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나에게 무엇일까?
20년도 어느 날,
한 후배가 ‘늘 확신을 갖고 선택하는 것 같은데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보내왔다.
후배의 현 상황에 대한 고민, 그리고 솔직하고 길게 답해달라는 말과 함께,
어쩐지 ‘솔직하고 ‘, ’ 길게 ‘ 둘 다 내게는 여러 의미로다가 그냥 지나칠 수 없이 턱턱 막히는 표현들이 아닌가?
아래와 같이 답을 보냈나 보다.
먼저 질문글만 봐도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고 두루두루 잘하는 게 많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요.
먼저 저는 삶이 좋게 평탄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분명 그 순간순간 나름의 최선을 다했고 노력했기에 운이 따라준 거일 거라고 확신해요.
그럼에도 뭔가 불만족스럽고 시늉만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면 아직 우리 나이가 모방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하고 싶고 잘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환경 속에서 있었기에 지금 느끼는 감정들이 들었을 것 같아요. 훌륭한 거죠. 부족한 건 알지만 한편으로 내가 내 삶에 기여한 바를 사실은 스스로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어른이 된 20살부터 특히 저도 많이 했던 생각은 세상 속에 던져진 것만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속지 않는 사람은 방황한다’라고요.
저는 이 말을 듣고 고민 없이 내려진 선택은 결국 내가 내 자신을 속인 것이거나 세상에게 속은 것이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실 회의감, 본질적 고민 같은 것들은 결국 방황이잖아요?
방황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방황하기로 한 것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속지 않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고요. 그래서 머리론 좋은 선택이 뭔지 아는데 매번 헷갈리고 어려운 이유는 누구보다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싶다는 좋은 욕심에서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 내가 이득을 얻는 방법은 방황에 대한 두려움은 없애고 내가 선택한 방황을 즐기는 것이더라고요 ㅎㅎ
다만 본질적인 고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그것만은 해내야 다음 선택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저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겠다고 생각하변 ‘왜?’라는 질문을 적어도 5번은 해요.
나는 왜 예체능을 하고 싶지?
근데 왜 고민이 대학 진학에 대한 것으로 흘렀지? 등 내가 나를 괴롭힌다는 감각이 들 때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나가려고 하면 본질이 조금 더 명확해지더라고요. 그게 나한테 정말 중요한 거구나!
둘째로 저는 그러고 나면 메모장에 ‘가치관’ 폴더를 만들어놓고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아주 솔직하게 코멘트를 씁니다.
후회든 판단이든 미래에 있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 점검을 하는 거죠. 코멘트를 적어놓고 선택을 할 때마다 그걸 보면서 점검하는데요.
음.. 질문자님은 지금은 그런 자료가 없으니 적어도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인정받고 칭찬받았을 때 기분이 좋았는가? 나의 업의 욕구는 무엇인가? 두 가지 질문에 답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칭찬은 살면서 받으면서 살아가는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귀담아 들리면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고 앞으로 이루고 싶은 업의 욕구일 때가 많더라고요.
중점은 많이 받은 칭찬이 아니라 귀담아 들린 칭찬입니다.
마지막으로 결국 선택을 할 때는 좋은 방황을 위한 로드맵을 가지고 가요. 제가 사실 생각보다 매우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이리 말하지만 업에 대한 선택만큼은 명확한 계획과 마음, 그리고 플랜 B가 세워질 때만 선택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 20대 초반을 생각해 보면 사실 자신이 없는 거면서 회피하고 합리화한 적도 많았거든요.
사실 교사가 되고 싶어서 사학과에 들어와 놓고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똑똑한 애들도 많고 해서 ‘나는 교사가 안 맞아.. 나 사실 더 활동적인 사람인 것 같아’ 하면서 다른 활동을 했는데요. 음 사실 저는 그때까지도 알고 보면 교사가 되고 싶었고 사실 성적이 학과 3등 안에 들어 교직이수 예정자가 될 수 있다는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거죠 ㅋ
이런 식의 방황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기 좋습니다. 나중에서야 나를 속였다는 걸 알고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교직이수를 결국 하고 여러 활동을 하며 난 다른 꿈이 있는 사람이야 해서 교사를 포기했던 것은 앞선 포기와 질과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습니다.
그러니까 선택이 어려울 때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일단 내가 이제까지 1순위로 생각한 것을 후회 없이 해보세요 그리고 지금 또 원하는 것 같은 것을 잽으로라도 도전해 보세요. 제가 사학과인데도 광고동아리를 들어간 이유도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모두 병행해 보고 선택하는 편입니다. 우리가 모방하는 나이라고 했는데 부족해도 다양한 시늉을 해서 활발하게 분자운동을 해보면서 나라는 물질의 상태도 자꾸 바꿔보고 다양한 그릇에 담겨보고 해야 자기다움이라는 창조가 가능한 것 같아요. 지금 내가 원하는 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 못해서도 아니고 ‘못할 것 같아’라는 마음을 ‘사실 그렇게까지 원하진 않았다’라는 마음으로 포장해서 남에게 던져버리지는 않는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라며 쳐다보고만 있지 않은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건 우리 삶이라는 작품도 해당되는 명제인 것 같아요
뭐 결론적으로 저에게 인생의 회의감이 생길 때 일상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2순위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1순위의 삶을 살려고 끊임없이 방황하고 나아가는 것 같아요. 나를 스스로 속이고 기만하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나를 정당화시키고 합리화하는데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써야 되니까요.
자소설이 인생화가 되면 그건 고통이잖아요
좋은 선택이 마음에서 무엇인지 안다고 하셨죠?
그게 1순위를 할 자신이 사실은 없고 그 어떤 것도 아직 중요하지 않다는 감각에서 오는 회피인지 진짜 나의 본질을 직면한 데서 오는 선택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면 좋은 선택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자라면 조금 더 방황하시고 할 수 있는 한 내가 쥐고 싶은 모든 것을 힘들더라도 기꺼이 병행하시고, 후자라면 선택하시고 몰입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실 만큼 스스로의 인생을 사랑하는 분이시니 계속해서 계획과 고민을 세워도 그 속에서 분명 어떤 선택, 어떤 감각, 어떤 사람, 어떤 목표가 모여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믿어요
우리 존재 파이팅
잊고 있다가 발견한 메일인데
알고 보니 매 순간의 나에게 쓰는 편지였던 것 같다.
역시 남에게 쓰는 편지의 최초이자 최종 수신인은 나인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선택해 봐
회피는 하지 말고 적절한 판단 유보는 해가면서,
빈 장표의 의미와 쓰임새를 소중히 여기면서,
대학교 때의 가치관인 중용에 대해 생각하는 요즘이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