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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Oct 03. 2023

첫 대면한 일본에 대하여

처음 떠난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처음부터 썩 내키는 출발은 아니었다. 일본이 바다에 원전 오염수를 쏟아내 버린 이 시점에 일본에 간다는 게 어쩐지 매국노가 된 것 같아 영 찜찜했기 때문이다. 국가주의자는 아니고 애국자는 더더욱 아니더라도, 난민이 아닌 한, 사람은 어떤 나라에 좋든 싫든 속해있기 마련이기에, 어떤 특정한 상황에선 누구든 소속된 나라의 국민임을 빌어 발언하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웃나라가 단지 비용 논리로 자기네 살겠다고(이것도 말이 안 되지만) 핵 오염수를 바다에 뿌리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다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옆 나라의 국민으로 어떻게 국민으로서의 분노를 표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 ‘방류 절대 안 돼’를 외쳐도 모자랄 판에, 방류 반대 목소리를 괴담 운운하고 있는 정부를 둔 국민으로선 더욱 국민 된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일본, 익숙한데 달랐다     


일본 여행에 나선 나는 일본 덕후는 아니다. 하지만 일본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아마도 좋아하는 일본 영화가 만들어 낸 이미지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최근 본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강변의 무코리타>의 어떤 감각, 모자란 듯 무심한 듯 초월한 듯한 어떤 느낌이 구성하는 태연한 곳으로서의 이미지 말이다. 이는 단지 영화 안에서만 존재하는 허구임에 틀림없겠지만 어수룩한 인간은 종종 비합리적 행동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여행에서 그 강변에 있던 어떤 사람들을 본 것 같기도 하다는 거다. 물론 내 착각이겠지만.      

   


일본에 꼭 한 번만 간다면 그래도 교토에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교토 여행은 딸애와 몇 년째 벼르던 차였다. 문제는 남편이 일본 기피자라 일본 여행을 내켜 하지 않는다는 거였는데, 추석에 혼자 있는 게 영 청승이었는지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따라나섰다. 


어느새 22세가 된 딸애가 해외여행 수속 등을 앞서 해결하고 이제는 환갑을 바라보는 부모를 보살핀다. 언젠가부터 딸애 덕을 종종 볼 일이 생기는데, 힘들게 키울 때는 생각도못한 보람이다. 딸애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공항의 난생처음 인파는 당해낼 수 없었다. 하마터면 인파로 입국 수속이 늦어 비행기 놓칠 뻔. 명절 해외여행은 처음이라 이토록 심각한지 몰랐다. 다시는 명절 해외여행은 가지 않으리...      


일본어도 모르고 가본 적도 없어 여행사 패키지를 구매했다. 오사카 고베 1일과 교토 1일 일정이었다. 첫날 도착한 항구 도시 고베는 내 고향 인천 같았다(물이 훨씬 깨끗하고 도시 정비가 훨씬 안정적이긴 했다). 항만을 끼고 발달했을 법한 공장들이 즐비했다. 풍경이 이렇게 비슷하다는 것에 묘한 충격이 왔다. 그리고 바닷물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착잡해졌다. 후쿠시마에 뿌려진 핵 오염수가 이미 이 물에 섞였지 않겠나. 

     


이번 일본 여행에 나는 작은 반항을 기획했다. 일본에 갈 때 가더라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가시화하는 뭔가가 필요했다. 딸애와 머리를 맞댔다. 티셔츠를 제작할까, 그러면 적어도 세 식구 여섯 벌은 있어야 하는데 비용이 과했다. 


마라토너들처럼 띠를 둘러볼까, 여행 가이드들이 들고 다니는 작은 깃발 같은 것을 만들어볼까, 고민 끝에 잃어버릴 위험도 없고 들고 다닐 성가심도 없는 배지로 결정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의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이미지로 제작, 출발 당일 각자의 가방에 착용했다. 그리고 몇 개를 여분으로 챙겨봤다. 혹시 패키지 일행 중 동참할 분이 있다면 나눌까 해서였다. 대 착각이었다. 묻기는커녕 달고 있는 것도 모르는듯했으니 말이다. 내 소심한 반항 기획은 실패였다.      


고베의 인상이 익숙했다면 저녁의 오사카는 대단했다. 먹다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먹는 데 진심인 도시여선지 도톤보리는 온통 먹을 거 천지였다. 여기 어딘가에서 선자(애플 TV 드라마 ‘파친코’ 주인공)의 김치 매대나 파친코가 있었으려나 혼자 생각했다. 오사카는 자이니치가 많이 사는 곳이라는데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쉬웠다.      

   


일정 중 자유식은 한번뿐이어서 일본 음식다우면서 입맛에도 맞는 걸 고민하다 딸애가 오뎅바에 가서 사케를 먹자고 제안했다. 오뎅은 남편이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고 사케는 내가 좋으니 오케이. 찾아가는 곳은 누군가의 추천이라는데 아마도 인스타 추천이었을 테다. 어찌어찌 구글 지도를 좇아 찾아간 곳은 작은 술집이었다.


<심야 식당> 분위기와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유사한 간이주점 같은 곳이었다. 이상한 점은 요런 스타일의 식당을 아주 많이 지나쳤는데, 어떤 곳에서도 여자 요리사가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일식 요리는 여자 요리사를 찾아볼 수 없는데 여기도 그런 것일까. 여자 요리사를 허용하지 않는 차별적 관습은 일본에서부터 시작된 건가.      


마침내 도착한 주점은 간판이 허술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스치고 지나갈 지경이었다. 이곳엔  세 명의 남자 요리사?가 서비스하고 있었다. 본래 먹으려고 했던 오뎅 정식을 시켰는데 깜짝 놀랐다. 오뎅 두 조각, 물젖은 실 뭉치로 보이는 소 힘줄 한 뭉치, 그리고 무 한 조각이 국물에 잠겨있는 게 다였다. 오뎅 맛은 평범했지만 무는 별미였다. 이게 1500엔이라고?  

    

이번엔 사케를 맛보자. 사케라고 해봐야 그냥 정종이라고 수차례 말했지만 딸애는 별 맛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별 맛을 보기 위해 우리는 각자 다른 사케를 시켜봤다. 병으로는 안 파는지 곡물 계량하는 나무 그릇처럼 생긴 작은 정사각 나무 잔 안에 유리잔을 놓고는 유리잔이 살짝 넘치도록 따라 주었다. 왜 그렇게 넘치게 따르느냐고 물으니 서비스라고 했다. 하하     

 


안주가 부족해 이번엔 사시미 정식을 시켰다. 딱 8조각이 나왔는데, 게다 참치 살은 내 엄지손톱만 했다. 감자 사라다는 남편이 한 숟가락이면 끝날 적은 분량에 엄청 짰고, 마 소면은 미끄덩거리는 마 채를 소면 육수에 찍어 먹으란다. 낯선 땅에서 말도 안 통하는 술집에서 별난 안주에 사케를 마시고 있는 게 약간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럭저럭 배를 채우고 계산하고 나오는 데 마지막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주인장으로 보이는 요리사가 우리를 문밖에까지 나와 배웅했다. 원래 일본 문화가 이런가 했는데, 그의 태도가 무척 진지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아 몰랐는데, 딸애 말로는 우리가 100미터 정도 멀어질 때까지 서서 바라보더란다. 흠...     


이튿날은 드디어 교토행이었다. 청수사가 첫 행선지였다. 청수사 근처에 오자 길이 말도 못 하게 막혔다. 말할 것도 없이 한국 여행객 때문이었다. 어디서도 한국어가 들렸다. 한국과 다른 교통 환경(운전석이 왼쪽이니 차량 진행 방향이 한국과 반대)이 아니었다면 잠깐 한국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게다 일본 중고교 수학여행 시즌이라 차가 많았다. 입구부터 꽉 막혀 내려 걸어야 했다. 청수사는 단번에 일본 사찰인 걸 알 수 있는 뾰족 첨탑과 현란한 주황색 단청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절은 일본식으로 매우 아름다웠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 한국 여행객이 너무 많아 붐볐고, 패키지라 꼼꼼히 볼 시간이 없어 아쉬웠다. 

     


다음 행선지는 도게츠교 인근이었다. 강이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지만 한국의 어느 곳이라고 해도 믿을법한 낯익은 풍경이었다. 도게츠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관광지엔 점포가 늘어서 있었는데 전주 한옥마을과 비슷했다. 대나무로 유명한 치카란 숲은 허명이 아니었다. 굵고 키 큰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시원하게 뻗어 있었다. 초보 가이드의 실수로 관광 시간이 단축되어 시간이 한 시간가량 남았다. 한 시간이 청수사에 있었으면 잘 보았을 텐데 아쉬웠다. 우리  가이드상은 뭘 물어도 잘 모른다. 하하 초보라 그런단다.     


시간이 남아 강가에서 보트를 타기로 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한풀 숨 죽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에서 뱃놀이를 한다니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다행히 남편이 노를 잘 저어 배 운행을 잘할 수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일본 노래가 들렸다. 음악을 틀었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작은 유람선 위에서 조촐한 전통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공연하는 여성은 기모노를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부채를 움직이는 사위로 보아 일본 전통 음악을 하는 예인인 듯했다. 이렇게 작은 유람선에서 공연을 하다니 놀라웠다. 노을이 시작되는 강 위에서 짧은 여행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여행 내내 불편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지만, 여행이 끝나가니 아쉽기도 했다.     

내가 본 일본     


내가 본 잠깐의 일본이 일본에 대해 무엇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내가 보고 느낀 것이 무지와 오해와 착각임을 전제하고 몇 가지 소회를 적어 보겠다. 우선 일본인들의 표정이다. 한국인들에 비해 유했다. 잃어버린 30년이 길들인 초연함 혹은 희망도 절망도 없음인가. 특히 서비스 노동자를 비교할 때, 한국인들의 찌든 피곤함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 서비스 노동자들이 더 악랄하게 착취당하고 있는 걸까 생각하다 착잡해졌다.      

    


일본인들의 태도는 ‘혼네’로 유명한데, 내가 본 이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순종했고 무척 차근차근했다. 한국의 ‘빨리빨리’와 대조되었다. 나는 ‘빨리빨리’가 일제 수탈의 역사에서 발아되었을 거라 짐작했기에 그들의 차근차근에 희미한 분노가 일었다. 어디든 규칙이 엄수되는 듯 보였고, 작은 빌딩의 나이 든 관리인조차 유니폼 옷매무새가 엄격했다. 나는 식민지를 겪은 세대가 아니면서도 불쑥불쑥 틈입하는 이 불편하고 화나는 감정이 당황스러웠다.      


도시의 거리와 점포는 깨끗했고 호텔도 최상급은 아니었지만 청결했다. 클린 일본은 인정. 지나치다 본 카센터마저 깨끗했다. 카센터는 직종 상 깨끗하기가 어려운데 무척 깨끗했고, 무엇보다 정리 정돈이 잘돼있었다. 그리고 자동차가 소탈했다. 한국 도로를 채우는 중형 세단이나 중대형 SUV가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에 비해 좁은 폭의 도로는 주로 소형차들로 채워져 있었고, 도로가 무척 붐볐는데도 경적 소리를 딱 한 번 들었다.   

   

무엇보다 내 인상을 잡아 끈 건 일본 여성들이었다. 특히 자전거 타는 여성들이었는데, 그 능숙함과 태연함에 깜짝 놀랐다. 자전거 앞과 뒤에 아이 캐리어를 두 개씩 달고도 능숙하게 자전거를 운전해 아이들을 싫어 나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았다. 한 여성은 앞에 아이를 태우고 언덕에서 거의 브레이크도 잡지 않고 쏜살같이 내려오고 있었다. 어떤 여성은 뒤에 아이를 태우고 한 손으로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운전하고 있었다.     

     


자전거로 장보고 운전하는 여성들은 흔했고, 거리에 면해있는 마트마다 자전거 거치대가 자전거로 북적대고 있었다. 거리 여기저기 자전거 운전자들로 가득했고 모두 아무 거리낌 없이 운전하고 있었다. 헬멧 따위를 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일본 여성들의 자전거 애용과 그 능숙함과 패기에 놀라웠다. 


그래서였나, 여자들의 표정이 한국보다 편해 보였다. 유행에 민감한 옷차림과 화장을 한 여성들도 가끔 눈에 띄었지만 한국보다 꾸밈에 덜 적극적으로 보여 반가웠다. 나는 종종 한국 젊은 여성들이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에 안타깝다.      


일본이라고 가부장이 덜한 곳이 아니고 성폭력과 ‘미소지니’가 약한 곳도 아니다. 어쨌거나 내가 본 극소수일 일본 여성이 타인의 눈길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에 집중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보였다. 이 모든 것이 내 무지와 착각과 오판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낙관의 근거로 삼아보고 싶다. 그리하여 내 낙관을 원전 오염수 방류 중단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일본 여성으로 확장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중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물마저 죽이고 살아남을 자 누구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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