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선 판에 일렁대는 모성 신화의 망령

by 그냥

김문수가 어머니 얘기를 하며 울먹거리는 동영상을 보았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에서 발언 중이었는데, 여협을 보면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훌쩍였다. 헛웃음이 난다. 여성 공약이 전무한 김문수가 여협을 방문해 이들을 훌륭한 어머니들이라며 추켜세우고는 결국 어머니 타령을 하다 목이 메이다니. 코미디보다 더 ㅋㅋㅋㅋ


대체 왜 한국 남자들은 엄마 얘기만 하면 우는 것인가. 젊은 남자들이 이러는 꼴은 못 봤는데(이준석이 이런다는 것은 상상 불가), 내 남편을 위시한 나이살이나 자신 남자들은 자기 어머니 말만 하면 일단 눈물 핑부터 시작한다. 우는 남자들이여, 진정 그리 엄마를 사랑했는가.


당신들이 떠올리기만 해도 목이 메는 그 대상은 당신들에게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었기 때문에 그나마 추억되는 것일 테다. 그래서 희생과 헌신의 이데올로기를 배반하는 엄마는 엄마가 아니고 죽일 년이 되는 것일 테고... 참 징글징글한 모성 신화다.

설난영3.jpg


조금만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당신들 우는 남자들이 사랑한 존재는 남자이자 아들인 자신을 사랑한 한 여인이 아니던가. 남자인 나를 사랑했기에, 그것도 지극히 종종 짝사랑으로 애달파했기에, 그 사랑으로 온전히 남자가 되었기에, 엄마라는 여인을 그리도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당신이 사랑해마지않는 대상은 결국 우는 남자 자신이 아닌가 말이다.

대선 정국에 나와서도 그 지질한 엄마 사랑 팔이를 하며 여협에 당당히 표를 요구하는 김문수를 보며 나는 그의 엄마가 몹시 가여웠다. 그의 엄마는 단 한 번도 아들에게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이상을 좇느라(자신의 이상도 초개처럼 버렸지만) 무학인 엄마의 소망을 종종 무시했을 것이며 그러면서도 늘 서울대 간 아들로 당당했겠지. 엄마는 그냥 엄마일 뿐, 사람도 여자도 아닌 무성의 존재로 희생과 헌신만 주는 화수분이라 여겼겠지.


엄마에게 무슨 못다 한 꿈이 있었는지, 무슨 말 못 할 한이 있었는지, 허다 못해 무슨 색을 좋아했는지도 모르는 결국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아들이 무슨 염치로 엄마를 부르며 울며 그런 엄마를 팔아 표를 구걸하는가 말이다. 망인이 관짝을 두들기며 통곡할 일이 아닌가.


우는 남자들이 아는 것은 오직 하나(기억하는 방식이 오직 이렇다), 그녀가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자신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뿐. 끔쩍만 하면 들어서는 아이 때문에 사는 내내 배가 불러 고달팠던 몸과 또 이를 능가하는 산고로 얼마나 신산했을지, 그렇게 얻은 자식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느라 잠 못 자고 설친 밤이 얼마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을 마련하느라 얼마나 살벌한 시집살이와 농사 노동과 가사노동에 몸이 녹아내렸을지, 단 한 번이라도 알아보았는지 묻는다. 만약 우는 남자 당신이 이런 남자라면 나는 무릎을 꿇겠다. 우는 남자들이여, 양심이 있다면 대선 판은 물론이고 당신의 나르시시즘을 위해 모성 좀 그만 팔아먹자!


부창부수? 김문수 아내 설난영


김문수의 아내 설난영은 노조 운운으로 이미 입길에 올랐다. 동영상을 봤는데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실제로 한때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으로 맹활약했던데, 남편이 변절을 하며 함께 노선 정리를 했겠지만, 노조를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만들며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나.


SPC 끼임 사망사고가 얼마 전에 있었고, 고공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점점 뜨거워지는 불볕 아래 있다. 이 소외된 노동자들이 이제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최하층 빈민으로 여겨지는 기득권이 되었어도 위선이라고 좀 떨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설난영2.jpg


살다 보면 잦은 후회는 물론이고, ‘아 내가 잘못 살았구나’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향을 한 것이라면, 적어도 자신들의 변화가 자신에게는 합리화되어야 물러서도 수치스럽지 않은 게 아닌가. 대선이고 뭐고,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대통령이나 영부인이 대체 이 나라에 무슨 필요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녀는 한 방송에 나와 김문수와 연애담을 털어놓았다. 노조 관계로 안면을 트고 활동을 해나가던 중 김문수가 다짜고짜 시집오라고 했단다. 그의 발언을 통해 밝혀진 김문수는 이런 남자였다. 노동운동이 아무리 치열했어도 결혼해 가장이 되어야 남자라는 인식을 가졌다, 이 말인즉슨, 어떤 환경이어도 내 어머니처럼 나를 돌보고 섬길 대리 엄마인 아내가 필요한 가부장의 현신이었다는 의미다. 아내를 엄마 아바타쯤으로 여기는 마르크스의 후예는 두루두루 많으니 낯설지 않을 것이다.

김문수는 세상에서 아내 말을 가장 잘 듣는다며 짐짓 공처가인 척했다. 이 작태 역시 우는 남자들이 다 쓰는 수법이다. 어디 나가서 ‘아내 말 잘 듣는다’ 이러면 ‘어머 좋은 남편이네요’ 소리가 따라 나올 줄 알고 쓰는 수 낮은 노림수다. 남편의 허언을 듣고 맞장구를 치는 설난영의 얼굴이 아들을 대견히 여기는 엄마처럼 기이하게 보였다.


어쨌거나 남편이 대통령 하겠다고 나섰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터, 설난영의 행보가 전혀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냉소를 막을 길이 없다. 얼마 전 읽은 소설 <외딴방>이 생각난다. 그녀도 소설의 시대적 배경과 비슷한 때에 노동운동을 했는데, ‘외딴방’의 그녀들과는 절연한 것인가. 우물을 떠난 올챙이가 어릴 적 유영했던 그 물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는다. 자신을 키운 과거를 배신하지 않고 성장할 수는 없는 것인가.


외딴방7.jpg


keyword
그냥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156
작가의 이전글혐오를 정치화하는 대선 후보에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