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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의 손에 죽어가는 가족들

by 그냥

탄핵 후 만난 한 지인이 대선 향방을 저울질하며 윤석열과 비교우위로서의 이재명에 대해 말했다. 나는 이재명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길바닥에서 대통령을 주운 푼수와 그를 견주는 것은 적절한 비교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는 함께 웃었다.


마침내 대선이 끝났고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었다. 모쪼록 이재명 대통령이 잘해주기를 바란다. 앞선 도적들이 나라를 너무 망가뜨려서 잘해도 밑질 판이라 걱정이 앞서지만 말이다. 계엄에서 나라를 구한 여성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광장을 수놓은 응원봉에 대한 치하로 퉁친 민주당 출신 대통령임을 잊지 않을 것이지만, 애써주기를 바란다.


계백이 용장이라고 가족을 죽여도 되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신문을 보다 문득 예전에 보았던 한 영화가 생각났다. 계백이 나오는 영화였는데, 가물가물 기억을 더듬어 검색해보니 <황산벌>이었다. 영화가 좋아서 기억했던 건 아니고 잊을 수 없는 한 장면 때문이다. 장면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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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이 출정하며 결사 항전을 위해 하려 했던 짓은 가족을 몰살하는 것이었다. 칼을 뽑아 들고 싸그리 죽이려 하자 계백의 아내가 울부짖었다. 그 비장의 와중에도 등장인물들이 모두 지방 방언을 구사해 기존의 사극에 익숙한 나는 좀 낯설고 웃겼다. 계백의 아내도 찰진 전라도 방언으로 호소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왕에 대한 충성과 무훈을 세우고 싶으면 너나 전쟁에 나가 싸우다 죽어라. 니가 뭔데 애들을 죽이냐.


아이들을 살리고 싶은 엄마이자 아내인 계백 부인의 원통한 절규가 어찌나 슬펐던지, 영화 제목도 내용도 어슴푸레 했지만 그 분노가 시퍼렇게 되살아났다. 정말 화난다. 남자 가장들이여, 당신이 가장이면 가장이지, 무슨 자격이나 권리로 가족 살해를 저지르는 것인가.


아침부터 옛 영화를 소환하며 화를 불러낸 기사는 가족 살해 사건이었다. 채무로 허덕이던 한 가장이 차량에 아내와 10대 아들 둘을 태우고 바다로 돌진해 빠뜨려 수장시켰다는 내용이었다. 같이 죽지 않고 자신은 범죄 후 빠져나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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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도 채무 문제로 괴로워하던 가장이 아내와 아들 둘을 살해한 후 자신도 죽은 사건이었다. 뭐 이런 몹쓸 놈들이 있단 말인가. 계백의 부인 말을 옮길 수밖에 없다. 죽고 싶으면 너만 죽으란 말이다.


빚을 졌던 주었던, 이 때문에 가정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면 살길이 막막해 살아갈 의지가 희미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혼자 죽겠다면 이마저 죽일 놈이라 욕하진 않겠지만, 무슨 이유로 가족을 해한단 말인가. 이는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사악한 가부장의 있지도 않은 생살여탈권이랄밖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기분 나빠 계엄하고, 이혼에 불만이 있다고 지하철에 불 지르고, 화가 난다고 가족을 죽이는 이런 무인지경 사회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원인 이유 등이야 어떻든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저질의 하수를 쓰려는 남성들의 무모한 타개책은 왜 엄청난 시대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갱신되지 않는 것인가.


오키나와 옥쇄의 진실


일제 전쟁의 광기가 막바지에 이를 당시 오키나와에는 희한하고 참혹한 사건들이 있었다. 주지하듯 오키나와는 일본과 다른 독립된 류큐 왕국이었다. 일제가 이를 강제 병합해 요새화한 후 오키나와는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미군 항전의 마지막 보루였던 오키나와에 주둔한 일본군은 오키나와인들에게 옥쇄를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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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을 위한 옥쇄 항전을 위해 일제는 프로파간다를 벌였다. 미군이 들어오면 너희는 다 죽는다. 그것도 처참히 도륙될 것이며, 여자는 무참히 강간당한 채 시신이 훼손당해 죽을 것이다. 그 꼴을 당하느니 천황을 위해 옥쇄를 결행하는 게 훨씬 명예롭지 않은가. 천황을 위해 명예로이 죽으면 너희의 영혼은 신사에서 길이 기려질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어느 하나도 말이 되지 않고, 예정됐다고 떠벌린 잔악무도는 일제가 점령지에서 벌인 만행을 자백한 것이지만, 일제는 오키나와 남성들의 남성성을 이용해 공포를 주입했다. 내 소유물인 가족들이 그런 불명예를 얻느니 차라리... 하며 많은 오키나와 남자들이 가족 살해를 저질렀다. 오키나와와 역사적 동질감이 없는 일제를 위해 허무한 옥쇄 항전을 결행했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그런데 묘한 상황이 연구로 밝혀졌다. 집에 남자가 없던 가정은 옥쇄의 피해를 상당히 피해 갔던 것이다. 이 상황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일지 짐작이 될 것이다. 남자 가장이 미쳐 날뛰지 않았다면 많은 가족들이 목숨을 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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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점령한 후 일제가 떠벌렸던 잔악무도한 살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점령지의 피해야 필설로 다할 수 없지만, 어느 점령군이 일제만 하겠는가. 자신들의 점령지 파괴와 폭력을 미군에도 동일시해 벌인 사악한 프로파간다로 수많은 인명의 피해를 초래했다.


그렇다고 전쟁은 다 그런 것이라고, 일제의 잘못만으로 은폐된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일제도 미군도 아닌 오키나와 남자 가장에 손에 살해됐다는 극심한 남성 폭력의 결과를 말이다. 명심하자.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남자)은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가족(여성)의 생명을 해할 어떠한 권한도 없다. 이 당연한 정의가 왜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 살해로 배반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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