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에서 꺼내 온 신문 1면을 펼치자마자 무릎이 꺽였다. 지면은 한 사람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는데, 고인은 죽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다정해 보였다.
가명 ‘호준’으로 한겨레신문에 기사화되었던 그는 몽골인 엄마와 함께 6살에 한국에 입국했다. 취업비자 사기를 당한 엄마가 입국하자마자 일명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되었으니, 6살 아이 앞에 놓인 삶이 순탄할 리 없었을 테다. 고등학교까지는 강제퇴거가 유예되지만 졸업과 동시에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대학진학은 커녕 취업도 불가능하다. 신분을 따지지 않는 불안정하고 고된 일자리에서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가게 된다.
불안정하고 고된 일자리란 일하는 사람의 이름조차 알 필요 없이 소모품처럼 대체되는 노동을 의미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일하다 다치거나 죽어도 그만이라고 간주되는 이들은 그러나 살기 위해 이런 곳에서 일한다. 이 예견된 비극이 “이주노동자 최대의 집단 산재 참사”로 드러난 아리셀 참사였다.
화재도 무서웠지만, 참사 희생자 23명 가운데 18명이 중국 동포 등 이주노동자였다는 사실이 함의하는 바에 우리는 둔감해서는 안 된다. 한국 노동 시장이 이토록 차별적이고 살육적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참사 이후 회사는 피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희생자를 국내인과 외국인으로 이분하는 전략으로 참사 후 신분조차 알 수조차 없었던 이주노동자를 두 번 죽였다.
‘호준’이 ‘미등록 이주민’으로 계속 한국에서 살아갔다면, 그라고 해서 생계를 위해 아리셀보다 더 나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았으리라 생각하기 어렵다. 그는 어떻게든 삶의 조건을 바꿔보기 위해 2020년 법무부의 자진출국 정책(기한 안에 출국하면 재입국 기회 부여)에 기대 엄마의 나라인 몽골로 출국했다. 거기서 유학 비자를 받아 재입국에 성공했다.
이 과정을 이렇게 쓰면 매우 간단하게 들리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로서는 엄청난 우여곡절과 좌절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일이 틀어져 재입국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한국말밖에 모르는 그는 몽골이라는 낯선 땅에 혼자 남겨져야 했다. 26년을 한국인으로 산 그가 연고도 없는 이국에서 살아내기란 또 얼마나 신산한가.
다행히 재입국되어 대학교에 다니며 공부도 열심히 했다. 졸업을 앞두고 그는 좋은 조건의 취업 자리를 찾았다. 김제의 에이치알이앤아이라는 회사였는데, 김제는 ‘지정된 인구감소 지역에서 5년 이상 거주’하면 취업비자를 건너뛰고 곧바로 거주비자인 ‘지역특화형 비자’(F2R)를 내주었다. 그는 희망을 보았다.
지난 7월 ‘호준’을 다룬 기사(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1147955.html)는 한국인이 소멸하는 땅에 외국인으로 돌아와 정착하게 된 그의 사연을 소개했다. 26년을 산 한국 땅에서 외국인의 신분이 되어야 살아갈 자격을 얻는다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삼키고 그가 잘 살아가길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잘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10t짜리 건설기계 장비와 굴착기 사이에 끼여 산재로 사망하다니...
지난 8일 ‘호준’은 “회사에서 개발 중인 텔레핸들러(고소작업차와 지게차의 기능 결합)를 테스트하기 위해 공장에서 차량을 빼내 테스트 장소로 옮기던 과정이었다. 리모컨으로 원격 조종하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던 차량이 출입구를 통과하던 중 경사로에서 속도가 빨라졌다. 차량을 몸으로 막아선 타이반(호준의 몽골식 이름)이 순식간에 떠밀리면서 뒤쪽에 진열돼 있던 굴착기 사이에 압착됐다”고 한다. 11일 오전 부검 결과는 ‘늑골과 척추 손상 및 양쪽 폐 파열’이 사망원인임을 알렸다.
그는 왜 피하지 못하고 그 무거운 장비를 몸으로 막으려 했을까. 목숨을 걸 만큼 헌신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장비가 굴착기를 들이받을 경우 일어날 피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리모컨 오작동이든 기계 결함이든 유족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밝혀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 보려고 발버둥 쳤는데,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이고 살아갈 수 있다고 안심했는데, 참으로 비통하다. 119 구급대원과 회사 쪽의 전화를 받고 달려오고도 “조사 나온 경찰에 잡혀갈까 봐 무서워서” 병원 주위를 맴돌며 울었다는 엄마는 아들을 잃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 ‘호준’의 한국 이름은 강태완이었다.
덧. ‘호준’과 같은 위기에 처한 아이를 ‘유령 아이’라고 부른다. 이주인권단체 추정으로는 2만이 넘는다고 한다.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떡볶이가 최애 음식인 한국인인 아이들을 부모가 ‘미등록 이주민’라는 이유로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낯선 부모의 나라로 쫓아내는 반인권이 말이 되는 행정인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