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적성면에 있는 콩 두부요리 전문 식당에 갔다. 남편과 딸애는 두부전골을 주문하고, 나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후각을 자극한 청국장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 전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대각선 방향에서 식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딸애가 저분들 무슨 관계인 거 같냐고 물어왔다. 나는 글쎄...하며 관계를 짐작하기 어려운 조합에 물음표를 가졌다.
무엇보다 청소년으로 보이는 너무나 수려한 이국적 외모의 소녀가 눈길을 끌었다. 아마도 엄마가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하며 추측하던 차, 등을 돌리고 음식을 먹던 무리 속 여성이 돌아섰다. 아, 저 소녀의 아름다운 외모를 준 분이 저 여성분이겠구나 탄성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분명 저 여성도 소싯적엔 저 소녀처럼 무척 아름다웠겠지.
호기심을 연장하며 본의 아니게 안 보는 척하며 눈길을 고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녀는 소녀의 엄마라기에는 좀 많다 싶은 초로의 여성이었다. 그녀가 일행에게 “너무 잘 먹었다. 커피 드실래요?” 하는 말투는 한국에서 산 세월이 그녀가 모국에서 산 세월을 초과함을 여지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게다 그녀가 먹은 음식은 무려 청국장이지 않은가. 냄새가 쿰쿰해 나이 든 사람이나 좋아하는 음식을 잘 먹었다고 하는 그녀를 보니 공연히 뭉클했다. 한국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으면 저렇게 자연스러운 한국말로 저렇게 토속적인 한국 음식을 잘 먹게 되는 걸까.
작지만 다부진 그녀의 몸집은 영락없는 농부의 몸이었다. 그녀는 농사일로 얼마나 잔뼈가 굵은 걸까. 음식점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분과 다음 주 여행지(아마도 마을 친목회 주최 나들이가 아닐까 싶다)는 어디냐며 무람없이 나누는 대화를 듣자니, 그녀가 마을 구성원으로 어색하지 않은 관계를 쌓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성실히, ‘나는 당신들을 배신하지 않아요’라는 믿음을 주면 저런 신뢰를 형성할 수 있을까. 문득 적성면에는 얼마나 많은 이주 여성이 정착해 나름의 삶을 꾸려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