 작정하고 ‘김명순 죽이기’에 돌입하자 배겨날 재간이 없었다. 그녀는 이응준에게 강간당했는데도 피해자가 될 수 없었고, 오히려 누가 봐도 김명순임이 명백한 소설 <김연실전>의 조리돌림을 통해 치명적인 2차 가해를 당했다. 비열하고 잔인한 남자들...    

  


‘미투’ 이후 독립출판으로 우뚝해진 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은 2017년 겨울 <황해문화>에 ‘괴물’을 발표하고 문단에서 완전히 매장될 뻔했다. 고은에 대한 그의 ‘미투’는 명명백백한 사실임이 밝혀졌지만, 남성 중심 문단 권력은 그녀를 철저히 ‘왕따’시키는 뻔한 전략으로 고사시키려 했다. ‘네가 감히’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미투’ 이후 누구도 그녀를 만나 주지 않았고, 어떤 출판사도 그의 시집을 출판해 주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그녀가 이쯤에서 털고 어디론가 떠났다면, 김명순의 변주가 될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았다. 머리가 터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이미출판사라는 독립출판을 통해 자신의 시집을 스스로 출판해냈다. 이 책 <난 그 여자 불편해>도 그 산물이다. 

     

난 연대의 표시로 이 책을 구매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후배에게 주려고 두 권을 주문했는데 후배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여분의 한 권은 다른 지인에게 넘겨졌다.      


그녀의 ‘미투’로 문단 내 성폭력이 줄줄이 사탕으로 엮여 나온 건 용기의 결실로 추앙받아 마땅하지만, 이후 그가 겪은 백래시는 후회를 불러올 정도였을 것이다. 해서 이런 사연들이 이 책에 담겨 있겠거니 했는데 내 편견이었다.     

 


물론 문단 내 ‘왕따’로 출판이 불가능해지며 독립출판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지난한 고초가 서술되긴 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오히려 스포츠광인 그가 스포츠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삶의 에피소드가 주 테마다. 거칠게 표현해서 ‘피해자 코스프레’가 없다.      


피해자라도 이런저런 소소한 일상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피해자라고 24시간 365일 숨 돌릴 새도 없이 피해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의 하루에도 때로 웃고 먹고 드물게 싸우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이는 삶의 당위다. 가난하다지만 서울에 집을 둘 정도의 여력은 있다는 게 든든한 지지가 되어준 것 같아 다행이었다.    

  

초창기엔 모든 과정이 너무 복잡해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출판에서 판매까지의 메커니즘을 익혀가는 성취가 돋보였다. 디지털에 부진한 초보자의 ‘멘붕’으로 잦은 좌절을 겪긴 했지만, 익숙해지며 생각보다 할 만해하는 그를 보며 나는 완전히 안심했다.     

 

문단 권력에 무릎 꿇지 않는 그를 지지한다면, 과도한 걱정보다 지금은 책 구매에 나설 때다. 고은은 올해 실천문학사를 통해 시집을 출판하는 인면수심을 보여주지 않았나. 권력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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