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가사 탐미
어릴 땐 이 노래를 모창으로 많이 했다.
장기 있냐고 하면 박정현 모창으로 이 노래 애드립을 불러주기도 했다. 그게 남들을 웃기든 감동시키든 말든 유일한 장기였다. 그러다 시간이 오래 흐른 어느 날 축제 무대에 섰는데 이 노래를 선택했다. 장난으로라도 많이 부르던 노래라 그런지 하나도 안 떨렸다.
올해 첫 곡이 <너랑 나> 였다면 작년 마지막 곡은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였다.
멜로디가 좋아서 듣던 노래, 장난으로 따라하기 좋아서 부르던 노래에 인생이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난 어디 서 있었는지
하늘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건 모두 잊고 산건 아니었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마음 아물게 해
소중한건 옆에 있다고
먼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외로움과 오래 함께 있으면 외로움이 오면 어떤 감정이 드냐면,
반갑다.
어떤 때는 외로움 같은 감정이 오면 애써 부정하고 나는 그런 게 없는 사람이라고 쫙쫙 피려고 노력했는데 외로움도 불행도 슬픔도 이제는 오면 반갑다.
덕분에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철저히 혼자인 줄 알았던 때조차 외로움이 함께 해줬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다.
좋은 것이 세상 어디 있을거야라고 찾아나섰던 날들이 생각난다. 근데 그게 다 나한테 있었다. 내게 있는 것들을 더 좋아하는 데에 힘을 쓰고 싶다.
이제는 나를 찾아오는 것들은 나를 알고 온다. 그런 것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나인 것 밖에 없네. 그걸 몰라서 세상에 있는 좋은 걸 해주려고 무리하고, 나에게 오는 것들이 뭔지 몰라 문을 걸어 잠갔다.
작년 마지막 일기에는 작년에 왔던 한 연락을 떠올리는 게 써있더라. 작년에는 대학교 때 수업을 같이 들었다는 분께 뜬금 없이 연락이 왔었다.
범죄 수업이었는데 매일 네이버 카페에 행복한 일을 쓰는 과제가 있었던 수업이었다.
대형 강의지만 진짜로 매일 쓰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서 3-4명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분은 내가 수업에서 할 발표가 궁금했다고 한다.
내가 뭘 발표했더라. 사학과답게 1학년의 패기로 영화 <변호인> 으로 시작해서 국가보안법과 국가범죄 사례를 모아서 발표했던 게 생각이 난다.
교수님이 수업 내내 강조하신 건 ‘행복한 사람은 침해할 수 없다’, ‘범죄를 마주하면 도망쳐라’ 였다.
그 분은 나의 이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행복한 사람은 침해할 수 없다지만 매일 스스로 행복을 찾기도 어려울 만큼 행복을 침해당하는 사람이 있고, 범죄를 마주하면 도망치라지만 눈 뜨면 마주한 게 전부 범죄라 도망칠 수 없는 현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수님 말이 틀리다는 게 아니라 행복을 매일 스스로 찾을 수도 있고, 범죄를 마주하면 도망칠 수도 있는 저는 그런 사람들이 도망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할 겁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멋진 말을 한 것도 잊고 있었다.
그 분이 연락한 이유는 자기가 지금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이 났다고, 나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일을 막 시작할 때였는데 나 역시 계속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일터에서 행복해지기, 내가 있는 곳에서 행복해지기 다른 말 같아도 결국 다 같은 마음이었다.
작년의 마지막 날 즈음에는 경주로 여행을 가서 20살 때 갔던 코스를 돌아보며 내가 겪은 상실, 나의 오만이나 자만, 내게 왔던 것들을 하나 둘 떠올렸다.
숨고 싶어 헤매던
세월을 딛고서
넌 무얼 느껴왔는지
하늘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건 모두 잊고 산건 아니었나
예전에 김영하 작가의 책에서 ‘그 사람은 우물 속에 무언가가 있을 줄 알고 들여다보고 손을 뻗어 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곳엔 아무 것도 없었다’ 라는 문장을 본 기억이 난다. 들여다보니 내게 상실, 오만, 기회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된 게 아니다. 이제 그것들은 여기에 없다는 걸 알았다. 더 깊이 들여다보려다가 지금의 나를 빠뜨려 어디 하나 다치거나 그 사이에 뭐가 있는지 손을 뻗어보려다 지금 내가 손에 쥔 걸 놓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작년 마지막 날에는 이 노래를 들으며 작년 내내 내가 집중하던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에서 돌아서는 걸 선택했다. 그래 그랬지. 그런데 이젠 그랬으면 좋겠어.
그러면서 마지막 날에는 20살 때 수능을 망치고 잠적했던 시기를 떠올렸다. 고등학고 내내 가장 친했던 친구와 여행도 가기로 했는데 그저 계속 잠적해있고 싶었다. 친구는 그 동안 혼자 숙소와 기차에 갈 곳까지 계획하고 예약해 두었었다. 그걸 보니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여행 전 날 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하니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너는 미워할 수가 없어. 나는 너가 늘 좋아서 친구하는 게 아니라 이런 순간에도 밉지 않아서 친구하는 거야. 잘나지 않아도 돼. 여행 잘 다녀오자”
생각해보면 초년기의 되게 많은 시간을 알 수 없는 우월감과 자만심과 함께 지냈다. 적당히 해도 한 것보다 잘 되어서 ‘뭘 저렇게 열심히 하는거야?’라고 생각하며 지내기도 했다.
그런 쉽게 쌓은 것들, 쉬운 마음으로는 결국 가장 중요한 날 무너진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날 학교 시험 잘 본 거, 어느 날 모의고사 잘 본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나는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무너진다는 걸 이제는 안다.
친구와의 여행 이후, 20살을 맞는 마음가짐이 완전히 변했다.
‘나도 자격 있는 사람이 된다. 어디에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동안의 자격, 거길 가서 무엇을 하느냐의 자격이 중요하다‘
물론 그 마음가짐으로도 얻은 걸 잃지 않게 되거나 하기만 한 건 아니다. 자만하다가 소중한 걸 잃은 적도 분명히 있고, 또 운이 좋아 쉽게 얻은 게 있기도 하다. 기회가 와도 내게 올 기회가 맞나 의심하다가 놓친 적도 많다. 무엇보다 작년 마지막 날 즈음 다시 떠올려 다지기 전까지는 잊고 있던 말이었다.
그런데 다짐하기 전 나도 나고, 다짐할 때의 나도 나고, 다짐하고도 잊은 나도 나고, 그걸 다시 생각하며 다지는 나도 나다. 나는 오랫동안 [변하는 자아 속에서 진짜 나는 누구인가] 를 고민해 왔다.
작년 마지막 날에도 그런 생각을 하다가 2020년 글을 발견했다. 같은 시기인데도 하나는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고, 하나는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다.
진짜 나는 어느 쪽일까?
작년 마지막 날의 나는,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한다.
‘진짜 나는 여기에 있다‘
평생 그렇게 진짜 나를 쫓으면 평생 나를 모른다. 지금 생각하는 내가, 말하는 내가, 보는 내가 진짜 나다. 나는 지금 뭘 보고 있지, 무슨 생각하지, 무슨 말 하지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다. 이젠 그래도 돼. 이젠 그랬으면 좋겠어. 멀리 헤맸으니 이제 내가 가장 소중한 나에게 머물러 주기를 선택한다.
그저 매 순간 내가 나일 수 있는 게, 내가 아는 모습도 모르는 모습도 나의 변화라며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그런 내 곁에 오래 남아주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좋은 것들은 늘 곁에 있었다. 사실 그러니 곁에 있었던 거다. 감성적으로 생각해도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그게 맞았는데 더 알아보려다가 보지 못하게 됐고, 더 생각하려다 생각을 꼬아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오니 같은 길도 더 보게 됐고, 같은 것도 더 소중한 걸 알았다. 그럼 됐다.
나는 떠날때부터
다시 돌아올걸 알았지
눈에 익은 이자리
편히 쉴수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