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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Sep 22. 2020

여자 셋이 제사를 지냈다


절은 조용했다. 큰 법회가 열리지 않는 바에야 절은 본시 북적이는 곳은 아니지만, 평소보다 더 적요했다. 코로나가 사람을 절 안으로 들이지 않아서일 터다.  

   

이 시국에 절을 찾게 된 연유는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이제 더는 제사 안 지낼란다”는 엄마의 선언으로 제사는 절에서 지내기로 결정되었다. ‘뜬금없이 절이라니’ 했지만, 50 년도 넘게 조상 제사를 지낸 엄마의 노고도 그만하면 해방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간 없는 살림에 일 년이면 십여 차례나 되는 제사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냈으면, 종부의 의무는 끝났다고 해도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닐 것이기에.     

 

그렇게 절로 옮겨진 아버지의 제사를 지낸 지도 벌써 십 년이 지났다. 이렇게 말하면 가족 중 누군가 불교 신자려니 하겠지만, 실은 아무도 독실한 신자는 없다. 삶이 아득해질 때 종종 절을 찾던 엄마가 불교와의 인연 전부인데, 시주금을 가지고 집에 난리가 난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 엄마가 신실한 불자였기 보다는 구복 신앙인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나는 이런 엄마를 동행하며 이 절 저 절 드나들며 종종 절 밥을 얻어먹은 게 사찰과의 인연 전부이고. 어려서 여러 차례 절을 드나들어도 불심이 한 번도 생기지 않은 걸로 봐서, 애초 종교와는 연이 없는 사람인 게 틀림없다.     


엄마는 딸들에게 긴 설명도 없이 그저 절에서 지내라는 명을 내렸고 그 딸들은 지금껏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코로나가 창궐하는 시절이고 보니 제사를 지내야 하나 잠깐 망설여졌지만, 이내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엄마는 마마 호환보다 극악한 제아무리 무서운 역병이 왔건 말건 딸들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연히 지내야지”라는 한 마디로 딸들의 고민을 뭉개셨으니 말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이후로 제사를 지내는 가족이 사찰 출입을 꺼려하고 사찰에서도 반기지 않는 형편이다 보니, 사찰에서 형식을 갖추어 제사를 지내고 그 과정을 촬영해 보내는 신 풍속이 등장했단다. 어디서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언니는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럴까 했지만 제사 지낼 가족이라야 달랑 세 명이고, 절에 제사를 지내러 가도 되냐는 물음에 그러라는 선선한 대답이 왔기에, 인터넷 제사는 물 건너가게 되었다.     

나와 언니 그리고 내 딸, 어쩌다 보니 여자만 셋이서, 제사를 지내러 절로 향했다. 종손인 아버지는 사실 제사 봉양만 했지, 가난한 살림살이에 그 많은 음식 장만해내고, 얼굴도 모르는 조상 제사 지내고 술이며 밥이며 실컷 먹고 눈치도 없이 좁은 집에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자고 가는 친척들 뒤치다꺼리까지 하느라 진이 빠진 사람은 정작 며느리인 엄마였다. 아버지는 축문만 멋들어지게 읊으시고 음복을 지나치게 거나하게 드시는 외, 조상의 제사에 기여한 바가 없다. 제삿날도 언제나 엄마가 일러주었을 뿐, 단 한 번도 스스로 기억해내 챙기신 적이 없었다. 오직 며느리 공으로 제대로 된 제사상 받아 드신 걸, 우리 조상님들은 아실까? 오죽하면 엄마가 딸들에게 제사 많은 집에 절대 시집가지 말라고 하명을 하셨을꼬?  

   

그 며느리인 엄마가 50 년 지낸 제사를 물린 마당에, 아버지 제사이긴 하고 집에서 지내는 것은 아니라고는 하나 어쨌든, 다시 제사를 모셔야 하는 주체가 적지 않은 조상의 전답 모두 팔아 날린 아들이 아니고, 그 아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뼈 빠진 딸들이고 보면, 내 집의 가정사도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여자 셋이 제주가 되어 지내는 제사는 사찰에서도 보기 드문 일일 터, 아무튼 탄식이 새어나오는 속마음을 어쩌지못한 채 여자 셋이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절의 제사라고 특별한 것은 없다. 다른 절은 잘 모르겠지만 이 절의 제사법은 간소하다. 먼저 부처님을 향해 삼배한 후 부처님을 경배하는 스님의 독경이 시작된다. 이 독경이 끝나면, 망자(이 절에서는 ‘000 영가’ 라고 부른다)의 영혼의 안녕을 비는 독경이 이어진다.


스님이 천수경 독경을 시작하면, 한글로 뜻과 음을 적은 천수경 서적을 보며 독경을 따라 해도 되지만, 운율도 그렇고 속도도 그렇고 실제 따라 하기는 어렵다. 알아듣거나 따라 할 수 있는 어휘는 ‘옴 마니 반메 홈’이나 ‘나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이 고작이다. 그러니 그저 음전하게 손을 합장하고 영가의 안녕을 마음속으로 기원하는 게 제사 지내는 법당의 보통 풍경이다.     


제단은 불당 왼 편에 마련되어 있는데, 영가의 지방을 제상 맨 위에 놓는 형식은 보통 제사와 같다. 사찰이다 보니 정말 조촐하게 차려진 제사상은, 고기나 생선이 허용되지 않으니 나물 두 가지와 밀전병, 두부 부침과 청포묵 무침 그리고 떡과 과일이 전부다. 집에서 제사 지내듯이 먼저 향을 피우고 제주를 올리고 재배한다. 절을 마치고 스님의 독경을 듣고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기웃댄다.   

  

아버지, 잘 지내고 계세요? 그곳은 여기보다 행복하죠? 그랬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지금 여기가 지옥인지도 몰라요. 코로나라는 역병이 돌아 사람들을 많이 해쳤어요. 의사들이 환자를 돌보지 않아 죽기도 했고요.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이 난리가 터졌으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엄마는 여기저기 아파요. 아버지가 떠날 때의 엄마는 이제 없어요. 먹는 것만 생각하고 아픈 몸만 호소하는 아이가 되었어요. 이제 엄마 데려가도 되지 않겠어요? 매일 죽고 싶다니까요. 언제쯤 데려가실래요?     


이런저런 막돼먹은 상념들을 꺼내고 있다 보면, 스님의 독경소리가 차츰 잦아든다. 여자 셋 인 제주(祭主)들이 모두 제주(祭酒)를 올리고 절을 마치면, 영가의 지방을 태우는 것으로 의식은 끝난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독경을 한 고령의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합장으로 대신한다.


보통은 제사가 끝나면 공양 간에서 가족들에게 식사를 제공하지만 코로나로 모든 게 멈춰 있었다. 과일과 떡을 챙겨 나오니 허둥대느라 아침을 먹지 않은 배가 고파온다. 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음복을 하며 이 얘기 저 얘기 나누게 되지만, 이제  그럴 수가 없다. 제사를 지낸 여자 셋은 어딘가로 가서 주린 배를 채워야 한다.     


추석이 멀지 않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 제사는 추석과 맞물리며 경제 사정이 곤궁할 땐 참 난처하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추석 차례는 지내지 않지만 엄마는 딸들을 기다릴 것이다. 딸들 손에 따라올 음식과 금전도 함께 기다리면서 말이다.  

   

코로나로 명절에도 ‘집콕’을 하라고 한다. 불효막심하게도 문득 그러고 싶은 충동이 인다. 무능한 채 노쇠해진 엄마 의식주 수발에 어지간히 지친 나머지 꾀가 난 때문이다. 게다 코로나로 피해만 입었으니 뭐라도 덕도 좀 보자는 얄궂은 역심이 발동한 탓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겐 코로나로 가족이 모이지 못하는 이 안타까운 현실이 다행이기도 할 테니,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역병의 시대를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오리무중이다.      


명절 음식 바리바리 장만하랴, ‘시월드’ 스트레스 받으랴, ‘명절 증후군’으로 만신창이가 되는 몸을 견뎌야 하는 며느리들, 힘든 가정 경제에 명절 효도비까지 챙기느라 시름이 깊어지던 얇은 지갑의 소유자들, 모이기만 하면 공부 잘하냐, 몇 등이냐, 취직했냐, 연봉이 얼마냐, 만나는 사람 없냐, 결혼 안 하냐 등등 관심을 가장한 명백한 사생활 침해를 저지르는 무례한 가족이나 친척들의 질문 세례에 몸서리가 처지던 이들에게, 이 신산한 시절의 명절 ‘집콕’은 그나마 얼마간의 휴식을 제공하지 않을까? 나도 이번 추석에 한 번쯤 엄마를 걸러 볼 수 있을까? 에휴... 언감생심, 안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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