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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정치화하는 대선 후보에 반대한다

대선 토론을 보고

by 그냥


어제 아침부터 SPC 공장에서 또 끼임 사고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고 종일 우울했다. 2022년, 2023년에 이어 또 사람이 죽었다. 도대체 이 망할 회사는 노동자의 피로 빵을 만드는 것인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이런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는데, 어떻게 김문수는 중대재해 처벌법이 악법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 해 827명이 산재로 죽는 나라라는 말이다.


이도 한숨이 나는데 익산에서 60대 엄마가 투신자살했다는 비보까지 들었다. 목에 집 열쇠가 목걸이처럼 걸려 있었단다. 집에는 우울증으로 죽은 지 한 달 된 딸이 있었다는데 숨이 턱 막혔다. 죽은 자식과 한 달간 지내다 투신자살한 엄마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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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겐 두 딸이 있었는데 그중 한 딸이 취업을 하며 그나마 지급받던 정부 보조금이 생활을 할 수 없는 금액으로 줄게 되었단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걸까. 엄마와 자매의 죽음 앞에 자신의 취업으로 두 사람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남은 딸은 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들의 서러운 죽음이 있기 얼마 전 수원에서도 모녀 자살 사건이 있었지 않았나. 이전엔 우리 사회를 놀래킨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세 모녀 법’을 개정했지만, 실소가 나올 일은 이 법을 적용해도 세 모녀는 구제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죽으면서도 미안하다고 했던 세 모녀의 비극은 수원 익산을 돌며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지만 모두 비극을 관람하고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구제책은 유력 대통령 후보 누구에게서도 찾아지지 않는다.


대선에서 누군가는 찍어야 하기에 대선 토론을 들었다. 토론을 좀 들을 만하게 할 수는 없나. 말꼬투리를 잡고, 면박을 주고, 맥락을 소거한 이슈를 침소봉대해 공격해야만 자신이 돋보인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번 토론을 보고 조갑제씨는 이준석이 토론을 제일 잘했다고 하던데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이준석을 싫어하는 것은 인정하지만(김문수도 이재명도 싫지만), 그의 말 하기 방식이나 정책엔 정말 호감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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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은 스테이블 코인에 대해 뭘 좀 잘 안다고 생각했는지, 이재명에게 USDT와 USDC의 차이점을 모르는 것 같다고 들이댔다. USDC와 달리 USDT는 계좌 동결이 안돼 불법 자금 유통에 쓰일 수 있다던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코인엔 문외한이지만) USDT가 USDC보다 투명성이 좀 떨어질 수는 있겠지만, USDC라고 미국 정부가 발행한 코인은 아니지 않은가.


그냥 USDT가 중국계 자본이라 싫고 의심이 간다고 말하지... 한국 코인거래소들도 USDT로 거래될 텐데 이것도 못마땅하겠군. 싫은들 미국이 국채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 정책에 박차를 가할 것은 명약관화하고, 한국이라고 이 변화의 파고를 피할 길은 없다. 여고 야고 할 것 없이 머리를 맞대야 할 판에 한심한 소리나 하고 있었다.


또 정년 연장하면 청년 일자리 줄어든다는데, 이는 아직 유효한 통계 근거가 없다. 고령화 성숙기로 접어들었는데, 연금 복지가 약한 한국 사회에서 정년 연장은 노인 일자리 대책으로 고려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년 실업률이 높지만 실상 청년 일자리와 노인 일자리가 경쟁 대상이 되는가. 이준석은 노인 정책?을 헐뜯어 이대남의 환심을 사려는 게 아니라면, 근거 없이 세대 갈등 좀 조장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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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또, 지역 간 차등 임금을 주자던데 반대한다. 이준석이 미국 예를 들자 미국은 주가 한 나라처럼 경영되는 체제인데 어떻게 동급 비교를 하나며 권영국이 혼쭐을 냈다. 동의한다. 가뜩이나 수도권 인구 밀집이 심각한 상황인데 거기다 임금을 차등 지급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하나 또, 이재명에게 “셰셰” 언급하며 친중이냐 아니냐 묻던데, 참 기막히다. 적어도 나라를 경영하겠다고 나섰으면 외교를 어느 한쪽에 몰빵하자는 태도는 아니어야 하지 않나. 한국은 중국과도 미국과도 불가원 불가근하며 줄타기를 잘 하는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억압하고 착취한 것을 생각하면 중국이나 미국이나 뭐가 곱겠는가마는, 그렇다고 둘 중 하나에 붙거나 둘 중 하나를 버리자는 지도자는 한국을 위기로 몰아갈 뿐이다. 지정학의 정치가 그리 간단하던가.

나는 이준석이 전장연 대표 박경석과 만났을 때(2022년 장애인 이동권 토론)를 잊지 못한다. 나는 그때 그가 토론장에 나선 방식이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강약약강)를 드러냈다고 봤다. 토론장에서 이준석은 토론장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있었고 박경석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박경석의 휠체어가 낮아 이준석은 대화를 하는 내내 박경석을 내려다보았다. 앉아 있는 위치의 불균형이 마치 사회적 지배의 위치에 있는 정상인 비장애인과 지배당하는 처지에 있는 장애인의 지위를 말해주는 듯해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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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토론장 배치를 이준석이 지시한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토론을 ‘해 준다’가 아니라 ‘한다’고 생각했다면, 상대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그런 토론장의 배치는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막지 않은 이준석이 바로 정치인 이준석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한다.


토론 자체도 ‘답정녀’ 방식으로 박경석의 주장을 몰상식 몰문명으로 몰아가며 불쾌감을 자아냈다. 모멸감을 느끼며 토론에 임했을 박경석과 국힘 당 대표와 만난다고 기대를 가지고 이를 지켜봤을 동료 장애인들의 마음이 그대로 와 박혔다. 이후 대선 정국에서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정책은 실종 상태다.


이준석은 무시와 혐오로 정치를 한다. 여성을, 장애인을, 노인을, 이주민을 타자화 몰문명화하고 자신이 문명이라고 생각한 것만 존중한다. 물론 모든 정치인이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정치인이 자신의 악을 포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국민이라고 웅얼거리는 그들을 개무시하고 있다는 증거다. 위선조차 떨지 않는 이런 정치인의 출연으로 나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미 목도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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