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정보 유출 사태, 쿠팡 의장 김범석은 왜 숨어있는가

쿠팡 3370만 명 고객정보 유출 사건에 부쳐

by 그냥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이용자였던 딸애에게도 피싱 시도가 있었다. 딸애는 빠르게 ‘탈팡’했지만 아쉬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닌듯했다. 딸애가 쿠팡을 이용하는 주된 이유는 빠른 배송보다는 다품종 소량 구매가 용이한 서비스에 매우 만족했기 때문인데, 이번 유출 사태로 무척 빡쳤는지, 그간 꾸준히 ‘탈팡’을 권유해온 내 제안이 무색하게도 단칼에 끝냈다고 했다. 그런데 그놈의 ‘탈팡’을 어찌나 어렵게 설계해 놓았는지 회원 탈퇴가 무척 어렵고 쿠페이가 남아있는 경우도 탈퇴가 어렵다고 한다. 이익에는 눈을 벌겋게 밝히고 책임엔 나 몰라라 하는 쿠팡의 탐욕이 징그럽다.

이용자 약 3천4백만 명이라니,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지독하게 쿠팡에 락인된 걸까. 내가 사는 동네엔 규모가 작지 않은 슈퍼가 있어 식자재부터 생필품까지 큰 아쉬움 없이 구매할 수 있는데도, 동네를 지나다 보면 쿠팡프레시 박스가 집 앞에 놓여있는 경우를 자주 목격해 놀라곤 한다. 나 같은 옛날 사람은 무엇이든 구매할 실물을 보아야만 살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비슷한 연배의 지인 중에도 코로나 시기 쿠팡프레시에 맛을 들였는데, 한번 써보니 너무 편해 계속 이용한다고 했다. 나만 퇴행적인 건가 싶지만, 편한 게 다 좋기만 한 건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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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쿠팡 노동자들의 죽음을 대면하면 더욱 착잡하다. 얼마나 고되면 일하다 죽는 걸까. 올해만 해도 배송 기사 4명, 물류센터 노동자까지 합하면 8명이 죽었다. 극악스럽게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소비자건 노동자건 쿠팡행을 멈추지 못한다. 사용자 입장에서야 빠르고 편하다는 이점이, 노동자 입장에서는 언제건 노동 현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테다. 쿠팡이 만든 세계에서 사람들은 나날이 이용되고 마모되고 때로 죽음을 담보해야 하지만 멈추지 못한다. 3천만이 넘는 가입자가 있다는 말은 실상 한국 사회 구성원 거의 모두가 이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일 텐데, 섬찟하기까지 하다. 전 국민의 쿠팡화가 언제 이렇게 깊숙이 침투해 뿌리를 내린 걸까. 택배 없는 삶은 이제 불가능해진 건가.


나는 쿠팡 사태 이후 의미 있는 ‘탈팡’이 일어나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쿠팡 사태 이후 JP모간은 한국 사람들은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하지 않아 큰 파장이 예상되지 않으니 주식 폭락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기분이 나빴지만 정확한 예측이 돼버렸다. 이후 언론은 ‘탈팡’하고 싶어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하고, 일부 유튜버들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정부의 쿠팡 규제에 대해 중국을 돕는 멍청한 짓이라는 황당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중국을 돕는다는 주장도 말이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방만하게 고객의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기업을 그대로 두자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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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팡 의장 김범석은 이번 사태 이후 이렇다 할 언급도 없이 미국에 꼭꼭 숨어 있다. 미국에 상장된 기업이면 이렇게 큰 피해를 일으키고도 모른 척해도 되는 일인가. 뻔뻔하기 그지없다. 사태 이후 아마존을 흉내 냈다는 쿠팡 기업 구조에 대한 비판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놀랍다.


직급이 높은 관리자는 대부분 외국인이라 직원 간 소통이 힘들다, 개인정보 관리 비용이 싸다는 이유로 벌써부터 중국 쪽에 용역을 주어 관리했다, 회사 직원 전부를 대상으로 전달되는 고지 시스템이 아예 없다, 납품업체 대금 정산 지연이 악명 높다,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등의 어처구니없는 폭로가 이어졌다. 이 모든 부실한 기업 경영의 최후 책임은 당연히 김범석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그를 조사차 불러들일 수도 없다면, 이는 한국의 기업인가. 이런 괴상한 기업을 보호하자고 ‘혐중’까지 동원하는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내 집 앞에 도착시켜주는 택배 시스템에 모두 갇혀버렸다. 택배 노동자나 이용자를 싸잡아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편리함을 위해 고안된 서비스니 어느 정도 효용에 맞게 적당히 쓸 수는 없는 걸까(이를테면 노약자나 환자 장애인들에겐 더없이 필요한 서비스일 테니), 소비자의 편암함을 위해 희생되는 노동자나 개인 영세 사업자들의 삶과 노동의 위기는 함께 고려될 수 없는 걸까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소비자의 안락한 소비에 비해 노동자나 영세 납품 사업자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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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배송하다 사망한 쿠팡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새벽 배송을 없애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반대의 목소리고 꽤 컸다. 이용자도 이용자이지만 투잡으로 새벽에 일하려는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일리는 있지만,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장을 계속 방치하는 게 권리 보장인지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 새벽 배송을 애용하는 이용자들도 각각의 입장이 있겠지만 내 편리함이 누군가의 죽음을 뒤로한 것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쓰고 있는데 용주골 시민연대 SNS로 긴급 공지가 떴다. 오늘(12월 10일) 오후 2시 쿠팡 노동자들이 이번 유출 사태와 관련한 요구 내용을 가지고 쿠팡 대표이사를 만나러 본사에 들어갔는데, 경찰이 쿠팡 경비들과 함께 폭력적 연행을 감행했다는 소식이었다.


‘개인정보 유출 김범석이 책임져라! 물류센터 산재 사망 쿠팡이 책임져라! 단체 협약 체결, 휴게 시간 보장’의 정당한 요구에 쿠팡은 연행이라는 폭력으로 노동자들을 잡아들이게 했다. 경찰에 잡혀가야 할 사람은 거의 전 국민의 개인 정보를 유출시키고도 ‘노출’이라며 말장난하는 박대준 대표이사와 김범석 의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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