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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오르막길>,'은둔형 외톨이'?

by 그냥


이제 시원해 질만도 하건만 여전히 덥다. 환경에 가한 가해를 생각하면 투덜댈 염치도 없지만 그래도 힘들다. 아파서 더 힘들다.


8월 내 시름대다 마침내 이석증까지 재발해 통제할 수 없는 어지러움과 구토로 그야말로 산송장처럼 소파와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VR 고글 비슷한 걸 쓰고 누운 채 머리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리다 엎드리는 자세로 3분간 씩 돌려주고는 5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내는 게 어이없어도 아쉬우니 어쩔 수 없었다. 네 번째 방문한 날 의사가 괜찮아졌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여진처럼 어지러움과 구토감 그리고 두통이 남아있지만, 돌아다니던 돌이 제자리로 갔단다. 물론 언제 다시 빠질지 모른다는 경고도 함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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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은 나중이고 어쨌든 나았다니 해방된 기분이었다. 일주일간 치료비가 무려 30여만 원 들었는데 기막혔다. 문득 여유 없는 사람은 치료도 못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증으로 먹지고 못하고 뻗어있는 나를 가련히 보던 딸애도 회복 소식에 환호했다. 엉뚱한 이 녀석은 내게 “맹장 수술 두 번? 이석증 한 번?” 묻는다. 난 맹장 두 번이라 했다. 맹장이 안 아파서가 아니라 이석증의 통제 불능 때문이다.



이석증은 증세가 다양하지만, 대체로 태어나서 처음 겪는 큰 어지러움에 던져지는데, 굉장한 공포다. 8년 전 이석증이 처음 발발했을 때, 그 어지러움이 너무 극단적이라 혼자 울며 기어가듯 병원에 갔다. 마치 내가 드럼통에 넣어진 채 굴려지는 어지러움이었는데 상상 이상의 공포였다. 뭐든 낯선 것은 두렵다.



그로부터 1년여 고생하다 차츰 나아지긴 했지만, 잊을만하면 어지러움이 엄습해 괴롭히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엄청난 급의 어지러움이 급습했다. 병원에 동반해 나를 기다리던 딸애가 이달의 내 운세를 보았는지 어쩌면 이만한 게 다행인 듯하단다. 귀여워서 웃었다. 영 틀린 말도 아닌 것이, 8월 내내 시름대는 와중에도 뚜껑 열리게 빡치는 사건이 세 번이나 있었다. 아 정말 나쁜 남자 인간들....




치료받다 닷새쯤 되던 날, 너무 지겨워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누운 채로 폰을 쳐들고 볼 수 없어 TV 미러링을 했다. 요리를 가끔 보는데 대단하신 알고리즘이 한 채널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고독한 1인 가구 집밥 일상’이라는 썸네일이었는데, 채널(‘오르막길’)을 훑어보니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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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의 젊은 비혼? 여성이 시켜 먹는 게 아니고 집밥을 해 먹는다는 게 요즘은 드문 일이라 신선했다. 뭐 대충 하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당근을 썰어 채치는 걸 보니 이 여성은 음식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약간 엉성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거야 주부 몇십 년 해도 그럴 수 있는 것이고. 배추겉절이 양념하는데 보니 멸치 액젓까지 구비해 놓고 있었고, 이번 여름에 아프느라 나도 못 해먹은 고구마순 김치를 맛깔나게 무치고, 감자 깔고 지지는 가자미조림은 또 어떻고, 이 여성은 조리 깜냥이 있는 이였다.


그녀는 집밥에 진심이었다. 그렇게 먹고살았고 그런 음식을 아직까지 좋아하는 사람인 것인데, 요즘 이런 젊은이가 많지 않아 귀했다. 재미있어 연속해 보다 보니 그녀에게 약간의 사정이 있었다. 18세에 대기업 생산직에 취업했는데 그때 선임들이 꽤나 호되게 갈군 모양이었다. 오래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면서 대인 기피증이 생겼고 어쩌다 보니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단다. 이것만 들어선 좀 더 극복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보다 보니 더 깊은 연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가정폭력범인 아버지가 그것이었다. 안 봐도 비디오다.


아버지 폭력으로 뇌 수술까지 했다는 엄마가 마침내 황혼이혼을 하고 독립하는데 이런 남편이 위자료를 줄 리가 없다. 그녀가 겨우 모아둔 목돈을 털어 엄마의 독립을 조력했다. 짠했다. 말이 쉽지, 제 앞가림도 쉽지 않은 37세의 형식적으로는 무직인 그녀가 엄마의 새집을 마련하고 살림살이를 장만해 주며 두루두루 보살피는 게 어지간한 마음으로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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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지만 폭력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공포 통치한 가부장은 게다 무능했다. 자식들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줬을 리 없고, 그런 틈에서 안 맞으려고 그리고 엄마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을 그녀를 생각하면 짠하다. 폭력에 찌든 엄마가 정신을 바로잡고 아이들을 보호하며 키우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의 한을 자식에게 퍼부으며 부지불식간에 자신도 자식의 마음도 증오의 칼로 난도질하지 않는가. 이를 지켜보며 어린 자식 특히 딸의 마음은 처참히 붕괴된다. 마음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남은 것이 없는 마음을 건드리면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첫 직장에서 호되게 당한 상처는 사람과 조직을 견딜 수 없게 했을 것이고 그렇게 ‘히끼꼬모리’가 됐을 것이다. 나는 <미지의 서울>을 보고 미지의 은둔에 공감되지 않는다는 글을 썼는데,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오르막’의 그녀에겐 공감이 갔다.




나는 그녀가 엄마를 돌보는 것을 특별하게 보았다. 보통 ‘히끼꼬모리’는 방에 콕 박혀 엄마를 등치게 마련인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추적60분> 은둔형 외톨이 편에 등장하는 중년이 된 남성 외톨이들은 은둔을 하면서도 엄마의 돌봄을 받고 있었다. 일흔이 넘었거나 여든이 되어가는 노모들은 얼마나 가슴이 타 들어갈까. 버거운 중년 외톨이 아들을 둔 노모들은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견디고 있었다.


외톨이 아들을 돌보다 노모들도 병에 든 것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묘하게 아들의 은둔에 엄마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다루었다. 정상성을 다그치는 엄마, 기다려주지 않는 엄마, 마음을 모르는 엄마가 아들의 은둔에 기여했다는 것인데, 동의되지 않았다. 중년 외톨이들은 여전히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그녀가 제공하는 주거 서비스를 받으며 자신의 은둔을 이어갔다. 부모가 엄마만이 아닐 텐데 프로그램 내내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비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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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의 은둔이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은둔이 만약 재우치는 엄마 때문이었다면 엄마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엄마를 떠나지도 극복하지도 않은 채 늙은 몸이 제공하는 돌봄을 당연한 듯 받고 있었다. 울화가 쌓여 병이 든 엄마는 자신의 탓으로 병을 만든 것이고, 아들의 은둔은 더 헌신하지 않은 엄마의 탓인 양 조명하는 데 반대하는 것이다. 엄마의 돌봄을 받으며 은둔하는데, 엄마가 가둔 것이 아닌 한, 그 엄마에게 주홍 글씨를 매다는 건 비윤리적이다.


이런 점에서 오르막길의 그녀는 달랐다. 징한 성역할일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 가족을 돌보라는 가부장의 규범을 내면화한 여성들은 저만 생각할 줄을 모른다. 엄마를 가족을 버리지 못한다. 게다 어떻게 노모를 부려먹는가. 어떻게 노모의 돌봄을 중년의 자식이 무상으로 받는가. 그녀는 엄마를 착취해 자신의 안락을 취하는 가부장 아들의 비루한 습속을 배워 본 적이 없다.


‘오르막’의 딸은 착하다. 그래서 슬프고 그러면서도 웅숭깊은 그녀가 귀하다. 대인 기피증을 겪는다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최소한의 생활비는 벌어야 한다. 혼자 할 수 있는 새벽 청소와 당근에서 비대면 알바를 찾아 번 최소한의 생활비를 아껴 살고 있었다. 그렇게 번 적고 귀한 돈으로 식자재를 사 알뜰살뜰 집밥을 하고 조리한 음식을 꼭 반으로 나누어 엄마에게 전하는 그녀를 어떻게 딱하기만 한 외톨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변변한 직장을 다니지 못하지만, 혼자된 노모를 돌보는 그녀의 노동은 어떻게 무임노동이 될까. 사회는 그녀의 돌봄 노동에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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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유튜브 <오르막길>를 보는 내가 신기했던지 딸애가 물어온다. 이어폰 한쪽을 나눠주니 같이 보던 딸애가 감탄한다. 그러면서 요즘 정신과 의사가 환자들에게 치료 차원에서 유튜브 제작을 권한다고 한다. <오르막길>의 그녀도 2년 넘게 동영상을 올리며 많은 지지와 응원 덕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했다. 괜찮은 치료법인가. 이제 바야흐로 유튜브가 자아 확장을 넘어 자아 치료의 차원으로 이동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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