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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May 18. 2022

강간 강도 살인범은 되지만 아기는 안됩니다

강간 강도 사기꾼 살인범 이라고요?

전과만 해도 열개가 넘는다고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환영합니다.

걱정 말고 이 곳에 들어오세요.

당신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말하는 신성한 형을 다 치르고 온 자유시민입니다.

당신이 절대로 우리 가게에서 어떠한 강간, 강도, 사기, 살인을 저지르지 않으리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희 가게에서 몇 천원, 몇 만원만 내시고, 마음껏 드시고, 놀다 가세요.


어머나, 아기라고요?

안됩니다.

아기는 절대 안됩니다.

아기 아빠라고요? 아기를 대동한 사람은 무조건 안됩니다.

아기 엄마라고요? 어머나, 벌레이시군요. 더더욱 안됩니다.

돈을 두배나 내시겠다고요?

그래도 안됩니다. 한발자국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만 해도 저는 소름이 끼칩니다.

아기를 보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고통입니다.

아기들은 귀하디 귀한 저희 손님들에게 무지막지한 피해를 끼칩니다. 


아직 말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아기라고요?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순결무구한,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아기라고요?

그건 부모인 당신한테나 그렇지요.


제발 집으로 돌아가세요.

이 정도도 각오 안하고 아이를 낳았나요?

더이상 긴 말 하지 않겠습니다.

아기가 커서 12살쯤 되면 저희 가게에 들어오게 해 드릴게요.

그 전에는 절대 안됩니다.


우리 가게는 노키즈존입니다.

노키즈존.



* 노키즈존


노키즈존은 요즘 많은 식당이나 카페에서 내거는 영업 방침이다. 보통 아기부터 12살까지는 입장이 불가하다. 9년전 첫째를 낳았을 때는 가게 10개 중에 1개 정도의 비율이었는데, 요즘은 훨씬 많이 늘었다. 체감상 30% 정도 되는 것 같다. 


노키즈존을 설정한 가게 주인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일부 개차반 아기 엄마, 아기 아빠도 겪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집단이나 개차반은 있게 마련이다. 학생 중에도 범생이 있는가 하면 선생을 때리고 욕하는 개차반도 있다. 선생 중에도 참교사가 있는가 하면 저런게 선생이라고 싶은 사람도 있다. 국회의원도 청렴결백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주운전에, 성상납, 뇌물 등등 닳아빠진 국회의원도 있다. 그렇다고 그 집단 자체를 벌레로 매도하지는 않는다. 그 집단 자체를 막아서는 안된다.


노키즈존,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비열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단어가 아닐까 싶다. 돈 되는 손님만 받겠다는 천민 자본주의의 단면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고나서 가장 서러운 단어가 노키즈존이다. 예전에 미국에 흑인들은 버스 뒷자석 정해진 자리에서만 앉을 수 있었던 때와 많이 닮아있다. 지금도 노키즈존이 점점 늘어가는 한국은 감히 저출산을 논할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에 노키즈존은 해당되지 않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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