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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Aug 08. 2023

밥하다 울어봤나?

가사노동하다 과로사하는 여자들  


올여름 삼잰가? 더워죽겠는데 병치레를 하다 보니, 나약해진 인간은 잠깐 이런 생각을 했다.    

 

6월 말 장마가 한창일 때 맹장수술을 받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더니, 넓게 퍼지던 아랫배 통증이 오른쪽으로 확연히 쏠리자, 이런 통증 처음인데 하며 맹장을 예감하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술 후 병원에선 집에 오고 싶더만, 막상 집에 들어서니 장마로 후덥지근하게 끼치는 실내공기에 짜증이 밀려왔다. 냉방 빵빵 틀어줘 며칠 씻지 않은 몸마저 부숭부숭하게 만들어준 병원의 서늘한 기운이 그리웠다.      


입맛이 돌지 않아 짭짭한 반찬에 물 말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돌아가신 엄마가 그토록 짭짤한 반찬에 집착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냉장고엔 짭짤은커녕 젓가락 갈 반찬 하나가 없다. 근 일주일 음식을 안 했으니 뭔 먹을 게 있겠나... 이놈의 전업주부 팔자, 혀를 끌끌 차고 잔머리를 암만 굴려 봤자다. 누가 빈 냉장고를 음식으로 채워주겠는가. 나는 엄마가 없는데.   

   

딱 삼일만 버티자며 눈 딱 감고 처음으로 반찬을 사 와봤다. 보기엔 모두 먹음직스러워 이것저것 샀는데, 막상 먹어보니 입에 맞는 게 없다. 조미료 맛만 풍성했다. 망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어찌어찌 도망친 원기를 회복해가던 차, 이번엔 그분이 오셨다. 코. 로. 나. 조심조심 여태 버텼는데. 아.., 수영장을 가는 게 아니었는데... 딸애가 꼬시는 바람에 팔랑 귀가 되어 두 번 물에 들어갔던 게 화근이었나 보다.  

 

   


이번에도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아 자가검사키트에 두 줄이 떴다. 임신한 것처럼(ㅋㅋ 키트 모양이 비슷해서, 폐경에 임신일 리가 없지만 왜 섬뜩? 솥뚜껑 보고 놀랐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근데 난 코로나 바이러스를 좀 얕봤었나 보다. 주위 지인들이 엄청 참을성이 많았던 건지 다들 견딜만했다고들 하길래, 나도 좀 아프다 괜찮을 줄 알았다.     

 

삼 일 간 고열과 역대급 근육통에 시달린 후 나흘째 되던 아침, 이제 살았다 싶었다. 근데 웬걸, 나흘 저녁부터 머리가 쪼개지는 두통과 먹은 것도 없는데 위액까지 개어 나오는 구토가 시작되었다. 아니 왜....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겠지 변기 붙들고 버텼지만, 나흘이 지나도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사흘째부터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급성 우울증이 이렇게 오나 보다.      


앓은 지 일주일 넘어가자 이번에도 집에 먹을 게 없어졌다. 차라리 혼자 아팠으면 어땠을까. 어디 격리 시설이 있으면 혼자 들어가 집안일 신경 안 쓰고 앓고‘만’ 싶었다. 아파 죽고 싶은 마당에 가사를 신경 써야 하다니. 돌아가시는 날까지 우울증에 시달렸던 엄마는 이 가사노동의 지난함에 얼마나 치를 떨었을까. 엄마가 글을 썼다면 그 글의 제목은 ‘죽고 싶어도 가사노동은 해야 했다’였을 거다. 가사노동은 노역이다.     



방학하고 집에 있는 딸애는 내 병수발을 든다고는 하지만 도움이 안 된다. 알아서 챙겨 먹으라면 배 안 고프다고 한다. 내가 챙겨줄 땐 한 번도 거절 없이 먹어대더니... 위에 빵꾸난 이후 금지된 불닭볶음면을 내가 아픈 틈을 타 야금야금 먹어댄다. 얄밉다. 혼자면 아프기만 하면 될 텐데, 무한 돌봄이 지겹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선 전업주부인 암 환자가 식구들 뒤치다꺼리하느라 마음껏 투병도 못하는 사연이 나온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식구들 돌봄을 수행해야 하다니. 이놈의 성 역할, 가족이 제일 문제다. 싹 다 갈아엎어버렸으면 좋겠다. 

     

구토와 두통이 이어진 사흘째 결국 부엌에 들어섰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사두었던 야채가 더위에 다 시들고 상해 있었다. 뒤적뒤적 갈무리 후 남은 걸 건져 메뉴를 짜 본다. 지난 주 동네 할머니에게 사두었던 도라지를 새콤달콤하게 무치고, 깻순을 데쳐 볶고, 두부찌개를 끓이려고 했다.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용기를 내 주방에 들어섰지만, 도대체 의욕이 나질 않았다.     

 


자동으로 착착 움직이던 몸이 고장 난 기계처럼 굼떴다. 자꾸 허리를 접고 씽크대에 엎드렸다. 마침내 찧던 마들이 눈에 튀어 들어간 바로 그때다. 울고 싶은 놈 마늘 맞았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 왜 울지? 텀벙텀벙 떨어지는 눈물에 당황하다 씽크대 밑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울고 있는데 놀란 딸애가 뛰어와 왜 우냐고 묻는다. 니가 뭘 알겠으며 나는 대답할 말이 없다. 그냥 나는 지금, 나를 돌봐줄 ‘엄마’가 필요할 뿐이다. 

       

지겹다. 엄마 역할, 성 역할! 어떤 남자가 성 역할에 지쳐 죽어가겠나. 여자는 84세가 되어서야 가사노동에서 벗어난단다. 84세라니... 우리 엄마는 미처 84세에 도달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눈 감을 때까지 가사노동에 몸을 갈아 넣었다. 그야말로 가사노동 졸업 그리고 영면. 


<해방일지>에서 엄마는 1인 3역(가사노동, 남편 조력, 밭농사) 하다 과로사했다. 죽음만이 그를 지긋지긋한 돌봄 노동에서 해방시켰다. 이것이 삶인가. 유령 같은 성 역할. 내게도 죽을 때까지 따라 붙을 참인가. 에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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