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젖부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리 May 17. 2022

씩씩한 중국 여자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평범하고 전형적인 한국인 부모님 슬하에서 초, 중, 고, 대학교를 모두 한국에서 다녔다. 외국물은 성인이 된 이후에나 처음으로 여행과 유학을 하면서 먹어 보았으니, 이 정도면 뼛속까지 한국 정서와 한국 문화가 스며있는 토종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보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내가 스물셋이 되던 해, 외국이라고는 처음으로 중국으로 유학을 1년 가게 되었다. 중국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자들의 당당함이었다. 중국 여자들은 한국 여자들처럼 주눅들어 있지 않았다. 거리낌 없고, 목소리도 컸으며, 화장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자기가 입고 싶은대로 편하게 옷을 입고 다녔다. 때로는 잠옷 같은 옷을 입기도 하고, 때로는 아프리카 부족들이나 입을만한 난해한 복장을 하기도 했다. 그 복장으로 다들 마음껏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넓은 대로에서 여자고, 남자고 자전거를 힘껏 페달을 밟으며 달리는데, 여자들은 치마를 펄럭이며 지나간다. 그런데 팬티가 훤히 보였다! 나는 민망해서 주위를 두리번 거렸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걸 굳이 바라보고 불편해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수많은 거리의 행인 중에 아무도 그 여자 치마 속을 안본 척 하며 '어떻게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탈 수가 있어?그래도 치마를 입었으면 속바지는 입어야지!'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고보니 치마 입고 자전거 타는 여자들은 한두명이 아니었다. 많아도 너무 많았고, 다들 치마를 펄럭이며 개의치 않고 씽씽 지나갔다. 그 모습에 남녀노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 상황이 불편한건 한국에서 온지 얼마안된 20대 여자, 나뿐이었다.


당시에 내가 홈스테이를 하고 있던 곳은 50대 부부집이었다. 내 또래 아들이 하나 있는 부부인데, 그 아들이 한국에서 유학중이라 아들방을 내가 쓰게 되었다. 아저씨는 출판사에서 일을 하셔서 아침 9시 출근, 저녁 6시 퇴근을 하셨고, 아줌마는 호텔 프론트 일을 하셨는데 근무시간이 밤 10시 출근, 새벽 3시 퇴근이었다. 나는 그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저 시간대에 남편이 부인한테 일을 하는 걸 허락하는 거지? 밤중에 여자 혼자 출퇴근은 위험하지 않을까? 저 시간대는 힘든 남자가 해야 하는거 아니야? 아저씨는 부인이 저 시간대에 일하는게 괜찮은가? 우리 아버지 같았으면 당연히 자기 부인이 그 시간대에 일 못하게 했을텐데. "그거 돈 얼마 된다고, 그냥 하지 마!" 이랬을 거고, 그럼 우리 엄마도 바로 수긍했을텐데.


더군다나 남녀칠세부동석의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아줌마 없는 집에서 그 아저씨와 단둘이 저녁을 먹고 한 집에서 물론 다른 방을 쓰긴 하지만 잠을 청하는 것이 곤욕이었다. 이 아저씨, 아줌마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상황에서 홈스테이를 하겠다고 한거야? 처음에는 겁도 났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잖는가. 그런데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그 상황이 불편한 건 나뿐이었다. 아줌마도, 아저씨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나를 샤오펑요우('어린 친구'라는 뜻)라고 이웃과 친척들에게 소개했고, 아무도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보지 않았다. 사람 이전에 남성, 여성으로 나누어 보고, 불편해하는 건 이번에도 나뿐이었다. 


한국에서 유학온 나에게는 이러한 베이징 50대 부부의 아침 풍경이 참 신선했다. 아저씨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시장에 가서 신선한 재료를 사와서 부엌에서 분주하게 요리를 했다. 주로 죽을 끓여놓고 나와 아줌마가 먹을 수 있도록 차려놓고 출근을 했다. 아줌마는 남편이 출근하는데도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다. 새벽까지 일을 하고 왔으니 피곤하긴 하겠다면서도 남편이 출근하는데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 늘어지게 주무시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아줌마는 식탁에 앉아서 늦은 아침을 들었다. 그러면서 항상 음식 타박을 했다. 짜다느니, 싱겁다드니, 이건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 어쩌고 하면서, 그리고 그 말을 아저씨가 퇴근해서 오면 꼭 반복했다. 그게 일상이었다. 


나에게는 그 상황이 너무 재미있었다.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자라면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히는게 있다. 여자의 미덕은 자고로 몸가짐, 마음가짐이 단정해야 하고, 남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고, 큰소리 나게 싸워서는 안되며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큰소리가 나거나 몸다툼이 나면 부모님이나 선생님 같은 주변의 어른을 불러서 해결하라는 교육을 받는다. 남자애들은 피터지게 싸워도 남자애들이 그럴 수 있지, 원래 사내아이들은 좀 그래, 하면서 관대하게 지나가는데, 여자애들은 큰소리내면 왈가닥이고 드세다고 혼이 난다. 그런데 이 중국 아줌마는 맨날 큰소리를 내고, 아저씨를 혼낸다. 아줌마는 집안일에 손하나 까딱 안하고, 아저씨가 다 도맡아서 하는데, 아줌마는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아서 잔소리를 달고 산다. 둘이서 항상 토닥거린다. 물론, 아저씨가 바로 꼬리를 내리지만.


이 집만 그런가 싶어서 다른 중국 가정집도 유심히 보았는데 대동소이했다. 중국에 조선족이 모여 사는 동북 지역과 중국에서 경제적으로 특히 못 사는 깡촌 시골을 제외하고서는 집안일은 남자들이 도맡아 한단다. 남자들이 돈도 벌고, 요리도 하고, 여자들은 본인 용돈벌이로 일을 하는 정도인데 다들 기세등등하게 지낸다 했다. 내가 한국에서는 부엌일은 거의 여자몫이라고 하면 중국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이렇게 위험하고 힘든 일을 어떻게 여자들이 해요? 당연히 남자가 해야지!"라고 했다. 


유학과 직장 생활까지 중국에서 6년 가까이 지내면서 감탄한 것은 중국은 직업에 고정된 남녀 직업이 없다는 점이었다. 탱크만한 화물차, 2층 버스, 버스 2대가 연결된 긴 버스에도 여자 기사들이 모는 경우가 많았다. 내 경험치로는 30~40% 정도는 여자 기사인 듯 하다. 특히 직장 생활에서 영업 업무를 맡으면서 중국과 한국 거래처를 200여곳을 맡았는데, 중국은 사장, 임원급도 여자인 경우가 많았으며, 남녀 비율로 따지자면 50:50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골드미스의 느낌이 아니라, 그야말로 수더분한 아줌마 같은 인상이어서 적잖이 당황할 때가 많았다. 인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가정을 이루고 애를 낳은 아줌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반해, 한국은 사장, 임원급은 100% 모두 남자였으며, 말단 직원일 경우에 여자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것도 여자들은 죄다 결혼 안한 20대~30대에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은 막연히 중국에 대해서 공산주의 국가, 미세먼지의 주범, 가짜가 판치는 나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로 떠올리지만, 내가 직접 겪은 중국은 여자로서 살기에는 한없이 자유로운 천국이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칭송하는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보다도 오히려 외모 평가에서 자유롭고, 유리천장도 없는 곳이 중국이다. 나는 딸이 둘이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1년만이라도 내 딸들에게 중국에서 살아보도록 해주고 싶다. 


여전히 그립다. 자기검열없이 내 멋대로, 맨얼굴로, 내가 입고 싶은대로 희한한 복장을 하고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며 여기저기 쏘다니던 시절, 남자든, 여자든 편견없이 친구가 되어 목청껏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지내던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간 강도 살인범은 되지만 아기는 안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