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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마저 부자의 손에 넘어갔다

비트코인 13개 모은 '흙수저 교사'

by 그냥


공유 받은 글을 읽다 놀랐다.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었는데, ‘비트코인 올인했던 흙수저 교사입니다’라는 제목이었다. 글을 쓴 이는 아내와 딸이 있는 남성 가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었다. 그가 인증한 비트코인은 약 13. 63개였다. 한국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현재 시가를 확인해 보니 약 1억 6600, 그럼 그는 현재 약 21억이 넘는 자산가인 셈이다.


21억도 많은 돈이지만, 향후 여러 해외 금융 기관의 보수적 전망치인 10년 내 10억으로 추산하면 그는 130억이 넘는 부자가 될 예정이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지만, 모르는 사람이어서인지ㅎㅎ 축하해 주고 싶다. 말이 쉽지 적은 교사 월급으로 굉장히 아껴 살지 않았다면 모으기 힘든 비트 개수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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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았던 기준으로 가장 쌌던 가격은 2020년(이전에는 비트코인이라는 게 있는 줄 몰랐다ㅎㅎ) 2천만 원 정도였는데, 그는 빨리 사기 시작한 걸까. 설마 저명한 비트코인 주창자 오태민씨처럼 50만 원 정도에 산 것일까? 그렇다면 대단한 통찰자이자 확신자다. 부럽다.


오씨 말로는 사는 것보다 지키는 게 어렵단다. 만약 운이 좋아 50만 원에 샀더라도 이게 500만 원이 되고 5000만 원이 되면 팔지 않고 못 배긴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주식으로 치자면 텐텐 아니 백백배거가 난 판이니 이 정도 먹었으면 됐다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길 것이다. 그런데 그는 팔지 않은 것이다. 교사 월급으로 ‘사팔사팔’해가며 모을 수 있는 개수가 아니어서, 그의 인내에 엄지 척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2020년 경 우연히 비트코인을 알게 됐다. 시세가 엄청나며 미디어에 오르내리기 시작할 때였다. 그때 우연히 오태민씨 유튜브를 보게 됐는데 그의 주장이 썩 신뢰가 갔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달러로 장난치는 월가는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을 파산시키고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달러를 찍어내면 되는 미국은 지속적으로 달러 과잉을 벌여 글로벌 금융을 교란 왜곡시키며 금융 구조를 망가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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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망할 달러에 반해 반인플레이션과 반중앙화의 기치를 내걸고 사토시라는 일본식 가명을 쓰는 어느 천재가 비트코인을 만들었단다. 내가 가장 매료된 부분은 중앙이나 달러의 횡포에 맞서는 화폐라는 것이었는데,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얕다. 하지만 미국이 맛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했고, 아주 오래지 않아 커다란 돈의 쓰나미가 닥칠 것은 피할 수 없는 미래로 보였다. 기강 없는 나라의 가난한 나는 조금 두려웠다. 더 각박해질 내 삶과 일정한 부를 남겨주지 못할 내 딸애의 미래도 암울했다.


당시 다행인지 나에게 이제 막 만기가 다가오는 1천만 원이 있었다. 부를 늘릴 재간이 없는 나는 그냥 여기에 묻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2천만 원 정도로 급락해 있는 비트코인을 사기는 매우 조바심 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 같은 무지랭이가 무슨 재주가 있겠는가. 부동산? 주식? 못한다. 선택지가 없다는 희미한 확신으로 돈을 보태 비트코인 0.5개를 샀다.


그때 돈이 더 있었다면 더 많은 비트코인을 살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희미한 확신의 깜냥은 0.5개 딱이어서, 위에 언급한 교사의 13개 비트코인에 배가 아플 수 없다. 그가 13개를 모을 동안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누구나 비트코인을 더 이상 사기라 생각하지 않지만(아닌가?ㅎㅎ), 얼마 전만 해도 사기니 가짜 돈이니 하며 여기저기서 얼마나 으르렁댔는가.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가 대표적 케이스다. 그는 대놓고 비트코인은 쓰레기라더니 지난해 떡하니 비트코인 ETF를 출시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다. 진짜 웃겼다. 돈만 되면 못할 게 없는 게 월가의 괴수들. JP MORGAN은 또 어떻고. 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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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록 비트코인 ETF가 출시되고 비트코인이 천지개벽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의 함의를 이해하지만, 나는 어쩐지 비트코인의 ‘가오’가 상한 것 같아 별로다. ETF로 비트코인이 확실한 자산으로 등극했다고 환호한 이들은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그를 지지한다고 대놓고 말했다. 나는 비트코인을 지지하지만, 블랙록 ETF도 트럼프도 마땅치 않다. 블랙록이 나서지 않아도 비트코인은 ‘될 놈’인데, 결국 금융 제도에 편입된 것 같아 찜찜하다.


트럼프는 재임 시절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했다가 대선 과정에서 360도 태도를 바꿔 “Never Sell Your Bitcoin”을 외치고 다니며 코인 투자자들의 환심을 샀다. 이뿐인가. 대통령 선출 전 트럼프 코인이라는 밈 코인을 만들어 크게 한탕 해 먹었다. 그의 아내 멜라니 코인까지... 게다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대통령일 때 큰돈을 벌려고 불철주야 뛰어다니며 크립토 사업을 벌인다. 비트코인에 이어 스테이블 코인이 언급되더니 갖은 알트코인들이 돈벌이에 동원되며 크립토 천하가 벌어졌다. 한국도 원화 스테이블 코인 어쩌고 하며 설왕설래하고 중이고 말이다. 그야말로 쩐의 전쟁이다. 어지럽다. 조변석개가 요즘처럼 실감 날 줄이야...


얼마 전 비트코인이 12만 불을 넘어서고 횡보 중이었다. 딸애가 단기 알바 비슷한 거를 하고 145만 원을 벌었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왔다. 홀랑 쓰지 않은 걸 기특해하며 돈 생길 때마다 비트코인을 사라고 했다. 약 5년 정도는 더 모아가도 될 것 같아서였다. 145만 원으로 0.01개도 못 사지만 되는대로 샀단다. 오늘 보니 약 5만 원 수익이라며 좋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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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년 전 비트코인에 희미한 확신을 가지고, 말해도 면전에서 코웃음치지 않을 사람 좋은 지인 딱 3명과 조카 둘에게 비트코인을 사라고 조언했다. 아무도 안 샀다.ㅋㅋㅋㅋ 허긴 나 같은 무지랭이 말에 신뢰가 같겠는가. 얼마 전 만난 지인은 0.1개만 사라던 당시 내 조언을 씹었지만, 내가 말했을 당시의 비트코인과 지금은 정말 위상이 현격히 달라진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한 지인은 비트코인을 사려고 어찌어찌 600만 원을 모았는데 시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며 병원비로 들어가 버렸다고 속상해했다.


이제 1억을 넘어 2억을 향해 달리니 이제는 서민에겐 넘사벽이고, 강남 집 팔아 비트코인 샀다는 말이 떠돌기 시작한 것처럼 부자들의 자산이 된 것 같아 배가 아프다. 사토시가 빈자를 위해 비트코인을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그리고 그라고 이런 상전벽해까지 예견했을지 모르겠지만, 타락한 자본에 대항해 만들어진 혁명적 화폐가 결국 부자의 자산이 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침울해진다. 내 주변의 가난한 이웃, 지인, 친구 누구도 소량의 비트코인이 없다. 가난한 자는 정보에도 가난하다. 가난은 정말 구조적 착취 체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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