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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구한 여성을 버리는 대선 정국

대선 정책에 여성 정책 실종

by 그냥

별 기대는 없었다. 대선 정국에선 탄핵 집회를 주도한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에 대한 지분은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막상 타 정당은 그렇다쳐도 민주당에서 여성 정책이 전무한 것을 보고는 탄식이 나왔다. 그 옛날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냐는 대대적 여성 소외의 역사는, 내란 종식의 기치를 내건 이번 대선 정국에서도 반복됐다.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문에는 위기의 나라를 구한 주체로 국회와 시민을 호명했는데, 이 중 시민은 좀 더 정확히 말해 여성 시민이었다. 이들은 광화문, 남태령, 한남동에서 기적을 만들었다. 그들의 열망과 언어는 거대담론의 정의가 아니었다.


약자를, 소수자를 기억하고 동료 시민으로 대해달라, 이 마음을 잊지 않으면 탄핵이 끝나도 우리는 염치없는 엘리트 기득권의 도구로 돌아갈 거라고 호소했다. 자신들의 권익만 내세우는 기득권 엘리트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호혜적이고 연대적이고 평화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적인 발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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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탄핵 집회에 진심을 다해 참여하는 여성들을 보며 감동하면서도, 탄핵 완성 후 이미 예정된 토사구팽에 관해 토로하는 글을 썼었다. 탄핵을 완성하고 대선 정국에 들어가면 여성들이 일군 민주주의 대한 열망과 노력과 연대감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냉담해질 거라고, 결국 여성은 철저히 소외될 거라고. 여성들은 마음을 다했지만 진심을 다하는 마음은 언제나 이용당한다. 권력 없는 자들의 진심은 언제나 무시된다.


이준석은 이번에도 여가부 해체를 정책으로 들고나왔다. 예산도 거의 없이 간판만 달고 있는 여가부가 페미니즘에 무슨 역할을 했다고 반페미니즘의 기치로 여가부 해체를 들고나오나. 반페미니즘으로 남성들을 선동해 갈라치기에 성공한 이준석의 여가부 해체는 젊은 남성의 기표가 되었다. 이번 대선 정국에도 이에 결집하는 일베형 남성들은 그를 지지하며 반페미니즘 남성연대 빅텐트를 칠 것이다.

영국드라마 <소년의 시간>의 일그러진 남성성처럼, 있지도 않은 80대20 법칙을 교묘히 가공하고 유포하고 주입시킨 일베남들은 남자들의 방에서 알파 형님을 떠받치듯 이준석을 추어올릴 것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의 파고에 아슬아슬하게 파도타기를 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직시하고 리더십을 갱신하고 민심을 결집해도 모자랄 판에, 젊은 남성 정치인은 이 틈을 타 여성 혐오로 제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저만 옳고 잘난 줄 아는 이런 젊은 남성도 윤석열처럼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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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이 위급한 정국에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은 이재명이다. ‘어대명’에 한숨 나도, 민주당이 미투당인걸 결코 잊지 않아도, 이번엔 이재명을 찍어야겠다 생각한 내 마음은 차츰 변하고 있다.


AI도 중요하고, 4.5일 노동 정책도 중요하고, 부동산 정책도, 주식 코인 정책도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예 ‘여성’ ‘성 평등’ 정책을 실종시키고, ‘여성’ ‘젠더’에 함구령을 내리는 대통령 후보가 과연 이 난국을 수습하고 나라를 리셑할 수 있을까. 다시 세울 나라에 여성의 자리 따위는 없다고 시치미를 떼는 것 같아 말할 수 없이 착잡하고 화가 난다. 여성에게 언제 국가가 있었겠는가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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