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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사랑한 ‘창녀’를 죄인들이 단죄하려 하는가!

용주골 종사자 자작나무회 별이의 무도한 판결에 부쳐

by 그냥


기분이 참 더럽다. 용주골 종사자 단체 자작나무회 대표 별이와 성노동자해방행동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여름의 재판 선고가 있었는데, 어이없는 판결이 나왔다. 별이는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 여름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별이와 여름은 동일한 사건의 현장에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을까.



별이는 두 건의 사건이 있었다. 파주시청이 용주골 내 업소 바로 앞에 새벽을 틈타 기습적으로 CCTV를 설치하려는 걸 달지 말라고 애원한 건과, 파주시청의 야간 용주골 감시 활동인 일명 ‘올빼미’ 현장에서 당시 용주골 담당 팀장 앞에 무릎을 꿇고 종사자들과 면담 일자를 잡아달라고 호소하다 아주 잠깐 바짓가랑이를 잡은 건이다.



판사는 이 두 사건 모두에서 별이의 공무집행 방해가 인정되고, 특히 당시 팀장의 바짓가랑이를 잡은 행동은 폭행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당시 현장 아주 가까이(2미터 이내)서 이 현장을 생생히 지켜본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내용을 구구절절 담아 탄원서를 썼건만, 수천 장의 간절한 탄원서에 판사는 일별도 주지 않은 걸까. 부정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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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는 누구의 무엇을 위한 공권력 행사일까. 사람들이 잠자는 새벽을 틈타 들이닥쳐 남의 집을 훤히 들여다보겠다는 무도함이 공무인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성매매 여성을 혐오하는 무리들을 밤이고 낮이고 불러들여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이 공무인가. 이미 용주골 출입구에 방범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이제는 집결지 내 거점 건물에 24시간 전방위로 회전하며 촬영하는 CCTV가 셀 수도 없이 많다. 종사자들의 삶은 공권력에 의해 상시로 감시 통제되어도 괜찮다는 것인가? 이는 경찰국가의 참상이다. 어이없는 판결에 침울한 별이를 뭐라 위로할지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이재명 정부 여가부 장관인 원민경은 반성매매 운동 이력이 상당한 사람이다. 나는 용주골에 연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반성매매 운동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반성매매 운동의 뿌리를 기지촌에서부터 찾자면 그 역사엔 명백히 그들의 헌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공이 크다 하여 일체의 비판이 불가능해서는 안 된다. 어떤 선한 지향도 완벽히 한 방향으로 긍정적인 영향만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원장관은 <막달레나공동체> 이사를 근 20년간 해온 경력이 있고, 성매매문제를해결을위한전국연대(이하 전국연대) 부설 운영위원장을 다년간 지낸 인물이다. 성매매 문제에 있어 그의 지향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족히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지난해 전국연대에 용주골 폐쇄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파주의 심각한 인권 침해를 알리며 연대를 호소하는 메일을 두 차례 보냈다. 이만저만해서 당신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단 한 줄의 답변도 없는 완전한 무시를 당했다. 이것이 종사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참혹한 현실이다.


이뿐이 아니다. 성매매 여성을 지원한다는 단체들에게도 용주골 연대를 호소해 봤다. 성매매 관련 단체 아니 여성 인권 단체 거의 모두는 전국연대의 우산 아래 집결해 있기에, 종사자들의 딱한 사정이나 심각한 인권 침해를 호소해도 하나같이 모르쇠다. 그들의 생각은 이런 것일 테다. ‘알겠어. 하지만 집결지 폐쇄가 먼저야, 성매매 근절이 먼저라고!’ 익숙한 멘트다. ‘독재와 싸워 이기는 게 먼저야. 성평등은 나중이야!’ 그토록 싫어하는 가부장의 레토릭을 주워섬기고 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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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근절에 이렇게 강경하고 일방적인 지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여가부 장관이 되었다면(여가부가 무슨 그리 끗발이 있겠는가마는), 용주골의 미래는 조금 더 암울하다. 이곳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집결지가 심각한 압박에 놓여 있다. 차차 활동가 여름이 평택을 방문해 종사자들에게 확인한 바로는, 그간 경찰 단속이 어찌나 악랄했는지 일을 전혀 하지 못해 생긴 생활고와 병고로 종사자들 3명이 자살했다고 한다. 이들의 슬픈 죽음을 애도하는 글은 어디서 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전국연대는 성매매 근절을 위해 집결지가 우선적으로 폐쇄되어야 하며 남성들의 성구매를 차단해야만 악의 씨앗을 근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한국 남성들의 미친 성구매 욕구는 병리적일 정도고, 성구매의 스펙트럼이 그야말로 너무 다양해 그 모두를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라고 한다. ‘성매매 천국’이라는 토양에서 나고 자란 한국 남성들의 지랄맞은 성구매 욕구가 사회 젠더적 병이 아닐까 싶은 나로서는 성구매를 불법화한다고 그 싹이 근절될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종사자들은 어떡해야 할까. 전국연대의 이니셔티브에는 종사자들의 안위 따위는 고려에 없다. 앵무새처럼, ‘탈성매매해. 그러면 구제해 줄게’라며, 받을 수도 없는 지원금을 들먹인다. 구매자를 범죄화하면 더욱더 음성화될 성 산업 피라미드의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성매매 여성들의 입지는 말도 못 하게 취약해질 것이다. 그저 한숨만 나온다.



원장관이 헌신했다는 막달레나공동체 단체명은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이름 ‘막달레나’에서 따왔다. 예수에게 포용된 ‘창녀’ 막달레나는 예수의 구원으로 탈성매매했고 이후 성녀가 되었다. 그러니까 탈성매매 해야만 좋은 사람 혹은 피해자가 될 자격이 생긴다는 암시를 단체의 이름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막달레나가 ‘창녀’인 채로 계속 살아갔다면 예수는 그녀를 내쳤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단체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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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엄격한 수녀회 수녀들이 ‘창녀’였던 여자들을 학대했던 내용을 다룬다. 수녀회는 아일랜드에서 1961년까지 운영되며 수백 명의 소녀들을 학대하고 매장시킨 ‘막달레나 세탁소’를 연상시킨다. 그녀들이 ‘창녀’가 된 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건만, 그들은 학대를 받으며 회개하고 갱생해야 할 죄인이 되었다. 신의 땅에서 모욕당하고 굶주리고 노역 당하고 맞다 죽임을 당했다.


용주골 폐쇄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쉬고라는 단체도 수녀회(가톨릭)와 상당한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한쪽에선 파주시의 공권력이 또 한쪽에선 신의 이름을 한 무리들이 성매매 여성들의 사지를 잡아당기며 고문하고 있는 형국이다. 별이가 받은 징역 4월도 이처럼 잔인하다. 예수의 판결은 어떠했을까. 예수를 빙자한 죄인들은 답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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