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이가라시 다이, 2024)
“만약 산전검사로 엄마 뱃속의 아기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높다면 낳을 거야?” 딸애가 물어왔다. 얘는 어른이 됐는데도 왜 이렇게 곤란한 질문을 아이 때처럼 쏟아내는 걸까. 나는 “당연히 낳아야지”라는 대답을 선선히 내놓지 못한 채, 질문하는 딸애를 속으로 탓하고 있었다.
결국 딸애 질문에 “몰라”라고 퉁명스레 답하고 말았지만 내심 가책을 느꼈다. 딸애를 가졌을 당시 다니던 병원에서 고가의 산전검사를 권유해 받았고, 이상이 없다는 검사 결과에 한숨 놓았던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절은 비장애 엄마의 자신 없음과 달리, 장애를 손상된 상태가 아니라 조금 불편하지만 다른 몸으로 인식하는 장애 엄마라면, 태아의 장애 여부가 출산의 조건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장애 여성이 장애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높아도 기꺼이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는 결심을 사회는 충분히 존중하고 있을까?
장애 여성의 임신 출산 양육 등의 재생산 권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와 폭력을 생각해 보면 이 질문에 긍정적 답변을 내놓기 어렵다. 저출생 운운하며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우려를 쏟아내면서도 출산장려정책 대상에서 장애 여성이 제외되고 있고, 여성의 낙태권을 불경하게 여기면서도 장애 가능성이 높은 태아의 낙태에는 관용을 보이지 않는가.
한국 사회의 장애 여성 재생산권에 대한 폭압적 통제의 뿌리는 일제 식민지 우생법에 있다. 일제는 신체 건강한 노동자와 군인의 출생을 전제한 우생법을 시행하며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엄격히 통제했고, 식민지 조선에도 적용했다. 일제는 패망하고도 우생보호법을 1996년까지 시행했는데, 1963~1965년 사이 강제 불임이 최고조에 달하였으며, 효고현에서는 ‘불행한 아이 낳지 않기 운동’ 캠페인이 벌어졌다.
장애에 대한 사회의 감시와 통제가 이런 식으로 가시적이고 폭력적으로 벌어진다면, 이런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장애 여성은 임신 출산 양육을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시기에 장애 여성이 아이를 낳아 키웠다면, 태어난 아이는 “내가 두 사람(장애 부모)의 아이로 태어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충격적인 출생의 역사를 알게 된 이가라시 다이는 “어쩌면 나도 국가에 의해 태어나기 전에 ‘살해당했을’ 수도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 둘 다 아이를 만들 수 없는 몸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뒤늦은 자각을 하게 된다.
청각장애 부모가 우생보호법이 기세등등하던 시기에 자신을 낳아 키운 것이 얼마나 큰 용기였을지 깨닫고, 철없던 시절 듣지 못하는 부모를 부끄럽게 여겼던 자신을 후회하며 청각장애 어머니의 역사를 기록하기로 한다. 이가라시 다이의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는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여기서 책의 맥락과 연관 깊은 ‘코다’(청각장애 부모의 아이를 지칭하는 말) 이길보라 감독을 소개하겠다. 나는 이길보라 감독을 좋아하는데, 오래전 그가 쓴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통해 ‘코다’를 알게 되면서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수어를 익혀 수어를 모어로 정체한다.
수어가 모어여도 사회는 수어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에, 청인인 자녀들은 부모의 ‘통역사’ 노릇을 하며 자란다. 들리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며 아이와 어른의 세계를 넘나든다. 이는 아이로서 고된 일일뿐 아니라, 청각장애 부모가 겪는 차별과 모욕을 함께 겪어내는 일이다.
이가라시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수어를 배우지 않았고 간단한 손 사인으로 소통해왔다. 손 사인으로는 내밀한 감정을 전달할 수 없으니 불통이 쌓이고 부모와 점점 멀어지다 어느새 부모의 장애를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그렇게 묵혀둔 복잡한 감정이 어느 날 할머니가 무심코 던진 에피소드로 되살아나고, 엄마의 일생이 그저 과거가 아닌 ‘꼭 알아야 하는 것’으로 변한다.
그런데 나는 이가라시가 각성하는 순간에 공감되지 않았다. 이길보라가 어려서부터 청각장애 부모의 ‘통역사’ 역할을 하며 장애와 비장애 사이를 넘나들며 치열하게 ‘코다’ 정체성을 담지한 것에 비해, 이가라시는 서른이 다 되도록 수어도 못 하고 청각장애 엄마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것에 실망감이 있었나 보다. 이는 언젠가 청각장애 아들을 둔 한 청인 엄마가 수어를 하지 않는데도 아들과 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했을 때 느꼈던 뜨악한 감정과 유사한 느낌이었다.
우선 ‘코다’ 정체성을 일반화하려 든 독자의 소견머리 없음을 반성한다. 하지만 이는 이가라시의 책이 그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청각장애 엄마를 어떻게 대했고 여겨왔는지를 정면으로 다룬 치열한 성장기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이가라시의 책은 그의 변처럼, “완벽하게 나만을 위해서 쓴 책이다. 이 책은 장애가 있는 여성의 역사, 코다로 태어난 사람의 어떤 역사를 쓰려고 한 책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써두어야 할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쓴 그런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일본 정부가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얼마나 참혹히 억압했는지 그리고 비장애 중심 일본 사회가 장애 여성의 시민권을 어떻게 박탈해왔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게 된다. 동시에 한 장애 여성이 사랑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이 여타 비장애인 여성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가라시가 코다 성장기가 아닌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으로의 이 책의 소명을 밝혔음에도 1프로 아쉬움이 남는다. 이 미진함은 그가 이길보라와 진행한 한겨레 대담을 통해 조금 해소할 수 있었다.
그는 이길보라가 가진 ‘코다’ 정체성이 없었으며 어머니의 일생을 다루며 태동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코다’ 친구들 일부는 수어를 쓰지만, “코다 부모와 자녀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떤 식으로든 보존시켜줘야 한다는 어떤 사회 시스템은 전혀 없”기에 ‘코다’ 정체성이 부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주지하듯 이길보라가 산 한국 사회가 더 나은 수어 보존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비청인 부모와 청인 사회에서 타인의 도움 없이 차이가 차별이 되어 들이닥치는 문제를 도망칠 곳 없이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왔다. 그러느라 그의 어린 심신이 얼마나 고달팠을까마는, 직면하고 부딪치고 부서질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코다 프라이드’를 설파하는 이길보라는 없었을 것이다.
이길보라와 달리 이가라시의 어린 시절은 청각장애 부모를 대신해 뭔가를 해야 할 책임에서 빗겨나 있었다. 책임의 면책은 청각장애 부모가 겪는 차별을 함께 겪으며 싹트게 되는 가족 간 유대감을 형성하거나 청각장애 부모의 수어가 사회의 통념과 달리 상당히 고차원의 언어임을 깨달을 기회를 잃게 만들며, 사춘기 시절 가졌던 장애 부모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기회를 지체시켰다.
이제 그는 수어를 익혀 청각장애 부모와 청인 아들 사이의 일찍이 넘어섰을 차이를 극복하고 있다.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