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마당'에서 살아난 여자들

<여자는 죽지 않았다> (설송아, 2025, 봄알람) 서평

by 그냥


설송아의 <여자는 죽지 않았다>를 읽으며 다큐멘터리 <마담 B>가 떠올랐다. 두 콘텐츠 모두 북조선 여성이 서사의 주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이들이 살기 위해 취한 행적이 다르면서도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북조선은 줄곧 경제적 위기 속에 있었다. 1994년 마침내 배급제가 무너지면서 ‘고난의 행군’이라는 처참한 현실에 내던져진다. 배급제 붕괴는 상상 그 이상이다. 명목적으로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는 체제의 배급 중단은 나라가 사람을 버렸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무배급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기아의 위기를 타개한 것은 여성이었다. 김성경의 책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에서 한 여성 인터뷰이가 “머리 트인 여자들이 없었다면 북조선 사람들은 다 죽었을 거”라는 증언은 과장이 아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여자들은 장마당을 만들어냈고, 이곳에서의 상거래를 통해 북조선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장마당6.jpg


이 책 <여자는 죽지 않았다>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설송아도 적극적으로 장마당에 뛰어들어 가족을 먹여 살렸다. 식량은 물론 어떤 물자도 없는 사회에서, 거의 모든 물품이 마술처럼 만들어져 장마당에서 거래되었다. 그녀는 페니실린을 파는 것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페니실린을 직접 만들어 공급하며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위기는 그녀를 1세대 돈주로 만들어 주었다. 일당 공산국가 북조선에서 돈주라니, 그녀가 장마당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장마당 상인에서 점차 사업가로 변신한 저자도 입당이 인생 목표인 어린 시절이 있었다. 출신 성분이 가장 큰 핵심가치인 북에서 그녀의 부모가 물려준 복잡 계층이라는 신분은 성공욕이 강한 그녀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었다. 반드시 입당해 사람답게 살 권리를 획득하겠다는 그녀의 다짐은 비날론 공장의 고된 노동과 밤까지 이어지는 청년 활동도 마다 않게 만들었다.


고된 노력의 결과 특별 배급받은 평양 사탕 1킬로가 페니실린 10대 가치로 교환되는 시장성을 깨우친 장사의 맛은 그녀를 각성시켰다. 엄마가 돌아가시며 “식량 배급 날만 기다리다가 인생이 흘렀구나”라는 한탄 섞인 유언을 딸인 자신의 세대까지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녀는 입당을 버리고 장마당에 투신한다.


이후 그녀가 장마당을 통해 보인 장사 수단은 놀라웠다. 또한 그녀가 생생히 증언하고 있는 장마당의 풍경은 북조선 사람들이 이미 자본주의를 내재화하고 있었으며, 이 변화의 선두주자가 여성임을 보여준다. 무능한 당을 따돌리며 여자들은 빠르게 적응하고 변화했다.


장마당4.jpg


어느새 만혼이 된 저자는 더는 결혼을 미룰 수 없는 나이에 이른다. 북조선에서 결혼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다. ‘비혼’은 있지도 않은 개념이고, 나이가 차 결혼하지 않는 것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불명예다. 한국 사회도 이런 시대를 답답하게 지나왔다. 다행인지 장마당 여성이 신붓감 1순위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출신 성분이 좋지 않아도 괜찮은 남편감을 고를 수 있었다. 무능한 당이 부여하는 좋은 출신 성분은 이제 좋은 결혼 조건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장마당 사업자인 배우자가 남편 성공의 일등 보증인으로 등극했던 것이다.



신혼집 마련도 혼수 준비도 장마당 사업자인 저자의 몫이었다. 축적한 돈으로 몇 년 치 노동자 월급에 준하는 집을 사고 TV를 장만했다. 남편은 당원이고 교사였지만, 그 돈벌이로는 북조선에서 더는 행세하며 살 수 없는 처지였다. 저자는 장마당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남편을 번듯하게 내조했고 아들도 키워냈다.



하지만 북조선 사회의 결혼 생활 성불평등은 부부관계를 좀 먹게 만들었다. 1946년 제정된 남녀평등권은 허위였다. 북조선의 남성들은 가부장제 권력을 사납게 휘둘렀다. 아내폭력이 태반이고 가사노동 분담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장사하랴 살림하랴 고단한 심신을 타고 남편에 대한 불만과 서러움이 쌓여갔다.



장마당5.jpg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몇몇 일화는 북조선의 일그러진 남성 중심성을 적나라하게 전시한다. 성형이 곧 성적 타락의 시작이라는 이유로 성형한 아내를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팬 남편의 폭력이 문제시되지 않는다. 여성들이 장마당 상행위를 위해 자전거 이용이 늘자, 이것이 이혼 급증의 원인이라며 여성의 자전거 활보를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진다. 타고 가던 자전거를 빼앗아 돌려주지 않자 이에 낙담한 한 여성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나고서야 금지 조치를 푼 당의 태도는 북조선 사회의 성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준다.


탄탄대로일 것 같던 저자의 장마당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페니실린 불법 제조가 들통나 그간 모은 재산을 몽땅 몰수당한 것이다. 살길이 막막해지자 그녀는 중국행을 택한다. 당시 이미 북조선의 체제를 벗어나고자 탈북하는 사람들이 이어지고 있었고, 이들 상당수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당에 충성하는 외 달리 생존의 도구가 없던 남편들을 대신해 가족의 호구지책을 마련한 게 장마당 여성들이었고, 중국으로의 이주 역시 이런 맥락에서 여성들이 결행한 삶의 방편이었다.


어렵게 간 중국에서 저자는 방황한다. 두만강 기술학교에 입학해 장마당에 공급했던 제빵 사업을 어필해 사업기회를 얻으려던 노력은 허사가 되고, 타국에서 의지할 곳 없이 고립된 처지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휩싸인다. 그때 그녀를 일으켜 세운 건 한국으로의 이주였다.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결심으로 중국에서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 입국한다. 이 험난한 탈출 과정을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 <마담 B>를 통해 생생히 보았던 터라, 그녀의 공포와 고통이 절로 이해되었다.


장마당1.jpg


잡히면 끝장인 위험한 탈출 끝에 도착한 한국에서 그녀는 얼마나 신산했을까. 그녀의 입국 목적은 혹시 간첩이 아닐까 하는 지난한 심문 과정을 통과해야 했을 테고, 이후 정착을 위해 한국 정부가 해준 것이 실상 작은 임대 아파트와 얼마 되지 않는 정착 지원금일 뿐이었을 테니 말이다. 모든 게 낯선 자본주의의 나라에서 뭐든 “알아서 해”라는 방임은 또 얼마나 막막한 자유였을까.



수많은 어려움을 넘어서 그녀는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사이버대학을 거쳐 북한학 석박사를 마치고 지금은 학교에서 강의하고 책을 쓰는 지성인 여성이 되었다. 그녀는 이 책뿐 아니라 북조선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책을 마치고 나면 책 제목의 ‘여자’가 북조선에서 연대했던 장마당의 여자들임을 알게 된다. 그녀가 한국 여성으로부터 받은 페미니스트냐는 생경한 질문에 시간이 지난 지금, “이미 지나온 모든 시간에 나는 페미니스트였다”라고 답할 수 있는 당사자성은, 그녀가 북조선에 사는 내내 의심하고 질문했던 가부장제의 피해와 결점과 모순을 여기 한국에서 치열한 연구와 글쓰기를 통해 찾아낸 정체성이었다.


장마당7.jpg


keyword
그냥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156
작가의 이전글가장의 손에 죽어가는 가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