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V와 DSR
Q. 비가 오면 왜 은행은 가장 먼저 우산을 뺏어갈까?
"은행은 맑은 날에는 우산을 빌려주려 안달하다가도 막상 비가 오면 우산을 뺏어간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남긴 이 유명한 말은 은행의 속성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경기가 좋고 내 주머니가 두둑할 때 은행은 "고객님~"이라 부르며 대출을 권한다. 하지만 내가 실직을 하거나, 사업이 어려워지거나, 경제 위기가 닥쳐 정말로 돈이 필요할 때 은행은 냉정하게 대출 연장을 거부하거나 돈을 갚으라고 독촉한다.
(Tip. 실직이나 사업 위기로 채무 상환이 어려울 경우, 법원의 개인회생 제도를 통해 원금의 최대 90%까지 탕감받고 금융기관의 독촉과 압류를 즉시 중단시킬 수 있다. 또한, 신용회복위원회(1600-5500)의 워크아웃을 활용하면 이자 감면과 상환 기간 연장을 통해 파산을 막고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은행의 태도에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답이 없다. 은행이 악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의 생존 매뉴얼이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 챕터에서는 은행이 당신의 우산을 뺏을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인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그리고 은행 자신의 생존 본능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갑자기 난이도가 올라간 느낌이 들지만 조금만 참아보자. 이 개념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생기니 말이다.
은행은 돈을 빌려줄 때 절대 당신의 착한 마음을 믿지 않는다. 은행은 권선징악의 기관이 아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오직 두 가지, 담보의 가치와 상환 능력뿐이다. 이를 숫자로 나타낸 것이 바로 LTV와 DSR이다.
한국은행의 <경제금융용어 700선>에 따르면 LTV(담보인정비율)는 자산의 담보 가치 대비 대출 금액의 비율을 뜻한다. 예를 들어 LTV가 50%이고 당신이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산다면 은행은 그 집을 담보로 최대 5억 원까지만 빌려준다. 나머지 5억 원은 은행이 집값이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설정해 둔 안전마진이다. 이 예시를 공식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LTV(담보인정비율) 50% X 10억(아파트 가격) = 5억(대출가능 금액)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당신의 연 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원금+이자)의 비율이다. 당신이 아무리 담보가 확실한 집을 가지고 있어도 소득이 줄어들어 DSR 비율이 높아지면 은행은 추가 대출을 해주지 않거나 기존 대출의 상환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연 소득이 1억 원이고 DSR 40%가 적용된다면, 은행은 일 년 동안 갚아야 하는 모든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합쳤을 때 4,000만 원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돈을 빌려준다. 이 예시를 공식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연간 원리금 상환액 / 1억(연 소득) < 40% (또는 지정된 DSR 규제 비율)
문제는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발생한다. 경기가 나빠지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 10억 원이던 집값이 7억 원으로 폭락했다고 가정해 보자. 은행 입장에서 담보 가치가 줄어들었으니 LTV 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출금 일부를 당장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또한 금리가 오르면 내가 매달 내야 할 이자가 늘어난다. 내 월급은 그대로인데 이자가 늘어나면 DSR 비율이 치솟는다. 은행은 "당신의 소득으로는 이 빚을 감당할 수 없다"라고 판단하고 대출 연장을 거부한다. 이것이 바로 비 오는 날 우산을 뺏기는 원리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어도 자산 가격이 떨어지거나 금리가 오르면 시스템에 의해 나는 부실 차주로 분류되고 우산은 회수된다.
은행이 이렇게 야박하게 구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은행 자신도 누군가에게 감시받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이 정한 자기자본비율(BIS 비율)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경기가 나빠져서 돈을 못 갚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은행의 건전성이 악화된다. 이때 은행이 살아남으려면 위험한 대출을 회수해서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즉, 은행이 당신의 대출을 회수하는 것은 당신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망하지 않기 위해(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생존 전략이다.
경제 위기 시에는 은행들이 대출 기준을 엄격하게 높이고 신용 공급을 줄이는 신용 경색 현상이 발생한다. 이때 현금을 확보하지 못한 개인과 기업은 흑자가 나고 있어도 유동성 부족으로 파산하게 된다. 이를 흑자 부도라고 한다. 내 우산은 내가 챙겨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은행의 우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은행이 언제든 우산을 뺏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만의 비상용 우비(유동성)를 준비해야 한다.
첫째, 감당 가능한 레버리지를 써야 한다. 집값이 30% 떨어지거나 금리가 2배 올라도 버틸 수 있는 수준까지만 빚을 내야 한다. 몸의 체력뿐 아니라 자산의 체력도 중요하다. 둘째, 현금 흐름을 관리해야 한다. 자산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매달 들어오는 현금이다. 위기 시에 은행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당신의 자산이 아니라 당신의 월 소득(상환 능력)이다. 셋째, 신용 점수는 생명줄이다. 평소에 신용 관리를 잘해두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대출 회수를 피하거나 금리 인상 폭을 줄이는 방패가 된다.
은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파트너이지만 결코 당신의 친구는 아니다. 그들은 철저한 비즈니스 파트너일 뿐이다. 이 냉정함을 이해하고 대비한 사람만이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젖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3줄 요약>
1. 은행은 자산 가치 하락이나 금리 인상 시 LTV, DSR 규제를 근거로 대출 일부 상환을 요구하거나 연장을 거부할 수 있다.
2. 경제 위기 시 은행은 자신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시중의 자금을 회수하는 신용 경색을 일으킨다.
3. 은행 대출에만 의존하지 말고 위기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현금 유동성과 신용 관리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은행이라는 거대한 성벽 안을 둘러보고 나왔다. 아마 조금은 배신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해 주는 줄 알았던 은행이 사실은 내 돈을 지렛대 삼아 끊임없이 부를 팽창시키는 영리 기업이었다니 말이다. 게다가 내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우산을 뺏어간다는 사실은 냉혹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돈은 감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파트를 통해 금융 시스템의 세 가지 규칙을 확인했다.
1. 지급준비율과 신용창조: 은행은 금고에 돈을 쌓아두지 않는다. 10%의 돈만 남기고 나머지는 대출해 줌으로써 자본주의의 돈을 복사한다.
2. 레버리지의 힘: 대출은 갚아야 할 빚인 동시에 내 자산의 증식 속도를 높여주는 강력한 도구다.
3. 은행의 생존 본능: 은행은 철저하게 자신의 건전성(BIS 비율)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며, 위기 시에는 가차 없이 유동성을 회수한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여전히 은행을 믿지 못하고 현금만 쥐고 있는 저축의 세계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은행이 만든 규칙을 역이용해 자본의 세계로 나아갈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빚을 두려워한다. 물론 빚은 무겁고 위험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역사상 빚(신용) 없이 큰 부를 축적한 경우는 드물다. <돈의 심리학>의 저자 모건 하우절이 말했듯 모든 수익에는 대가가 따른다. 변동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이자 비용은 우리가 더 큰 자산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할 수수료와 같다. 중요한 것은 빚을 지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그 빚이 나를 위해 일하게 만드느냐(좋은 빚), 아니면 내가 빚을 위해 일하느냐(나쁜 빚)를 구분하는 능력이다.
은행이 시스템을 이용해 돈을 불리듯 우리도 은행을 도구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은행의 대출 상품을 나의 레버리지로 활용하되, 그들이 우산을 뺏을 때를 대비해 나만의 비상금(유동성)을 챙겨두는 영리함이 필요하다. 금융 시스템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구명조끼를 입는 것과 같다. 파도를 멈출 수는 없지만 적어도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파도를 탈 준비를 마친 셈이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금융 시스템의 파도는 누가 만드는 걸까? 은행의 금리는 누가 정하며 돈의 가치는 왜 오르고 내리는 걸까? 이 궁금증이 생겼다면 이제 시야를 더 넓혀 날씨 전체를 흔드는 거대한 손, 국가와 중앙은행을 만날 차례다.
이어지는 PART 4에서는 내 월급과 자산의 운명을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힘, 금리와 환율의 세계로 들어간다. 뉴스를 볼 때마다 들려오는 "기준금리 인상"이나 "환율 급등" 같은 단어들이 내 삶을 어떻게 조여오는지 그리고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포지션을 잡아야 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이제 나무를 올라 숲을 마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