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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Mar 11. 2024

'3.8 여성의 날'에 짓밟힌 여성들

용주골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목격하다

지난 ‘3.8 여성의 날’은 평생 잊지 못할 ‘여성의 날’이 되었다. 내막은 이렇다.      


지난해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연내 폐쇄를 선포했던 파주시 김경일 시장은 치적 사업에 골몰해 생각 없이 뱉어낸 선언으로 마음이 급할 테다. 당장 부수고 없애버릴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집결지 종사자와 이들에 연대하는 시민모임이 일 년여간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압박해오는 파주시의 강경 폐쇄 조치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압박의 한 수단으로 파주시는 지난해 11월 파주읍장을 내세워 집결지를 둘러싸고 있는 펜스를 철거하겠다고 압박했다.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종사자들은 펜스가 목숨줄임을 호소했고, 집결지 인근 주민들도 펜스 철거에 반대한다는 집단의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읍장과의 면담을 간곡히 요청했지만 무시되었다.(https://brunch.co.kr/@jupra1/219)그러다 다시 펜스를 철거하겠다고 나섰다. 그날이 바로 3월 8일 ‘여성의 날’이었다.    

  

‘여성의 날’에 철거하겠다고 들이닥치지는 않겠지, 설마 하던 종사자들과 연대 시민들은 경악했다. 수도권은 서울에서 지방은 각각의 중심지에 결집해서 ‘여성의 날’을 축하하며 더 나은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제안과 다짐을 나누며 이날을 기린다.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붉은 꽃을 나누어 주기도 하는 그런 날이다. 이런 날 ‘여성의 날’의 상징인 ‘빵과 장미’ 대신, 용주골에는 1시 30분경 헬멧을 쓰고 보기에도 육중하고 위협적인 철거 장비를 소지한 전문 철거 인력이 파주읍장을 위시해 들이닥쳤다.      



혼비백산한 종사자들과 연대 시민들은 몸으로 막는 외 달리 방도가 없었다. 철거 인력들의 무자비한 장비들에 비해 종사자와 연대 시민들은 고작해야 폐박스로 만든 손 피켓과 공권력 불법을 촬영할 휴대폰 말고는 싸움의 도구가 없었다. 종사자들은 녹슨 펜스에 스스로의 몸을 결박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맞섰다. 이 싸움이 말이 되는가.  

    

철거 인력들을 대동하고 집결지 내로 들어온 파주읍장은 시민 안전을 위해 철거하는 것이고 곧 다른 펜스로 대체하겠단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거부하는 펜스 철거를 관철하겠다면 우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일정을 알리고 철거를 위해 주민들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했어야 했다.      


앞서 펜스 철거 거부 관련 기자회견 당시 면담을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막무가내로 철거하겠다고 나섰느냐는 주민의 힐책에, 읍장은 얼마 전에 만나지 않았느냐며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그날 기자회견을 목격하고 이후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나는 읍장의 기만에 분노가 솟구쳤다.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걸까. 종사자들과 주민들을 만나고 절차의 불가피성을 안내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권력은 왜 번번이 누락하는 걸까? 지난여름 파주읍장은 파주시민 체육대회에 집결지 주민들의 대회 참석을 만류함으로써 스스로 김경일 시장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 속내를 들키고 말았다.      



집결지 주민은 파주시민이 아닌가. 해마다 집결지 주민들도 빠짐없이 참여해온 파주시민 체육대회에 참가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하는 파주읍장은 누구의 읍장인가. 김경일 시장의 읍장인가 읍민의 읍장인가. 자신이 섬겨야 할 대상을 망각하고 ‘늘공’이 ‘어공’의 4년짜리 권력에 빌붙는 것은 비겁하고 부끄러운 처사다.   

   

파주읍장은 주민들을 만나지도 않고 만났다고 한 거짓말이 들통나고도 약 한 시간가량을 주민, 연대 시민과 실랑이를 이어갔다. 당장 철수하고 주민들과 대화하라는 시위 시민들의 고함소리도 높아졌다. 그러는 와중에 한 종사자가 펜스에서 떨어졌다는 웅성임이 전해졌다. 좁은 길로 구급차가 들어오지 못하자 한 주민이 쓰러진 종사자를 업고 큰길까지 나와 구급차에 옮겼다.      


업힌 종사자는 떨어지며 바닥에 부딪쳐 출혈이 있는 머리 쪽을 수건으로 누르고 있었다. 비감했다. 어떤 여성들은 ‘여성의 날’에 당당하게 행진하며 시위하는데, 어떤 여성들은 공권력에 저항하다 다치고 부서졌다. 어떤 여성들은 축하와 격려를 받고 어떤 여성들은 혐오와 폭력을 당했다. ‘여성의 날’이 기리는 여성은 누구인가. 집결지 여자들은 여자가 아니고 인권도 없다는 것인가.     

 

파주읍장은 철거한다고 들이닥친 날이 ‘여성의 날’인 것을 정말 몰랐을까. 철거를 위해 집결지를 둘러싼 공권력은 경찰 말고도 집결지 폐쇄를 담당하고 있는 파주시 여성가족과 공무원도 여럿 눈에 띄었다. 여성과 가족을 한데 묶어 시정을 꾸리는 파주시의 발상도 시대착오적인 데다, 아무리 무지하다고 해도 그날이 ‘여성의 날’인 것을 정말 모르고 들이닥쳐 여성들을 모욕했단 말인가.     

 


몰랐다면 여성과 가족을 관장할 자격이 없는 공무원인 것이고, 알았다면 징계당해야 할 태만이다. 알았든 몰랐든 분명히 확인된 것은, 그들에게 집결지 종사자들이 ‘여성의 날’에 보호받을 여성이 아니라고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이 무지와 혐오와 차별과 폭력을 어떻게 잊겠는가.      


‘여성의 날’에 여성들이 짓밟힌 현장은 처참하다. 한 사람의 여성도 뒤에 두지 않겠다는 페미니즘의 슬로건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여성을 향한 명백한 혐오와 폭력에 전국뿐 아니라 파주시 여성인권단체는 어째서 침묵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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