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할까 봐' 여성들 잡아 가둔 국가폭력

여성수용시설 인권침해 첫 인정에 부쳐

by 그냥

<윤락행위방지법> 피해자 등 12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배상 소송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는 지난 6월 당시 여성가족부가 1심 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항소 소송이었는데(한심하고 염치없다), 현 성평등가족부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1심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등은 1961년 만들어진 <윤락행위방지법>에 의해 단지 성매매를 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부녀자 수용 시설에 갇혀 폭력을 겪은 피해를 국가가 배상하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의아하겠지만, 1998년 모든 시설이 폐쇄되기 전까지, 숱한 여성들이 갇혀 있었다.

시설(국가)이 저지른 심대한 인권침해 피해는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형제복지원이나 선감학원 등은 주로 ‘부랑인’이라 불리던 소년들을 잡아 가두고 노역을 시키며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일삼았는데, 이곳에도 소수지만 여성들이 갇혀 있었고, 이들 또한 심대한 폭력에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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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이나 선감학원 등이 주로 소년 등의 남성을 가두었다면, 서울시립여자기술원이나 용인 경기여자기술원은 여성만을 잡아 가두었다. 대체 어떤 여성들이 시설에 수용되었을까. 1961년 제정된 <윤락행위방지법>은 성매매를 할지도 모르는 ‘요보호여자’를 보호하고 선도한다는 명목하에 전국 최대 규모인 서울시립여자기술원이라는 보호 지도소를 설치해 이들을 잡아 가두었다.


이는 성매매가 어떤 구조적 모순 속에서 일어나는지를 묻는 대신, 성매매에 연루될지도 모르는 여성을 죄악시해 가둠으로써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얕은 속임수였다. 성매매를 근절하려는 국가의 의지가 전무했다는 파렴치는 <윤락행위방지법>을 떡하니 만들어놓고 전국의 기지촌은 특구로 지정해 수많은 성매매 여성들을 유입시켜 미군을 위해 성을 팔도록 권장한 ‘국가가 포주’인 역사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쪽에선 ‘요보호여자’로 잡아 가두어 노동력을 착취하고, 또 다른 한쪽에선 미군의 달러를 긁어모으기 위해 ‘애국자’라 떠벌리며 성매매 여성을 착취했다.


시설에 갇힌 ‘요보호여자’중 일부는 1964년 서산개척단 남성들과 결혼하도록 강요되었다. 이는 여성들의 재생산권이 남성 가장이라는 가족 모델을 세우기 위해 철저히 이용되었음을 증명한다. 또한 형제복지원의 경우, 수용된 여성들이 성착취를 당하거나 강제 불임 시술을 당하는 등, 재생산권 침해와 성 착취와 학대가 심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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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적이고 무도한 법치를 증명하는 <윤락행위방지법>의 ‘윤락(淪落)’의 사전적 의미는 여자가 타락하여 몸을 파는 처지에 빠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타락한 여자가 매춘을 한다는 가부장의 유구한 기만술은 윤락이라는 혐오로 둔갑해 가난으로 살길이 막막한 여성들의 생존방식을 재차 모욕하고 차별했다.

<윤락행위방지법>이 생긴 1961년은 6.25 전후 복구가 미처 이루어지지도 못한 채 아버지나 남편 등 가장을 잃은 여성들이 먹고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시절이었다. ‘미망인’이나 고아 소녀들은 부재한 복지 체제하에 무슨 수단으로 호구지책을 마련한다는 말인가.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바꿀 정치력의 부재는 취약한 여성의 성을 단도리 하겠다는 가부장과 결탁한 감금과 학대의 정황으로 드러났다. 무능하고 부정의한 국가가 가장 손쉽게 쓸 수 있는 수단이 바로 감금 폭력이었던 것이다.

갇히고 매 맞고 굶주리고 노역 당하며 비틀린 비인간화에 대한 모멸과 분노와 고통의 피눈물이 국가로부터 어떤 배상을 받은들 경감되겠는가. 다만 성매매를 할지도 모르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가두고 학대하고 착취한 국가주의, 남성주의에 대한 호된 매질로서의 국가배상의 의미는 적지 않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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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사회는 ‘윤락녀’라는 60년대의 성매매 여성에 대한 혐오로부터 조금이나마 멀어져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파주시의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두고 보이는 폭력적인 행정과 몰이성적인 시민들을 보면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성매매가 언제나 경제의 문제였다는 진실을 외면하고서는 집결지를 폐쇄한다고 성매매를 근절할 수 없다.


성평등가족부 수장인 원민경 장관은 항소를 취하하며 “국가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책임감이 단지 성매매 여성이 아니었는데 잡혀간 여성들만의 피해를 애도한다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성매매 여성이든 아니든, 잡아 가둘 권리는 그 누구도 국가도 없다.


그런데 원 장관은 작은 국가인 지방자치단체가 계엄령을 내리듯 집결지를 가두리치고 감시하고 억압하면서 성매매 여성들을 압박해 맨몸으로 쫓아내려는 기획에는 어째서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집이자 일터인 삶의 터전을 성매매 여성들이 사는 집결지라는 이유로 처참하게 부수고 끌어내는 폭력을 저질러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거장 페미니스트의 발언은 한국 사회 어느 곳에서도 발화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은 누구의 무엇을 위한 대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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