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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Oct 10. 2023

이스라엘과 아랍의 분쟁이 끝없이 희생시키는 여자들

<사소한 일> (아다니아 쉬블리, 2023, 강)


이스라엘군에 희생당한 한 ‘아랍’ 소녀와 이 소녀의 흔적을 좇는 한 ‘아랍’ 여자의 이야기를 읽었다. <사소한 일>이라는 책이다. 책 제목은 사소하지 않은데 사소하다고 간주되는 사건과 사람들에 대한 역설을 담고 있다. 피해와 가해의 이중성에 긴 한숨을 내쉬며 책을 마친 후,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수천 발의 미사일을 쏘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 깊은 한숨이 토해졌다.      


어떤 피해도 사소하지 않다   

  

피지배계급이나 권력이 없는 집단에 속한 소녀는 억울한 죽음을 당해도 벌레가 죽은 것처럼 사소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어떤 여자에게 이 ‘사소한 일’은 “잊으려 노력해도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건이 된다. “집단 강간의 최종 행동으로 일어난 그 살해의 특이점은 그것이 특히 사반세기 이후 내가(여자가) 태어난 날 아침에 일어났다는 사실 외엔 없”는데도 말이다. 진실은 이런 못 잊는 사람들에 의해 기억되고 계승된다.      


이야기는 이렇다. 한 아랍 소녀가 네게브 사막에서 이스라엘 정찰병들에게 포로로 잡혀 모욕과 강간을 당한 후 살해되기까지의 며칠간을 다룬 이야기와, 소녀의 죽음으로부터 25년 후 한 젊은 아랍 여자가 소녀의 죽음을 다룬 ‘사소한’ 기사를 접한 후 죽음의 진실을 좇는 며칠간의 여정이다. 이야기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사실만을 건조하게 다루는 듯 보인다. 이 건조함은 ‘누가 너희를 죽이러 온다면, 먼저 일어나서 그를 죽여야 한다’는 점령군의 권력적 질서가 배태한 폭력성의 단면이다.        



2차대전 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세우자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집결하기 시작한다. 남부 유대인의 정착지 확장을 위해 젊은 시온주의자들은 네게브 사막을 그들의 정착지로 삼는다. 이곳은 아랍 베두인이 살아가는 근거지지만, 유대인들은 이곳을 “교육과 발전과 문화가 꽃 피는 번창하는 중심지”로 만들 작정이다. 


유대인 정착민들은 얼마 간 베두인들과 평화롭게 지내지만 이집트가 이곳을 공격하며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이스라엘군은 사막에 잔류한 소수 베두인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색출해 죽이기 시작한다. 살육의 현장에 한 소녀가 있었다.      


이스라엘 정찰병들에게 잡혀온 소녀는 오랜 도피 생활로 엉망이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를 없애기 위해 소녀는 병사들이 보는 데서 공개적으로 옷이 벗겨지고 호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 대포로 강제 목욕을 당한다. 소녀의 길고 탐스런 검은 머리카락은 무자비하게 잘리고, 머리카락에는 이를 없앤다고 휘발유가 부어진다. 포로로 잡혀온 소녀가 이후 군인들에게 어떤 착취를 당했을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소녀의 참혹한 하루와 달리 이스라엘 정찰병 소대장의 하루는 극도로 말끔하다. 매일 향기 좋은 비누로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내고 깨끗하게 세탁된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은 더러운 소녀와 대비된다. 그는 소녀를 악취나는 존재로 여기지만, 거미에게 물려 곪아터지고 있는 자신의 상처에서 나는 악취는 맡지 못한다. 



일부 병사들이 소녀를 겁탈하자 그는 “소녀를 진지 식당에서 일하게 하든지, 아니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녀를 가지고 놀든지”하라고 명령한다. 여자를 식민지로 착취하는 제국주의적 태도다. 명령에 들뜬 병사들은 “누가 소녀를 얼마 동안씩 차지할지” 계획을 세우고 모두의 계획이 완성된 후 소녀는 끌려가 총살당한다.      


이 모든 과정에 어떤 불편함도 죄책감도 개입되지 않는다. ‘사소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전쟁도 여자를 파괴하지 않는 전쟁은 없지만 ‘사소한 일’이다. 병사들은 적의 여자를 강간함으로써 적의 병사들을 심리적으로 죽인다고 믿는다. 여자들의 몸을 최전방의 전쟁터로 활용하는 전시 성폭력의 메커니즘이다.      


피해와 가해의 무한 반복  

     

베두인 소녀가 1949년 8월 13일에 죽은 날로부터 25년 후, 이날 태어난 한 여자는 이 죽음을 사소히 여기지 못한다. 이스라엘 군이 여자가 일하는 근처 빌딩을 포위하고 있고, 밤이면 통금이 엄격한 점령된 곳에서 사는 여자는 번번이 “경계선을 다루는 일에 실패”한다. 어느 선까지 허용되고 금지되는지, 어느 선이 죽음과 삶을 가르는지, 그 경계에서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여자가 소녀의 죽음을 알게 되며 어떤 사명감을 가진 건 아니다. 그저 소녀의 죽음을 밀어내지 못한다. 기어코 소녀가 죽은 네게브를 향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소녀의 학살에 대한 어떤 증거도 찾지 못한다. 소녀가 죽었을 어디쯤 부서진 담벼락에 쓰인 글귀만이 학살의 우발과 비윤리의 결과를 질문한다. “탱크가 아니라 인간이 승리하리라.”     



그런가. 무력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이 승리하리라 선전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군인다웠는가. 최소한 무고한 죽음을 막기 위해 무해한 인간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가. 전쟁은 위선일 뿐이다. 탱크가 안보를 지킨다고 믿었기에 전쟁을 일으키고 무고한 민간인을 강간하고 죽였다. 탱크가 없었기에 홀로코스트를 막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그들은 탱크를 진격시키고 총알을 무한정 쏘아대며 복수에 진력했다. ‘힘에 의한 평화’라는 디스토피아를 메시아의 소리라 믿으며.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에게 독일인은 물론 전 세계인이 부채감을 가졌다. 이는 마땅한 것이었지만, 유대인은 피해자가 언제나 옳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들은 피해와 가해가 무한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에 스스로를 묶고 역사적 성찰을 포기했다. 피해의 고통을 가해로써 씻어내려는 피 묻은 손은 재차 삼차 억압을 만들면서 ‘힘에 의한 평화’를 공허하게 외친다.      


이스라엘에 쏟아진 수천 발의 포탄은 다시 몇 배 몇 십 배의 미사일로 되돌아갈까. 이스라엘 명절인 초막절에 맞춰 네게브 사막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던 노바 음악 축제에 참가하려던 수천 명이 아비규환 속에 갇혔다. 하마스 무장 대원들이 현장에서 총질을 했고 수백 명이 사망했거나 실종됐다.      


사막 어디에 숨을 곳이 있을까. 한 여성은 오토바이에 강제로 태워져 끌려갔고, 한 여성은 하마스 대원들의 트럭에 실려 끌려갔다고 한다. 1948년 이스라엘 군에 의해 살해당한 한 아랍 소녀와 하마스에 의해 끌려간 저 여자들은 사소한 존재이기 때문에 희생당하는 것인가? 이미 백골이 된 소녀와 이제 끌려간 여자들의 운명이 비통하다.




* 덧붙임 : 외신에 따르면, <사소한 일>의 작가  아디니아 쉬블리가 제 75회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에서 '리베라트르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는데 시상 행사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압력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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