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새벽> (데이비드 그레이버,데이비드 웬그로, 2025) 서평
한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책 모임에서 너도나도 <사피엔스> 읽기에 매진하는 모습이었고,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이 추천도서로 꼽아 유명해졌다. 주변에 감명 깊었다는 평을 전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그런데 어떤 책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것은 실상 매우 낯선 담론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를 쓰며 “상상된 질서를 벗어날 길은 없다”고 했던 소회는 이 책이 대중서로 성공한 맥락을 짐작하게 한다. 인류사를 인류가 상상하는 질서를 배신하지 않는 방식으로 풀어냈기에 사람들은 몰두할 수 있었다. 이 책에 열화하는 사람들은 새롭고 굉장하다고 평했지만, 기존의 역사 담론과 완전히 다른 말을 했다면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상상된 질서”에 도전하는 <모든 것의 새벽>같은 책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힘들다.
<모든 것의 새벽>의 공동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드 웬그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며 사회 불평등에 대해 고민하고 대화하다 “상상된 질서”가 아닌 인류사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로부터 10년이 걸려 책이 나왔는데, 저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2020년 안타깝게도 영면했다. 그는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에 실천적으로 참여했다.
‘고상한 야만인’이 유럽에 던진 파문
루소에서 발원했다고 여겨지는 사회 불평등 담론은 실은 ‘고상한 야만인’으로 불리던 아메리카 선주민에 대한 선망이나 오해에 기인한 부정확한 가설이었다. 루소는 1754년 ‘인간 불평등 기원은 무엇이며,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되는가’라는 제목으로 열린 논문 현상 공모에 응했다.
당시 유럽은 아메리카 선주민 칸디아롱크가 유럽인은 인색하고 행동의 자유나 공동체성이 없다고 한 비판에 크게 영향받았고, 루소도 이 비판의 영향 아래 논문을 제출했을 것이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를 적극 수용해 유럽인은(인간은) 원래 이기적이고 재산이 사회 문제의 근원이라고 확정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불평등을 이기적인 인류의 고질적 문제로 고착화했다.
고착화된 사고는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으로 사피엔스 패러독스(가장 영리하지만 가장 불평등한 인류)에 갇히게 했다. 현재 과학으로 알아낸 인류의 역사는 고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밝혀진 극히 일부의 역사를 수렵-농경-도시상업문명의 사회진화론이라는 단일한 패턴으로 보편화시켰다. 밝혀진 일부의 역사만으로도 각각의 원시 사회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 체제를 가지고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지만, 이미 주류로 자리 잡은 사회진화론은 이를 소거시켰다.
신석기 시대에 시작된 ‘농업혁명’이 정착을 유도해 잉여 농산물을 만들었고 이로 인한 잉여의 분배에서 불평등이 촉발되었다고 믿게 했지만 이를 반박할 증거는 많다. ‘농업혁명’의 근거지로 거론되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농업은 주가 아닌 보완적 형태였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초승달 지역이 농경과 목축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며 총과 균과 쇠의 발달을 가져왔다고 주장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농경은 ‘취미 농사’일 정도로 수렵과 채집은 계속되었으며 농경이 즉각적으로 위계와 사유재산과 불평등을 발생시켰다는 증거는 없다.
초승달 지역의 밀 농사는 실상 인간이 밀을 재배했다기보다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정도로 신석기 시대 농경은 실패의 위험이 컸고 종종 실패했다. 이 시대 농경은 공동 경작, 주기적 농경지 분배, 목초지 협동 관리의 흔적을 보이며 농경이 반드시 지배와 불평등으로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농경으로 인해 가부장제가 공고화됐다는 주장도 이 시기 예술과 제의 유물이 제시하는 바는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존재감이 두드러졌음을 알려준다. 이처럼 신석기 시대 농경이 불평등의 시원이었다는 사회진화론은 많은 유물 유적으로 그 허약함을 반증할 수 있다.
신석기 시대 사회상은 인류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했으며(무엇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극히 일부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자), 무조건 평화롭지도 무조건 불평등하지도 않은 채 각각이 처한 사회 환경에 따라 독자적 사회 체제를 구축했다. 역사와 문화에는 반드시 성장과 쇠퇴의 법칙이 있다는 목적론적 사유를 버리면, 각각의 원시 사회가 저마다 고유한 사회 시스템을 가지고 변화했음을 발견하고 수용할 수 있다.
우리가 진리처럼 받아들인 사회 발전 시스템대로 변화한 원시 사회는 없으며 어떠한 역사도 연속적인 일관성을 가지고 변화하지 않았다. 농경으로 지배와 불평등이 발생했고, 이로부터 지금의 ‘국가’라고 여기는 형태의 사회로 이어졌다는 역사는 없다. 사회의 변화상은 진화(발전)의 산물이 아니며 ‘주권, 행정, 카리스마적 경쟁’을 통해 서로 다른 기원에서 유래했다.
파라오 이집트, 잉카의 페루, 아즈텍 멕시코, 한 왕조 중국, 제국 로마, 고대 그리스의 고대문명은 대부분 계층화된 사회로 전제적 정부의 폭력이 존재했고 여성들의 종속에 의해 유지되는 등 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했지만 그렇지 않은 문명도 존재한다. 인더스 문명은 권력자가 통치했다는 증거가 없고 크레타문명도 군주제의 증거가 없다. 크레타문명의 유물 유적은 여성 정치 통치 시스템의 흔적을 시사하지만 어떤 군주제의 자취 없이 2천 년간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지배체제를 보유했던 문명 앞에서, 질문은 왜 사회는 불평등한가가 아니라, 왜 어떤 사회는 불평등하지 않았는가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주류 인류학이나 고고학이 자기 확증적으로 견지해온 미개-야만-문명/무리 사회-부족-족장 사회-국가라는 도식화된 사회 진화적 발전 단계는 인류 역사를 이해하는 유일한 접근 방식이 아니다. 다양하고 복잡하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변화한 인류사에 사회 불평등의 기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있지도 않은 불평등의 기원에 집착하기보다는 “사회적 존재의 다른 형태를 상상하고 실행할 자유”를 숙고함으로써 지금 여기의 불평등에 대항하는 것이 인류에게 이롭지 않을까.
가난하면서 부자의 탐욕에 공감하고, 약자이면서 강자의 폭력에 관대하고, 피지배자이면서 지배자의 규범을 내면화해 마침내 이러한 위계가 만드는 불평등을 노예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저 위대한 ‘사피엔스’의 종착지라는 것은 비참하다. 사회는 원래 불평등하다는 이데올로기는 지배 통치를 수월하게 하려는 권력자의 도구일 뿐, 사회 구성원이 당연히 받아들일 삶의 방식이 아니다.
인간의 고유함마저 잡아 흔드는 AI 시대다. 가공할 AI가 인간을 소외시키며 야기할 사회적 불평등은 또 얼마나 어떻게 심화될 것인가. AI 국가 정책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만, AI가 필연적으로 야기할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담론은 듣기 어렵다. 각자도생만이 이 불평등 시대에 살아남는 길이라는 기획된 기만에 속지 말자. 인류의 대응과 상상력은 더 나은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