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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job 조은 May 10. 2024

눌러쓴 글 속에 내 모습 발견한 날

크래커의 <그런 날> 가사 탐미





잠에 들지 못하면 하루를 보내기 아쉬운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근데 이런 건 마음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내게 어떠한 마음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업무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눈이 지쳐 잠이 들거나 술을 마시고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잠들어 버리고 마는데, 어떤 마음이 질서처럼 내 안에 머물 수 있을까?




도파민이나 우울이 다급하게 이끄는 생각들, 아침이 오면 꿈보다 먼저 사라질 감정들이 울렁울렁 뛰어다니는 그런 밤들이 나는 거지 같았다.

그럼 여기서 문제, 나는 정말 하루만 보내지 보내주지 못해서 잠들지 못하는 거였을까?

이 밤을 온전하게 보내지 못한 건 내가 나에게 머물러 있지 못해서였다. 이전의 문제를 이 밤에 끌고 오고, 이후의 불안과 기대를 이 밤에 데려와 심지어는 들이지도 않고 방치했다. 나를 이 밤의 주인이 아닌 문전박대당한 손님으로 만든 게 나였다는 걸 어느 날 그냥 알게 됐다.

나에게 일기 쓰기는 그런 나를 들이든 보내주든 하나는 해보려는 나름의 시도였다.








"서랍 속 오래된 편지를 꺼내보다
눌러쓴 글 속에 내 모습 발견한 날"

 크래커 - 그런 날



일기를 다시 보다가 크래커의 <그런 날>을 들은 밤을 발견했다.

이 때는 이미 일기를 제대로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때도 웃음이 났는데 지금도 이 일기를 보면서 웃음이 난다. 일기를 쓸 때만큼은 내가 나에게 머물러 주는 느낌이 든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中 / 해석 : "지금 만나러 갑니다"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고 생각해.
혹시 네 맘도 그렇지 않니?"

_ 크래커 - 그런 날




예전에 어디선가 [나이가 곧 시간이 가는 속도]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중학교 때 들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서 나이를 먹을수록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가 누군가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23이 되었다며 [시간이 가는 속도 23km/h]로 자기소개를 적어두었을 때 공감의 표정을 지으며 스크린숏을 해두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유도 몰랐던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이 빠르게 가는 이유'를 알게 됐다.

내가 세상을 감각하지 않으면 시간이 빠르게 간단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학생 때는 내가 무엇을 해도 축하해 주고, 4월이면 수학여행도 가고 5월이면 체육대회도 하고 금세 또 시험이 다가오고 그러다 보면 7월에 방학을 맞는데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경험, 감정과 같은 것을 감각할 일이 얼마나 있나?


그걸 알게 된 이후부터 일기를 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다시 한번 알아차리게 됐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내 경험과 감정을 더 감각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일기가 쌓이고 어느 날 돌아보면 어느 날도 '그냥 그런 날'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 즈음은 겨울 초입이나 흑맥주를 먹으면 기분이 좋고 이 즈음부터는 겨울 한가운데여서 데운 사케를 먹으면 기분이 좋다. 하다못해 이런 작은 경험으로도 나는 좋은 감정들을 품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인데 하루 단위로만 쳐도 슬프고 어렵기만 한 그런 닐이 얼마나 있나 싶은 거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中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이 장면이 참 인상 깊었다.

다들 좋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보면 정말 정말 정말 좋다 싶을 땐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군가를 만나면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인연이다 싶은 사람을 만나면 다 감각이 되고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이 많다.


그 사람 들어올 때의 장면이 슬로 모션으로 보이고, 그 사람이 입은 옷, 향기, 하다 못해 작은 액세서리나 습관까지도 다 눈에 담긴다. 그 장면이 오래 잊히지 않고 남는다. 짧게 나눴던 대화들, 그때 그 공간에 울려 퍼졌던 노래, 그날의 날씨 뭐 하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게 없다.







"밤하늘 그 아래 모두가 잠든 시간
고요한 도시에 내 마음 숨겼던 날
어른이 된 것 같았던 낮
아이가 돼버리는 밤"

_ 크래커 - 그런 날




마음엔 누구나 아이가 한 명씩 있다고 한다.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순간에는 내 마음속 아이가 나타나 심술을 부리는 거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내가 모르는 나를 알고 있는 것 또한 그 아이라고 한다.


누구는 내가 어른일 때 만나고, 누구는 내가 아이일 때 만난다. 나 또한 그렇다. 언제는 이게 나인가 싶다가도 언제는 또 이게 나인가 싶기도 하다.


나는 그래서인지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 이 문제를 오래 생각해 온 것 같다.


그런 내가 혼란스러워질 때면 도망치듯 이 노래를 틀고는 했다. 그러고 나면 그냥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그 답을 안다. 그 모든 게 나다.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나를 이해하면서 나의 마음속 아이를 만나고 기억하는 게 인생인 것 같다.

밖에서는 늘 지어야 하는 표정의 정답이 정해져 있어서 결국에는 하나의 표정을 짓고 말았는데, 뭐가 탁 풀린 때는 많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일기를 쓰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에  울 것 같은 표정, 어느 날엔 들뜬 표정으로 일기를 썼다.





"그날 그 밤 그 달빛 아래서
두 손으로 내가 나를 달래고
다 사라질 거야. 모두 지나갈 거야"

_ 크래커 - 그런 날


학생 때는 힘들면 "이것 또한 지나가리다" 이 문장을 마음속으로 새겼다. 이제는 힘들면 "이것 또한 지나가겠지만, 그 시간을 지나가게 만드는 게 나다" 이 문장을 마음속에 되뇐다.


나는 이제 나를 아는 법을 안다.

일기장을 펼쳐보면 된다. 사람과 문장 사이에도 타이밍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어느 나중의 날에 펼쳐 봤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면 위로를,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면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연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나중에 치매에 걸리면 어떡해?"라고 물었더니 "그럼 내가 옆에서 너 일기장을 계속 읽어줄 거야"라는 말이 돌아오는 걸 듣고 일기장을 조금 더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런 날들마다 '나는 이게 필요해'에 해당하는 나의 진짜 맨살 같은 마음은 거의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가사처럼 "누구든지 그냥 안아줬으면 해"와 같았나 보다. 그걸 지금은 연인이 해줄 수도 있지만 내가 나에게 해줄 수도 있다.

나에게 머물러주고 나를 그대로 수용해 주는 게 자기 연민이나 자기비판에 앞서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는 시간이나 노래 가사에 대한 대화를 특히 많이 나눈 것 같다.

그러면서  “별이 지금 우리에게 반짝인다면 이 별이 우리와 떨어진 거리만큼 그리고 자기가 만들어진 시간만큼 우리에게 왔기 때문이래. 그럼 내 눈앞에서 지금 반짝이는 게 있다면 살아온 시간만큼 반짝이고 있는 중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소중해져. 이왕이면 앞으로는 내 눈앞에서 반짝여줘”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것은 빛을 내기에 눈으로 인식된다고 한다. 삶의 어느 순간부터 온갖 게 다 예쁘고 애틋하다. 그 이유가 뭘까 오래 생각해 왔는데, 별만큼 반짝이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에게 오기까지 살아온 시간만큼 모두 자기만의 빛으로 반짝이는 중이기에 그런 것 같다. 내가 그런 날들을 지나서 돌아보고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배우고 경험한 바로는 인간에게 있어 ‘시간이 흘렀다 ‘를 감각하는 건 [나의 세계에 변화가 생길 때]인 것 같다. 물리학에서도 이 개념이 유효하다는 것을 보고 역시나 했다.






2022년 어느 날의 일기를 보는데 변화나 의미는 세상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알아차려야 하는 거, 가져야 하는 거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한다. 이런 날도 지나가고, 그런 날도 지나간다.

근데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그날을 보내는 내가 지나가게 한다.




@1billions




요즘 또 좋아하는 <슬픔이여 안녕>의 한 구절.

이제는 어떤 감정이 찾아와도 무조건 안녕이다. 만남의 안녕인지 이별의 안녕인지 아무튼 안녕이다. 슬픔과도 오래 함께 있으면 그게 다시 찾아와도 반갑듯이 감정 앞에서 내가 부릴 수 있게 된 여유인 것 같다.


어차피 이 감정들 언젠가 뒤돌아보면 내가 아는 빛으로 피어있다.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안녕하자.

그런 날도 있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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