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성명서에 부쳐
남화숙의 <체공녀 연대기>는 1931년 평양 을밀대에 올랐던 평원고무 노동자 강주룡에서부터 2011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까지, 한국 노동사를 관통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역작이다.
가시화되지 않았던 여성 노동운동가들의 삶과 투쟁을 읽노라면 이들의 역동에 가슴이 뛴다. 책을 마칠 즈음에는 ‘그 많던 여성 노동자 투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워진다. 그런데 뜻밖의 조우를 하게 되었다. 70년대 내로라하는 여투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현장을 보게 된 것이다. 반가웠다.
이들은 김문수 부부가 대선 운동 과정에서 과거 노동 운동사를 자의적으로 변형 왜곡시킴으로써 당시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을 모욕한 것에 대해 심대한 분노를 표명하며 성명서를 발표하기 위해 모였다. 성명서 발표장에 등장한 노년의 여성들은 <체공녀 연대기>를 통해 그 이름을 각인시킨 우뚝한 여성 노동운동가들이다.
이들이 투쟁한 노동 작업장과 투사들의 이름만으로도 여성 노동 투쟁사의 계보가 된다. 원풍모방 이필남 조직부장, 이른바 ‘똥물 투척 사건’으로 악명 자자했던 동일방직 이총각 지부장, 콘트롤데이타 한명희 지부장, YH무역 최순영 지부장, 그리고 한일도루코에서 김문수와 같이 활동했던 박용남 부지부장이 나섰다. 이들은 김문수 부부가 대선 운동에서 펼치는 노동사 조작을 견디기 힘들었다며, 특히 같이 활동했던 박용남 부지부장과 설난영의 친구였던 한명희의 발언은 이들이 왜 성명서 장에 서 있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박용남은 김문수가 지부장일 당시 많은 노조 간부들이 끌려가는 와중에 자신의 안위만 지키며 숨어지냈던 일화를 밝혔다. 당시 노조를 지키기 위해 노조원들이 지부장인 그를 얼마나 지키고 싶었겠는가마는, 도피 중에 김문수가 보인 태도는 그들의 걱정이나 동지의식과는 거리가 먼 이중성을 보였다고 한다. 소위 ‘학출’인 김문수가 대부분 학력이 낮은 여성 조합원들을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가르치고 각성시켜야 할 불쌍하고 미숙한 노동자로 대하며 가부장적으로 지배하려 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설난영과 친했던 콘트롤데이타의 한명희는 당시 ‘학출’ 위장노동자?들이 노동자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유행처럼 소비했던 위선을 까발겼다. ‘학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자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여공’과의 결혼을 도구화했던 것이다. 만일 이들의 결혼이 파란만장을 겪더라도 여느 부부의 길을 갔다면 이런 발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 후 설난영의 서점에 들렀을 때 옛 투쟁 동지를 본체만체하던 그녀의 변심을 지적하며, 이들이 이때 이미 함께 투쟁했던 노동운동가들과 선을 그으려 했던 변절의 역사를 밝혔다.
물론 이들의 발언 역시 개인적 의견일 수 있다. 어느 쪽의 말에 귀를 기울이냐는 청자의 몫이다. 하지만 성명서 발표장에 나선 여성 노동 운동가들의 과거 노동 투쟁사는 <체공녀 연대기>뿐 아니라, 여러 논문 등을 통해 다루어졌으니 청자 스스로 참고해 판단하면 되겠다.
내가 문제적으로 느낀 것은, 그간 변절자일지언정 노동 운동사의 중심축을 김문수 같은 ‘학출’이나 중공업 중심의 남성 노동자들로 대표 삼았다는 것이다. 87년 6월 항쟁에 이은 노동자 대투쟁으로 주도권을 잡은 남성 노동운동가들은 그간 끈질기게 투쟁해온 여성 노동운동가들의 흔적을 지우기 바빴다. ‘학출 노동운동가’가 주도했던 노동 작업장의 거의 대부분이 여성노동자였으며 가열차게 투쟁을 이어간 것도 이들이었지만, 대표되는 것은 남성 ‘학출 운동가’였다.
여성 투사들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은 노동자 대투쟁 이후 본격화되었다. 주도권을 잡은 남성 노동자들은 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혁혁한 투쟁을 이데올로기적 철학이 부재한 ‘경제적 조합주의’로 맹비난하며, 함께 투쟁한 여성 동지들을 인지적으로 숙청한 후 그간의 노동사를 남성 주도의 노동자로 탈바꿈시켰다. 점자 이러한 망각을 이용한 노동사적 반동은 진보연하는 노동 학계의 상식이 되며 여성 노동운동의 역사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투쟁 과정에서 일정 정도의 과오는 없으면 좋겠지만 불가능하다. 과오를 잘 비판하고 새로운 투쟁의 발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직 비판을 위한 비난이 주목적이 되면, 그 판은 이미 파탄난 것이다. 작은 과오를 침소봉대해 여성 노동운동을 아예 사장시키려 했던 ‘학출 운동가’나 남성 중심 노동운동가들은 여성 투사들의 투쟁사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짱짱한 여성 투사들이 김문수를 비판하며 민주노동당 후보가 아닌 민주당 후보 이재명을 지지하고 나선 행보는 이해될 수 있다. 나는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지만 이들의 지지를 존중한다.
그래도 아이러니는 남는다. 노동투쟁에서 여성 동지들을 배신한 김문수를 위시한 남성 노동자들처럼 대선 판도 여성을 삭제했으니 말이다. 계엄 후 이들이 집회 현장 곳곳에서 보인 활약과 ‘같이 살자’는 호혜와 연대의 정신은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남성 중심 노동 신화가 여성 노동투쟁을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망각의 정치에 맞서는 것은 기억하고 말하는 것, 잘 기억하기 위해 <체공녀 일대기>의 일독을 권한다.
책에 담긴 베테랑 여성 투사 이철순의 “그때 그대들(여성 노동 운동가)이 없었다면 87년 대투쟁이 있었을까, 이 땅의 민주화가 이만큼이라도 가능했을까, 오늘날의 민주 노조 운동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라는 토로는 함의하는 바가 크다. 계엄과 탄핵 후 대선을 치르며 벌어진 여성 이슈 증발을 이철순의 토로에 대입해 말해보자. 그 적합성에 무릎을 치게 된다.
망각을 이용한 배신의 정치는 언제 끝장날 것인가. 부정의한 논공행상의 파장은 대선이 내란 세력 혼쭐내기로 끝난다고 해서 즉시 차별 없는 살만한 세상으로 화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번 대선이 망각하고 있는, 망각하려 하는 퇴행적 정치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