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 Oct 21. 2023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불법'의 실체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폐쇄 사태를 목도하다 가장 빡친 건 김경일 시장의 ‘불법’ 운운이었다. 그는 면담을 요청한 집결지 종사자들에게 ‘불법’이니 만나지 않겠다고 일갈했다. 그들은 왜, 어떻게, ‘불법’이 되는가?


     

집결지가 불법이니 그곳에서 일하며 살고 있는 종사자들도 ‘불법’이라 간단히 판단할 수 있을까? 쉬운 판단을 내리기 전에 집결지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집결지의 역사가 곧 ‘성매매 여성을 처벌해 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집결지는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일제 식민지 시기 때부터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면서 일본인이 대거 진입했고 일본 남자들을 위한 성매매 장소가 따라왔다. 이른바 ‘공창’이다. 조선의 소녀들을 ‘위안부’로 끌고 가 착취한 ‘위안소’도 공창의 연장이다.      


일제 패망 후 일제 식민 문화를 청산하지 못한 것 중 가장 고질적인 것이 성매매라 생각한다. 강자에게 유리한 적폐는 사라지지 않는다. 패망 후 일본인이 쫓기듯 조선을 떠나며 일본의 성매매 여성들도 떠났지만 공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창폐지령이 내려지자 공창은 사창으로 얼굴을 바꾸고 버젓이 존속했다. 


공창에서 여자들을 착취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아차린 포주들이 사업을 접을 리 없었고, 집결지 여성들을 통해 허약한 식민지 남성성을 표출하던 남자들이 비틀린 나르시시즘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었다고 집결지에 딸을 팔아먹은 가족들이 개과천선해 이들을 데려갔을 리 만무했고, 해방이 되었다고 집결지 외 갈 곳이 없던 추방자의 신세가 자유의 몸이 되었겠는가? 


고작 몸뚱이 하나 의탁할 곳이 없는 가난하고 병약한 여자들이 사창에 남아 연명해가는 외 무슨 방도가 있었을까. 이것이 그들의 선택인가. 선택지가 아예 없었던 그들에게 ‘그것은 네 선택이었으니 네 책임이다’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운이 좋아 잘 풀린 인생이 단지 자신의 선택과 노력 때문 만이라고 믿고 살아왔을 것이다.


      

해방 후 한국 근대사 중 가장 참담한 역사인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집결지의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믿기 어렵지만 전쟁 통에도 성매매는 여전했다. 규모의 집결지 형태는 아니었지만, 한국 군대를 따라, 유엔군을 따라, 군인들의 남성성을 ‘위안’하기 위해 여자들이 끊임없이 제공되었다. 한국군의 ‘위안부’가 되었고, 유엔군의 ‘위안부’가 되었고, 미군의 ‘위안부’가 되었다. 전직 성매매 여성들도 있었지만, 전쟁 통에 고아가 되거나 가난해 먹고 살 길이 없는 여자들이 ‘위안부’가 되었다. 이것이 선택인가?     



전쟁이 중단되고 미군이 대거 주둔했다. 주둔한 미군 기지마다 기지촌이 생겨났다. 농사짓고 살던 시골마을이 순식간에 미군을 상대하는 상업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전쟁고아나 빈민가의 소녀들이 먹고 살 길을 찾아 기지촌으로 모여들었다. 미군과 기지촌 여성에 기대, 유흥업소, 소매점, 양복점, 미장원, 이발소, 가구점, 사진관 등 각종 서비스 산업이 형성되었다. 용주골도 다르지 않았다.    

  

모두들 그렇게 먹고살았으면서 사람들은 기지촌 여성들을 ‘양공주’ ‘양갈보’라 멸시했다. 그들을 경유한 돈으로 자식을 키우며 먹고살았으면서 참으로 가혹했다. ‘양놈에게 몸 파는 X’이라 욕하면, 그들에게 기생해 먹고살았던 비루한 삶이나 부끄러운 가해가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고의 주저함 없이 그들을 혐오했다. 


성찰 없는 혐오의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져 성매매로 먹고 사는 여자들을 비인격화하여 멸시한다.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정은 쉽게 돈을 벌거나 사치하며 살려는 욕심 따위로 비하된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든 개인이  ‘쉽게’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고, 수많은 사람들(코인 하는 국회의원들, 내부 정보로 주가를 조작하고 부당한 부동산과 주식을 소유하거나 거래하는 고위 공직자들, 신자유주의의 첨병이 되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인플루언서들, 성산업 업주, 디지털 포주, N번방의 악마들까지)이 ‘쉽게’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들에겐 터무니없이 관대하다. 



이들과 비교도 안 되는 적은 돈을 벌어 먹고살지만, 유독 성매매 여성들의 돈 버는 경제 행위만은 무참할 정도로 혐오 당한다. 위에 열거된 ‘쉽게 돈 버는’ 사람들이 성매매 여성들에 비해 무엇이 얼마나 더 윤리적인가. 고작 손가락 클릭 몇 차례와 짧은 전화 몇 통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위 사람들보다 어떻게 이들의 일이 ‘쉬운’ 일이라 비난받는 게 당연한가?     


다시 용주골로 돌아오겠다. 기지촌이 성황일 때 한국 정부는 ‘윤락행위등방지법’으로 성매매를 엄금했지만 기지촌은 예외였다.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기지촌을 특구로 만들어 육성 관리했다. 이때 용주골 ‘불법’의 주체는 누구인가? 법을 어기고 성매매를 허용한 ‘불법’의 주체는 누구인가? 국가가 ‘불법’을 조장했고, 포주가 기지촌 여성들을 ‘불법’으로 착취하는 것을 묵인 방조해왔다. 그런데 어째서 ‘불법’ 구조의 가장 약자인 성매매 여성들만이 ‘불법’의 주체가 되어 낙인 당하고 처벌받아야 하는가?      


미군이 떠나고 용주골 기지촌은 쇠락했지만 갈곡천 너머 한국 남자들이 드나들던 집결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유리방이 생겨났다.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여자들이 몰려들었다. 가정 폭력 성폭력으로 집에서 쫓겨난 여자들, 아픈 몸으로 빡센 노동 현장에서 밀려난 여자들, 빈손으로 자립해야 했던 고아들,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가난한 ‘미혼모’들, 아픈 가족을 돌볼 큰돈이 필요했던 여자들, 누구 하나 ‘쉬운’ 인생이 없고 ‘쉽게’ 사는 여자들이 없건만, 왜 유독 이들에게만 ‘쉽게 돈 벌려는 여자들’이라는 낙인이 따라붙는 것일까?  

    

지난 10월 15일 용주골에서 ‘성노동자 후원 파티’가 열렸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추홍빛 연대 차차와 페미니즘당 창당 모임이 용주골 집결지 종사자들을 후원하기 위해 주최했다. 성매매 여성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레드 마리아> 상영과 토크쇼, 성노동자 사연 읽기, 연대와 투쟁의 오픈 마이크가 밤 10시 반까지 진행되었다. 

   

  


영화 토크쇼 중 집결지 종사자인 ‘별이’는 ‘그냥 이곳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왜 그들은 ‘불법’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살고 싶을까. 이들을 혐오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또 ‘쉽게’를 앞세워 단죄하려 들것이다. 하지만 이는 틀렸다. 혐오당하면서도 이 일을 해서 먹고살아야만 하는 각각의 사정에 도덕적 잣대만 들이대어 옥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들의 ‘어쩔 수 없음’이 불운한 개인사 때문이 아니라 불운함을 딛고 일어설 사회적 보살핌이 부재한 탓이었음을 성찰해야 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 남자들이 100만 원 받을 때 여자들이 60만 원을 받는 불평등한 임금,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부정의한 노동 시장, 남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여성 빈곤율, 가정 폭력 성폭력으로 맨몸으로 내쳐지는 가혹한 현실, 가족 붕괴로 먹고 잘 곳이 없어 성매매로 유입되는 청소녀들에게 부재한 사회 안전망, 남성의 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배출을 위해 성매매가 필요하다고 부추기는 남성 중심 문화, 여성의 몸을 매개해 남성의 비틀린 성욕을 배양하고 증식시켜 수십조의 경제를 구성해온 성산업, 여성의 몸을 담보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대부업 등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불법’이라는 낙인이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 모든 부조리를 직시하고 개선하지 않은 사회의 무능과 무위임을 적시한다. 


‘불법’이라 단죄하는 손가락질 대신, 공동체 모두가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나누어질 때에만 비로소 성매매 근절을 시작할 수 있다. 누가 ‘불법’의 주체인가. 이들에게 가해진 ‘불법’이라는 주홍 글씨를 뜯어내야 하며, 이들을 처벌하는 성매매 처벌법 또한 철폐되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이스라엘과 아랍의 분쟁이 끝없이 희생시키는 여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